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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Mar 27. 2024

세상의 악당이 우리를 희롱할 때

양지바른 쪽으로 나아가기

겨우내 울던 아이처럼 떨고 있던 나무들이 아기 손가락처럼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져서, 춤추듯 흔들리는 3월의 일요일, 동네 언니를 만나 차를 마시고, 숲으로 난 오솔길을 걸었다. 평상시라면 봄의 기운을 한껏 즐기며 느긋한 일요일의 산책을 즐겼겠지만, 오늘 우리의 대화는 조금 무겁다. 언니에게 좀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위로의 말을 찾아 주억거리던 나는 그저 “언니, 괜찮아요?”라고만 묻는다. 언니는 사건의 경과를 얘기하면서, “육십이 넘었는데, 아직도 돈을 내고 배워야 할 인생 공부가 여전히 많다”라고 했다.      


어느 날, 의류 사업을 하는 그 여자가 돈 얘기를 꺼냈을 때, 언니는 차용증 한 장 받지 않고 큰돈을 빌려주었다.


“무엇보다 직원들 월급으로 나가야 하는 돈이 이혼 소송 때문에 묶였다고 하니까… 내가 그달 벌어 그달 살아온 처지라 그런지, 월급 못 받고 직원들이 얼마나 힘들지부터 생각나더라. 그 심정을 알거든. 시장에서 밤새워 일하는 자기 직원들 월급 줄 돈이 모자란다니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


선한 마음으로 언니는 작은 의심도 없이 전 재산과 같은 돈을 여자에게 송금했다. 한두 달 쓰고, 이자까지 갚아 주겠다는 말에, 이자는 걱정 말고 편하게 쓰시고 돌려주시라 했단다. 그 후 여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약속을 어겼지만, 언니는 여자가 보낸 문자 내용을 믿고 기다렸는데,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      


여자를 찾아가 보라고 채근하는 나에게  애 키우는 여자가 남에게 원한 살 일은 하지 않을 거라며 믿고 기다려 보자던 언니가 지난 주말 여자 집을 찾아간 것은 혹시나 아프거나, 나쁜 일을 당해서 연락이 안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니의 선함을 조롱이나 하듯 살림살이를 남겨 놓고, 아이만 데리고 사라진 여자의 아파트에는 이혼 소송 중이라던 여자의 남편이 들어와 가재도구들을 ‘당근’에 내다 팔고 있더란다. 나는 언니 얘기를 듣고 “세상 나쁜 년”이란 욕이 저절로 나왔다. 그 나쁜 년은 그 돈이 언니에게 어떤 돈인지 충분히 알면서도, 언니의 선함을 이용해 사기를 쳤다.      


여자를 찾아서 돈을 받아 낼 무슨 단서라도 찾을까 싶어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한참을 걸었다. 아직 바람은 차가웠지만 양지쪽은 아주 따뜻했다. 바람이 아무리 차가워도 햇살이 있는 곳에는 온기가 감돈다. 우리는 해가 비추는 방향을 따라서 공원 오솔길을 지나, 아파트 단지와 연결되어, 재개발이 진행 중인 주택 단지까지 걸어갔다.


아직 허물어지지는 않았지만, 곧 철거 예정인 집들이 즐비한 그곳에도 봄이 오고 있었다. 녹슨 철문과 부서진 창틀, 마당 가득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로 엉망이 된 양옥집 마당의 목련 나무가 눈에 띄었다. 주변의 망가진 것들, 그리고 망가져 가는 것들과는 하등 상관없다는 듯 가지마다 금세 터트릴 듯 부풀어 오른 꽃봉오리가 매달려 있었다. 양지바른 담장 밑 덤불 사이로 연둣빛 새싹이 뾰족한 잎끝을 내밀고 봄맞이를 준비하는 것도 보였다. 가까운 곳에 봄맞이하는 이가 또 있었는데, 때 묻은 겨울 파카를 입은 어떤 남자가 양지바른 건물 앞에 쭈그리고 앉아, 햇볕을 쏘이며 낮술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햇살에 부신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우리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 같았다. 남자 앞에는 1리터짜리 플라스틱 막걸리 통과 종이컵, 비닐에 담긴 김치가 안주로 차려져 있다. 언니와 내가 무슨 말을 하다가 하하 소리를 내며 웃자 남자는 우리를 쳐다보며, 영문도 모른 채 자신도 살짝 따라 웃었다. 반쯤 비어있는 막걸리 통과 꽁지까지 다 피고 나서 비벼 끈 수북한 담배꽁초, 남자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위로도 공평하게 투명한 봄의 햇살이 내려앉았다.     


언니와 주택 단지를 삼십 분쯤 더 돌아다니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남자가 앉아 있는 건물 앞을 다시 지나쳤다. 그러는 사이 해 방향이 바뀌어 양지가 음지로, 음지가 양지로 변했다. 어느새 남자는 원래 앉아 있던 곳에서 맞은편으로, 햇살을 따라 옮겨 앉아 있었다. 햇볕을 따라 이편에서 저편으로 ‘술상’을 옮겨 가며 느긋하게 낮술을 즐기는 남자의 태평함에 눈길이 끌렸는데, 남자는 우리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눈인사를 했다.          


우동집에 앉아 언니는 말했다. "경찰에 신고 했으니 법대로 처리되겠지. 나는 훌훌 털고 이제 일하러 가야겠다."  요양보호사 일을 다시 시작해야 겠다는 언니의 담담한 다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세상의 악당들이 우리를 희롱하고,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 할 때, 악당을 물리치는 우리의 힘과 무기는 무엇일까?  폐허에서 꽃을 피우는 목련나무처럼, 일상을 망치지 않고, 애끓이거나 자신을 탓하거나 낙담하지 않으며 담담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용기가 아닐까 .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로 언제나 햇살이 비춰 들면 좋겠지만, 그늘이 든다 해도 몸을 움직여 양지바른 곳을 찾아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유연한 이동성을 위해 몸과 마음을 가능한 가볍게 해 두는 것 아닐까.       


내게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진다. 혹시라도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말은 아닌지, 내 주제에 위로의 말을 할 자격은 있는지, 이런 망설임이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핑계는 아닌지. 나는 자주 너무 오래 주저하다가 위로의 순간을 놓치고, 후회하곤 한다. 숙제를 잘하려고 욕심을 부리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결국에 벌점을 받는 아이 같다. 오늘도 언니에게 괜찮은 위로의 말을 전하지는 못했지만, 양지바른 길을 따라 함께 걷고, 폐허 속에 피어나는 봄의 풍경을 발견하고, 따뜻한 국물을 마시며, 하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나눴다. 충분한 시간은 아니지만, 괜찮은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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