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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윤 Apr 14. 2024

전통문화가 뜰 수 있는 이유

힙 트레디션(Hip Tradition)

최근 판매 개시 3일 만에 완판되어 6개월 후에나 구매를 기약할 수 있게 된 굿즈가 있다. 어떤 굿즈가 완판되었다는 이야기는 종종 접하는 이야기라 놀랍지도 않지만, 사실 사람들의 이목을 끈 점은 그 굿즈가 아이돌 그룹 굿즈도 아니고, 명품 브랜드 제품도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제작한 덕수궁 시리즈, ‘오얏꽃 문양 위스키 잔'이다. 오얏꽃 문양은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인데, 위스키를 즐기는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그 독특한 감성 때문에 힙한 아이템으로 입소문이 퍼진 것이다.


이번 위스키 잔뿐만 아니다. 이곳저곳에서 전통적인 감수성을 담아낸 상품과 콘텐츠가 중장년층도 아닌 청년층 소비자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언제부터인가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새롭고 젊게 소비되는 전통'이라는 의미에서 ‘힙 트레디션’이라 칭하고 있다. (트렌디 해보이기위해 영어로만 쓴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전통(tradition)’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가 ‘오래된’ ‘낡은’ ‘고리타분하다’가 아니라 ‘힙(hip)’함으로 변화한 것이다.  


 


반가사유상의 새로운 변주상품(출처: 뮷즈 공식인스타그램)

힙 트레디션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굿즈, ‘반가사유상 미니어처’의 인기라 할 수 있다. 수년 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의 굿즈가 감성과 실용성을 모두 갖춘 덕에 알음알음 입소문이 퍼지고 있었는데 유명 연예인 BTS 멤버인 RM의 작업공간에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가 포착되면서 해당 제품이 유명해졌다. 현재까지 3만여 개 이상 판매돼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상품이 됐다.




반가사유상만 아니다. 지난해에는 금동대향로의 발굴 30주년을 기념한 ‘금동대향로 미니어처’가 1주일 만에 초도물량이 완판됐고, 올해에는 ‘취객선비 잔세트’가 3차 판매까지 순식간에 예약 판매가 마감됐다. 취객선비 잔은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특수 안료를 활용한 것으로 차가운 술을 따르면 잔에 그려진 선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주변에 꽃이 피는 것이 포인트다. 이처럼 전통 요소를 제하더라도 일반 상품으로서 소장욕구를 부르는 굿즈의 매력 덕분에 소비자들은 박물관에 놀러간 김에 굿즈를 기념으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굿즈 보러 박물관 가자’고 할 정도다.


뮷즈의 '취객선비 잔세트' - 차가운 술을 따르면 좌->우 처럼 선비의 얼굴색이 변한다. (출처: 뮷즈 공식 인스타그램)



인기에 힘입어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박물관(뮤지엄) 굿즈라는 의미에서 국립박물관의 굿즈를 이르는 공식 브랜드로 ‘뮷즈’를 정식 등록했다. 이제는 박물관 내에서만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핫한 아이템만 들어갈 수 있다는 더현대서울 팝업 스토어에서 소비자를 만났으며 ‘카카오톡 선물하기’에도 입점했다.



고궁의 문화재도 인기 굿즈다. 서두에서 소개한 덕수궁 시리즈는 고궁을 운영 관리하는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출시한 기획 상품이다. 전통문화 상품의 인기는 매출로 증명되고 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뮷즈의 경우 매출이 2022년 117억 원에서 2023년 149억 원으로 27% 증가했다. 한국문화재재단의 매출도 코로나 시기인 2020년에는 39억 원까지 감소했으나 2023년에는 100억 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이뤘다.






전통요소를 살린 상품의 인기는 일반 제품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펀딩에 힘입어 제품을 출시하는 플랫폼 ‘와디즈’에도 조선시대 왕이 입은 ‘곤룡포’ 무늬를 본떠 만든 ‘곤룡포 실내가운’이라든가 고급스러움을 뽐내는 ‘자개무늬 여권케이스’ 등 이색적인 전통 감성 제품이 인기가 많다.



소비자들이 찾는 볼거리, 먹거리에도 전통 문화가 번지고 있다. 간식 메뉴로 약과, 개성주악, 양갱, 떡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디테일도 중요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경복궁 앞에 있는 카페에서는 과일이 들어간 떡을 명주실로 묶어 잘라 먹도록 한 것이 작지만 새로운 경험으로 소비자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포장할 때 한지나 보자기를 활용하는 곳도 많아지고 있는데, 이는 전통 이미지를 고급스러운 것으로 소화한 것이다.



소비자들이 찾는 공간도 역사적 배경을 활용한다. 최근 ‘힙당동’으로 떠오른 ‘신당동’은 동네의 역사가 스토리로 작용한다. ‘주신당’이라는 칵테일바는 십이지신 동물석상이 입구에서부터 자리하고 곳곳에 부적 등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인데 신당(新堂)동의 어원이 실제로 무당들이 신을 모시던 신당(神堂)이 있던 것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주변 카페와 베이커리는 그 일대가 조선시대에 곡물을 거래하는 시장이 열린 싸전거리였음을 바탕으로 실제 양곡 창고였던 공간을 그대로 살려 가게를 꾸미기도 했다.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전통문화를 활용한 상품과 서비스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은 전통이라는 테마가 단순히 '반짝 유행'이 아님을 의미.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 제안한 ‘뉴트로’ 트렌드는 레트로(복고)가 더 이상 향수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신선한 경험으로 재탄생하고 있음을 알 바 있다.


힙 트레디션 역시 뉴트로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제는 퓨전 사극보다정통 사극이 더욱 낯선 젊은 세대에게 전통문화란 새롭고 흥미로운 세계관의 하나로 인식된다.

또한 한국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전통 문화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다. K팝, K푸드, K뷰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한국적인 것이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힙 트레디션의 추세는 한국문화를 되살릴 더없이 좋은 기회다. 지만 고려해야 할 것도 있다. 전통문화가 힙해진 것은 청년들이 역사와 문화를 너무나 사랑하게 된 나머지 자연스레 찾아온 변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의 것에 머물러 있기만 하는 전통은 현재의 가치로, '힙한' 것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오히려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은 상품들은 요즘 소비자의 변화에 주목하며 일상에 녹아들고자 전통을 재해석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신선함이라는 가치가 소진된 후에도 하나의 세계관이자 콘텐츠로 전통문화를 살아숨쉬게 할 수  있는 고민의 필요할 듯 하다.


  

                    


본 내용은 필자가 국방일보에서 연재하는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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