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2025 (3) 토핑경제
장꾸
어느 글에서 '장꾸'라는 단어를 보고 이것은 또 무슨 신종 '꾸미기'의 줄임말인가 검색해본 적이 있다. 알고보니 장꾸는 장난꾸러기의 줄임말이었다. 아마 필자 외에도 장꾸의 꾸를 ‘꾸미기’로 해석한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만큼 최근에는 별별 꾸미기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꾸(가방 꾸미기)’ ‘신꾸(신발 꾸미기)’ ‘티꾸(티셔츠 꾸미기)’ ‘양꾸(양말 꾸미기)’ ‘텀꾸(텀블러 꾸미기)’까지. 실제로 텀블러를 꾸미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텀블러에 사용할 수 있는 스티커와 키링, 손잡이 스트랩, 가방과 빨대 등 다양한 텀블러 액세서리가 생겨났다. 이것저것 텀블러에 덧붙이고 나면 본래 텀블러 가격을 훌쩍 넘어가기 십상이다.
이처럼 기본 제품을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위에 자신만의 ‘토핑’을 얹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꾸미기’는 ‘폰꾸(휴대폰 꾸미기)’와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시작으로 몇 년 전부터 포착된 현상이지만 이제 그 영역이 끊임없이 확장되면서 관련 제품과 서비스로 이어지고,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양상이다. 기업이 제공하는 기본 제품이 피자의 ‘도우’에 해당한다면 그 위에 소비자들이 어떤 선택과 변형을 더할 수 있는지는 ‘토핑’에 해당한다. 피자를 고를 때도 도우보다 토핑이 주요한 결정 기준이 되듯 시장에서도 토핑(소비자의 선택과 참여)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토핑경제’가 열리고 있다.
꾸미기 열풍이 커지면서 주어진 선택지 내에서 고르는 것을 넘어 ‘내손내만’(내 손으로 내가 만든)을 실천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가방과 휴대폰에 다는 큼직한 인형 키링이 인기를 끌면서 털이 달린 철사인 ‘모루’를 활용해 직접 인형을 만드는 ‘모루인형’ DIY도 인기다. 마찬가지로 키링처럼 여기저기에 붙일 수 있는 와펜, 네임택도 인기있는 표현 수단으로 등극했다.
이와 관련된 브랜드의 대응도 눈에 띈다. 데님 브랜드로 유명한 리바이스(Levi’s)는 국내 최초로 데님 테일러숍을 선보였다. 사이즈 수선뿐만 아니라 다양한 데님을 활용해 소재나 컬러, 텍스처에서도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다. 선글라스로 유명한 젠틀몬스터는 ‘선꾸(선글라스 꾸미기)’를 만들어냈다. ‘젠틀 살롱’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다양한 참(액세서리)을 선글라스에 부착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다.
자기표현이 중요한 의류, 잡화뿐만 아니라 전자제품에도 토핑이 중요해지고 있다. 다이슨에서 출시한 블루투스 헤드폰 ‘다이슨 온트랙’은 2000가지가 넘는 색상 조합으로 유명하다. 헤드밴드, 이어쿠션, 이어컵 등 다양한 색상과 질감으로 선택지를 제공해 각자만의 최적의 조합을 찾아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갈수록 토핑이 중요해지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비슷비슷하게 양산된 제품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시장이 성숙하면서 상품은 가성비를 갖췄을 뿐만 아니라 선택 폭도 넓어졌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은 물건을 갖게 된다는 것만으로 크게 구매욕구를 느끼지 않는다. 다시 말해 표준화 경제에서 차별화 경제가 되면서 소비자들은 특정 제품을 나만의 제품으로 만들어보고 재미와 의미를 얻는 것이 필요해졌다. 특히 토핑은 젊은 세대가 차별화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매우 좋은 수단이 된다.
한편으로는 현재 정체된 시장 상황에서 토핑경제가 유용한 측면도 있다. 혁신적인 제품이 시장에 쏟아지면 소비자도 토핑보다 본품에 따라 구매를 결정하겠지만 제품 혁신이 크지 않으면서 고물가로 인해 소비심리는 위축돼 있다. 따라서 본품을 바꾸기보다 토핑을 활용해 비교적 적은 돈으로 새로운 기분을 낸다거나 추후 변형 가능한 제품을 구매해 제품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기업들은 다양한 곳에서 토핑을 활용하고 있다. 최근 팝업스토어가 많아지면서 곳곳에 체험 요소를 넣으면서 필수로 포함되는 것이 바로 나만의 굿즈를 만드는 체험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갤럭시 탭 홍보를 위해 캐리어 브랜드 로우로우와 협업해 팝업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유행하는 ‘트꾸(트레이 꾸미기)’를 체험한 후 갤럭시 탭으로 본인의 트꾸 이미지를 편집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제품을 사용해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해당 이미지를 티셔츠에 프린트해 소비자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해 호응을 얻었다. 브랜드 경험을 나만의 굿즈라는 특별함으로 남기도록 활용한 사례다.
얼마 전 필자의 네 살짜리 조카가 크록스를 신고 왔다. 크록스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지비츠’라는 토핑을 꾸밀 수 있어 소비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조카의 크록스에 포켓몬스터 지비츠가 꽂혀 있었다. 누가 해줬는지 묻자 조카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골랐지!”
네 살부터 자신만의 토핑을 고르는 것이 당연해진 시대다. 소비자들이 토핑을 중시하는 현상은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향후 소비에서 중요한 과정으로 자리잡을지도 모르겠다.
본 내용은 필자가 국방일보에서 연재하는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글을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