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무관리 트렌드
기분 좋은 상상을 하나 해 보자. 어느 날 갑자기 공돈 1000만 원이 생긴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소비문화를 주도하는 2030세대라면 어떻게 답할까? 혹자는 '이 세대 여성이라면 해외여행이나 평소 사고 싶었지만 엄두를 내지 못한 고가의 물건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인터뷰한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500만 원은 저금, 200만 원은 가까운 지역으로 여행하고요…” “500만 원은 저축, 300만 원은 대출 상환, 200만 원은 주식 투자요”와 같이 많은 인터뷰 대상자가 절반 이상을 저축하거나 투자하고, 후순위로 소비를 하겠다고 답했다.
요즘 사람들은 돈에 관해 매우 현실적이다. 재무관리를 중요한 자기관리로 여기며 외모·멘탈·건강관리보다 재무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헬스장이며 병원에 가는 것도 모두 돈이 들기 때문이다. 이에 재테크 공부에 뛰어드는 이도 많다. 한국투자증권에서 전국 MZ세대(1981~2003년생)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8%가 재테크를 자기계발 활동의 일환이라고 응답했다. ‘월급만으로는 미래 대비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기본값이 된 시대, 요즘 2030세대는 재무관리를 어떻게 할까?
금융 뉴스레터 ‘어피티’에서 조사 결과를 보면 은퇴준비에서도 세대차이가 느껴진다. 부모님 세대는 은퇴 준비 수단으로 ‘국민연금’(1위), ‘저축’(2위), ‘보험 가입’(3위), ‘주식·부동산 투자’(4위)를 활용했던 반면, 자녀인 2030세대의 응답은 ‘저축’(1위), ‘주식·부동산 투자’(2위), ‘국민연금’(3위), ‘개인연금’(4위) 순이었다. 응답자 비율로 보면 조사에 참여한 768명 중 주식이나 부동산 등 ‘투자’를 하고 있는 이는 60%에 달했다. 부모님 세대보다 훨씬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은퇴 준비를 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투자를 할 때도 현실적 감각이 돋보인다. 예전엔 ‘10년 뒤 10억 원 만들기’ 같은 꿈에 가까운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최근에는 막연한 목표 대신 ‘월급 200만 원으로 1억 원 모으기’와 같이 구체적인 재테크 방법을 찾는다. 인터넷에선 한 달에 얼마씩 저축해야 1억 원 모으기가 가능한지 월급 규모에 따른 플랜을 공유하는 콘텐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구체적인 숫자와 단기적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에 불을 지핀다.
보험 선택에서도 2030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어피티에서 483명을 대상으로 보험 가입 현황도 조사했다. 응답자의 거의 대부분(94.2%)은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해 있고 ‘질병보장보험’(73.4%), ‘자동차보험’(33.4%) 순으로 가입률이 높았다(중복 선택). 반면 ‘연금보험’과 ‘저축성 보험’은 각각 13.1%, 11.1%로 가입률이 현저히 낮았다. 2030세대는 먼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는 것보다 오늘 벌어질지 모르는 실질적 위험에 대비하는 것을 중시한다는 의미다.
또 다른 변화는 남들 모르게 은밀히 재테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학과 취업 과정에서 ‘인강’을 들으며 공부했던 학원 세대답게 재테크 강의 역시 인강으로 듣고 SNS로 재테크 스터디를 결성해 ‘임장 실습’을 다니기도 한다. 심지어 혼자 가는 게 망설여지는 사람들이 모여 임장을 다니다 보니 ‘임장크루’라는 별칭까지 생기기도 했다. 이런 적극적인 투자 태도로 몇 년 전부터 아파트 매수자 중 30대 비율이 40대를 앞질렀다.
아끼고 절약하는 것도 구차하거나 유난스러운 일이 아니다. SNS로 자신의 재무 목표를 분명히 하고 응원을 구하기도 한다. 외국에선 지난 한 해 동안 ‘소리 내어 예산 짜기(loud budgeting)’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확산됐다. 자신의 예산을 SNS에 공개적으로 밝히고 불필요한 모임이나 쇼핑 등의 제안이 왔을 때 다른 핑계를 대지 않고 “예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일전에 소개한 ‘듀프 소비’ 역시 같은 맥락이다. ‘듀프(dupe)’란 고가 브랜드 제품의 성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대체품을 의미한다. 소비자들은 저렴한 대체품을 구매하는 데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듀프 성공 후기’라며 SNS에 본인이 찾은 아이템을 자랑한다. 고물가시대 브랜드에 연연하지 않고 제품을 알아보는 본인의 소비 능력을 뽐내는 것이라고 여겨서다.
시장에서는 금융상품도 요즘 세대의 재테크에 맞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자산관리서비스 뱅크샐러드는 ‘무지출 챌린지’처럼 절약을 게임으로 활용하는 요즘 트렌드를 반영해 지출 의리게임 ‘샐러드게임’ 이벤트를 진행했다. 팀원들이 5일간 사용할 예산을 설정하고 지출을 줄이기 위한 몇 가지 미션을 완수하면 해당 기간 지출했던 금액을 상금처럼 돌려받을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친구들이 함께 게임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온라인상에서 팀원을 모집해 의기투합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투자 접근성도 높아지고 있다. 투자하고 싶지만 어떤 종목을 무슨 기준으로 분석해야 할지 어려움을 느끼는 개인투자자들을 위해 NH투자증권에서는 워런 버핏을 비롯해 월가의 투자 대가로 불리는 5인의 투자 포트폴리오 정보를 제공하는 ‘큰손PICK’ 서비스를 운영한다. 투자 대가들이 귀여운 캐리커처와 함께 소개돼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한 번에 주문하기’ 기능으로 각 포트폴리오의 비중대로 손쉽게 투자할 수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무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다만 정답을 알고 있어도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게 쉽지 않다. 이때 우리는 여러 가지 핑계를 만들곤 한다. 예를 들면 ‘버는 돈이 크지 않으니 조금밖에 저축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어’와 같은 말이다. 하지만 실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월 지출에서 저축을 하는 비중은 연령이나 소득과는 크게 관계가 없었다. 소득이 늘면 그만큼 돈 쓸 곳도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돈의 크기가 아니라 돈에 끌려가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태도가 아닐까?
* 본 글은 필자가 국방일보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에 연재하는 내용을 수정/보완하여 업로드합니다.
** 이번 내용은 공저로 집필한 <스물하나, 서른아홉 - 요즘 여성들이 쓰는 뉴노멀 (2025)> 을 참고하여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