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 특집 칼럼
10월 1일은 국군의 날이다. 올해 국군의 날 행사는 건군 77주년을 맞아 ‘2025 밀리터리 그랜드 페스타(2025 Military Grand Festa)’로 진행되었다. 페스타라는 이름답게 2주간 전국 각지에서 20여 개의 행사가 개최되며,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최근 민간에서 뷰티페스타, 문구페어, 불교박람회, 도서전 등 참여형 오프라인 행사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트렌드에 부합하는 모습이다.
2022년부터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를 연재하고 강연을 위해 여러 부대에 방문하며 느낀 바는 군이야말로 어떤 조직보다 트렌드에 관심이 높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미래를 준비하고자 트렌드를 배우려는 것은 물론 군 조직 차원에서도 시대 흐름에 맞춰 부단히 쇄신하려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몇 년간 병영 트렌드도 변화했다. 국군의 날을 기념하여 그 변화를 짚어보려 한다. 해당 내용은 국군의 날 행사 기획단의 의뢰를 받아 기획되었으며 공식 발표된 통계 자료 및 기사, 현재 복무 중이거나 제대한 병사와 간부 등의 인터뷰를 통해 작성된 것임을 밝힌다.
첫 번째로 짚어볼 변화는 병영 생활의 질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생활관은 ‘군대’ 하면 떠올렸던 침상형 구조에서 침대형으로 바뀌었고, 최근에는 개인 생활 존중을 위해 2~4인용으로 시설 개선이 추진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카페·스터디룸 같은 생활 시설이 확충되고, 식당은 밝고 현대적인 공간으로 바뀌었다. 장병들의 식단 또한 단순한 열량 보충을 넘어 기호와 건강을 동시에 고려하는 방향으로 개선됐다. ‘초코파이’로 대표되던 간식 대신 단백질 음료를 찾는 장병들의 모습도 달라진 풍경이다. 2023년 실시된 장병의식 조사 결과 병사 응답자 중 군대 내 생활여건이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9년 86.3%에서 2023년 90.4%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근무 외 시간을 활용하는 모습 역시 달라졌다. 입대는 곧 외부와의 단절이요, 연락수단은 손편지와 전화 한 통이었던 과거와 달리 스마트폰 사용이 허용되면서 병사들은 가족과 자유롭게 소통할 뿐 아니라 뉴스에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일과 후 시간을 자기계발에 쓰는 분위기도 강해졌다.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운동을 통해 몸을 만들고 보디 프로필을 목표로 하는가 하면 영어·자격증 공부를 하며 미래를 준비한다. 실제로 병영 내 자기계발 여건에 대해 ‘만족한다’는 응답은 2019년 40%대에서 꾸준히 증가해 2023년 67.9%에 달했다. 군대가 단순히 시간을 견디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을 성장시키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장병들의 미래준비는 저축과 투자로도 이어진다. 『트렌드 코리아』에서도 주식투자자 군인을 일컫는 ‘병정개미’라는 별칭을 소개했을 만큼 지금의 청년세대는 재테크를 필수로 여기는 ‘자본주의 키즈’다. 재테크에 대한 관심은 급여가 상향되면서 더욱 강해졌다. 최근에는 군복무 기간이 자산 형성의 기회라는 인식이 생겨나며 장병들 사이에서 내일준비적금과 같은 자산관리 정보를 활발히 공유하기도 한다. 국방일보에서 ‘병영차트’ 설문결과에 따르면 군생활 동안 목표하는 저축액은 2024년 1월 기준으로 ‘1000만~2000만 원’이라는 응답이 62.5%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급여가 늘어나면서 올해는 목표액도 상향됐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시대 흐름에 맞춰 조직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군대식 문화’라는 표현이 존재할 만큼 획일적이며 경직됐던 문화는 수평적·양방향 소통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의 특성을 반영해 유연·존중·소통이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재편 중이다. 실제로 공군으로 복무를 마친 한 인터뷰이는 “융통성 없는 생활을 각오했지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되는 측면도 있었고, 간부들이 병사들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하며 군대는 권위적으로만 운영될 것이라는 생각은 선입견이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기술이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시대인 만큼 국방정책 역시 첨단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 세계가 인공지능 전환(AX:AI Transformation)을 향해 가며 국방부 핵심 추진 과제에도 AI 도입이 방위역량은 물론 국방운영 전반에 걸쳐 강조됐다. 예를 들어 2022년부터 개최된 국방인공지능경진대회는 국방 AI 기술에 대한 관심을 고취하고 있다. 올해 국군의 날 홍보 응원가 역시 AI를 활용해 제작하는 등 군의 일상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
서두에서 소개한 국군의 날 행사 또한 국군의 방향성을 반영한다. 과거에는 시가행진, 축하비행, 최신 무기 전시를 통해 위용을 과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올해는 시가행진을 과감히 생략해 예산과 준비 기간을 줄이는 대신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에 집중했다. 이는 국방정책의 초점이 단순한 과시가 아니라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운영, 그리고 국민과 함께하는 축제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군은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2025년 기준 국군 규모는 약 45만 명, 2024년 기준 현역병 입영 규모는 18만5000명 수준이다.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병역자원의 축소는 불가피한 현실이 됐다. 이에 더해 새로운 세대의 유입과 세계 정세 등 여러 도전 요인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트렌드 변화는 군이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조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짚어야 하는 것은 군의 변하지 않는 가치다. 단기적인 성과 중심의 ‘긱(Gig) 이코노미’ 정신이 확산된 민간 기업에서는 최근 장기적 협업을 위한 공동체 의식과 팀워크의 회복이 중요한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그만큼 헌신·책임·동료애와 같은 정신은 병영에서만 체득할 수 있는 귀한 가치가 됐다. 군의 특성상 민간조직의 트렌드를 적용할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하지만 오히려 군대의 본질적 가치와 새로운 트렌드의 결합을 통해 앞으로 더 강하고 따뜻한 ‘국민의 군대’를 만들어가리라 기대해본다.
* 본 글은 필자가 국방일보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에 연재하는 내용을 수정/보완하여 업로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