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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감 Aug 30. 2020

우연히 내게 착륙한 것은.

내가 국내여행을 좋아하게 된, 사소하지만 근사한 이야기.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대학교 때까지 천안이 경기도인 줄 알고 있었다. 나의 본적은 회현동이며 친가는 경기도 안성에 위치했고, 안성을 내려가다 보니 표지판에 천안이 보이길래 경기도는 크니까 경기도 천안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저 당시의 나에게 지도를 주며 선을 그어보라 하면, 분단선을 그어놓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지도 위에 그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친가 외가 모두 수도권에 거주하시는 덕에 '귀성길'은 나에겐 차 없는 도심일 뿐이었다. 타고난 역마의 기운으로 어린 시절부터 세계를 향한 글로벌 인재의 꿈을 꾸며 관광학도의 루트를 거치는 순간에서도 국내여행은 엠티가평을 가거나 해운대의 해수욕이 최고라며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이미  대학시절에도 '내일로' 여행을 떠나는 또래 친구들이 많았지만 이상하게 관심이 안 갔나 몰라.




그런 나의 인생에 나름 신선한 계기가 들이닥친다. 이 것이 허황된 과장이 아닌 단순 사실에 입각한 내용인지는 내 짧고 굵은 서사를 풀어볼 필요가 있다. 대략 2014년, 당시 어머니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자 한 지역의 '항공우주과학관' 내 위치한 카페를 운영하게 되어 학교를 다녀야만 했던 나는 예정 없던 자취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홀로 살아볼 생각조차 못하던 나였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니 떨어져 사는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심플 이즈 더 베스트의 모토로 조립형 가구를 하나씩 들이는 재미와, 스스로 공과금을 해결하며 더 이상 월하 야행에 간섭할 웃어른이 없는 멋진 나의 실상을 주변에 알리느라 근 몇 개월은 신명 나게 보내고 있었다. 그래. 자유란 이런 것이다. 아이 빌리브 아이 캔 플라이.


나름 로망을 요모조모 채워 넣은 자취방이 제법 사람 사는 형태를 갖춰 가던 즈음 과제와 아르바이트로 깨어 있는 나날이 잦아짐에 따라 난생 겪어본 적 없는 혼자라는 외로움에 어리둥절하던 나는 기여코 새벽 감성의 늪에 추락하고야 말았다. 허우적 댈수록 몸서리치게 밀려드는 감정을 견디다 못해 훌쩍이며 아침을 맞이하기를 몇 번, 결국 종강 후 방학에 맞춰 난생처음 3시간이 소요되는 고속버스를 타고 삼만리까진 못 미친 엄마 찾아 일만 리를 떠났다.



 초행이라 긴장해서 잠도 안 왔지만 호두과자는 열심히 입에 욱여넣으며 애먼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나서야 터미널에 근접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먼저  전주의 끝이 항공기 모양으로 된 가로등을 보고야 만다. 세상에. 저게 뭐지? 심지어 달리는 버스를 따라 차창 너머의 항공기는 늪에 빠진 승객 1을 태우고 부드럽게 유영했고, 이윽고 차가 멈추자 속력을 줄여 완벽하게 내 마음에 착륙하고야 말았다. 터미널에 내리고 나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는 순간에도 갑자기 모험과 신비의 나라에 온 것 마냥 설레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코스가 카페가 위치한 과학관 방문이었으니 사실 내가 본 것이 비행기가 아니라 콜럼버스호, 그니까 우주왕복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이 도시 전체가 항공우주 테마파크가 되어 내 머릿속에 성황리에 개장을 완료했다는 그런 이야기. (이 계기 덕분에 나는 새로운 도시를 탐방할 때 가로등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당시 찍었던 항공우주 과학관.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다녔던 여행은 여름에는 바다, 겨울에는 스키로 굉장히 한정적이었고 신기한 동굴에 들어가거나 원치 않던 산행을 감행한 기억도 어렴풋이 남아 있으나 어린 나에게 감흥 없는 존재일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각박해진 삶 속, 자아실현을 외치는 많은 사람들은 두루뭉술한 감정에 하나씩 이름을 붙여가며 이를 정의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더 다양해지고 범위를 확장시키기 위해 수집 욕구를 불태우기도 하며 이전의 것들을 세분화하고 새로운 형태를 갖추기도 했다. 고로 예쁜 꽃을 보면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게 되는 그 멋진 감성이 드디어 내게도 피어난 것이다.



지금은 인적이 드문 곳곳에도 모두에게 습관이 된 커피와 더불어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갖춘 카페들이 위치하고 있고, 사람들은 더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 저 움직임들이 나아가 쉼의 미학을 넘어 더 다양한 형태의 여행으로 발전되기를 소망한다. 내가 나고 자란 이 땅은 익숙한 나머지 이미 다 헤아린듯한 착각을 주기도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무궁무진한 테마들을 전과 달리 흥미롭게 들여다볼 시선이, 더 풍부해진 언어로 구석구석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수 있는 계기가 당신에게도 생겼으면 한다. 그날 우연히 내게 착륙한 것이 단지 가로등인 것만은 아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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