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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감 Sep 02. 2020

<서천> 현대적인 자연을 만나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  - 최재천

  

 

  우리는 꽃과 나무를 사랑하지만 벌레는 혐오한다. 아름다운 잔디밭을 산책하고 싶지만 신발에 흙이 묻는 것도 싫어하고 그림 같은 광경을 한눈에 담고자 카메라를 들어도 막상 그늘 한 점 없는 그 광활함을 바라보고 있자면 차마 발 디딜 엄두가 나지 않는다. 편안한 심신의 상태가 이루어져야 풍경도 눈에 들어오는 법. 그런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 바로 이 두 곳 <에코리움>과 <씨큐리움>이다. 이곳은 호불호가 갈릴 일이 없다. 오로지 이 것을 보기 위해 서천으로 향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좋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여 입구로 들어설 때, 마치 테마파크에 온 듯한 기분에 늘 휩싸인다. 잘 정제되어 있는 환경 속에서 생태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눈부신 서해 금빛 열차가 달리는 장항선은 당일치기 여행에 제격이다. 어차피 차를 몰고 와도 기차를 타는 것과 비슷한 시간이 소요된다. 덜컹거리는 열차에 몸을 싣고 달리다 보면 금빛 열차만큼이나 반짝이는 장항역을 만날 수 있다. 역에 내려서 바로 왼쪽으로 꺾으면 터널을 지나게 되는데 귀여운 동물 캐릭터의 인사를 받으며 터널을 나오면 비로소 에코리움의 서문이 보인다. 이런 공간에 입성할 때 목적 없는 탐구열과 학구열을 불태울 필요는 없다. 아름답게 조성된 생태원 구석구석과 전시물들을 감상하며 있는 그대로의 환경을 그저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 삶이 고루하다 하여 덤덤히 살아가고 있을 모든 사람에게 이 곳을 추천하겠다. 단언컨대 이곳을 방문하고 나오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각자의 감상대로 풍부해져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에코리움 전경


씨큐 리움 전경




밖은 분명 30도가 넘어가는 폭염이지만 이질적인 한기에 둘러 쌓여 문득 백곰 모형과 눈이 마주치면, 왜인지 오싹함에 금방 고개를 돌리게 된다. 나의 열 배쯤은 가뿐히 넘어 보이는 거대한 고래 뼈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으면 피노키오가 뗏목과 함께 고래 뱃속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묘하게 수긍이 가는 것이다. 공간 가득 메운 습기와 울창한 밀림 속 쏟아지는 폭포 소리는 내가 밟고 선 이 곳이 어디였는지 자각을 흐리게 만든다. 이상하게 내가 키우는 순간 힘 없이 말라가는 화분들만 생각해도 물 한 방울 없는 척박한 사막 환경에서도 꽃을 피우는 이 식물들에 대한 경이로움이 마구 치솟는다.


관람 중에는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겨우 보일 정도로, 작은 생명들 옆에 하나하나 푯말이 꽂혀 있다. 다 외울 수는 없어도 그 작은 생명들도 주어진 삶에 적응하며 각자의 생을 영위해 나간다. 유리벽 너머 작은 공간에서 헤엄치는 어류들, 울타리 안의 프레리독을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결국 인간이 주체라는 전제하에 갖는 생각이다. 그들은 충실히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특별전시관에서는 한 바다거북의 표본과 작은 플라스틱 더미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모두 이 바다거북의 몸에서 나온 것들이다. 분해되지 못한 것들은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우리에게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자연 속에서 우리는 함부로 오만할 이유가 없다. 그저 일부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이 곳을 관람하며 끊임없이 되새길 수 있다. 씨큐리움에서 다 볼 수도 없을 만큼의 해양생물들과 표본들을 한창 관람하던 도중 이러한 문구를 만났다.



'지구 생물의 80%는 바다에 산다. 우리는 오직 1%만 알고 있다.'

 





이 곳은 타인과 함께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똑같은 코스로 방문했지만 오히려 홀로 방문했던 기억이 가장 깊게 남아 있다. 불필요하게 커져있던 나의 우주가 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 얼마나 사소한지 깨닫게 되며 그간의 고민들이 먼지처럼 느껴지는 색다른 힐링을 이번에 방문하고서야 경험하게 되었다. 쾌적하게 조성된 공간과 헤멜 필요 없는 잘 짜인 동선, 그리고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그저 나의 감상에만 집중했던 것이 그 경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생태계를 함축해 놓은 것만 같은 방대한 규모는 다 둘러보기에도 시간이 빠듯할 지경이다. 에코리움을 둘러보고 나오면 생태공원은 그 전체가 숨을 쉬는 것처럼 활기를 띠고, 씨큐리움 뒤편에 위치하여 서해를 조망할 수 있는 스카이워크에 올라서면, 늘 보았던 바다는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처럼 아득해진다. 어느덧 해가 저 수평선으로 다가서면 한눈에 담기도 어려웠던 바다는 순순히 주황빛으로 물들어가고 한껏 말랑해진 내 마음도 그 파도에 여지없이 적셔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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