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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감 Mar 21. 2022

<영주> 무르익는 모든 것들은.

자연도 사람도 비로소 결실을 맺는 이 계절 속에서.


  이 빌딩 숲에서 가장 오감으로 계절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가을이 아닐까 한다. 움트는 봄햇살도 녹음이 우거진 여름도 좋지만 도심 곳곳을 짙은 색채로 물들여 이내 일상의 공간을 가장 다채롭게 연출하는 것은 가을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풍성해진다. 이를 마주하는 감성도 그러하다. 제법 시린 날씨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올려다본 하늘은 또 언제 저렇게 높아졌나 생각하며, 마무리를 향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문득 돌아본 이 황금빛 길 위에서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게 중에는 어느 그늘에 가려 주춤하고 있는 푸릇함이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내려앉는 순간에 가장 낭만이 되어 줄 것을 안다. 뿌리내린 이곳이 어떠하든 결국 짙어지고야 마는 것은 진리이다. 그리고 여기, 그 진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도시가 있다.






다들 각자의 방식대로 미리 여행을 계획하거나 혹은 즉흥적으로 움직이곤 하지만 공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의 도입부다. 이때 여행의 주제를 어떻게 지정하느냐에 따라 이곳의 매력도가 결정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주저 없이 관광안내소로 향할 것을 권한다. 대부분 기차역 또는 버스터미널이나 도심에서 멀지 않은 유명 관광지에 인접해 있으며 보통 최다 콘텐츠가 보유된 테마가 이 도시의 메인으로 선정됨으로, 관광안내소에서 가장 강조되는 내용이 바로 이 도시에서 가장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이곳 영주도 마찬가지다. 전국 최초 한우 웰빙 인증을 받은 자체 축협 브랜드 '영주한우'를 맛볼 수 있는 영주한우거리에서 인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후생시장이 그러하다.


<후생시장의 모습. 건물 안으로 다양한 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후생시장 일대는 영주의 구도심이라 불리는 곳이다. 40-50년대까지 철도사업과 함께 경북교통의 요지로 번영을 누리던 곳이며 지난번 목포와 그 맥락이 비슷하다.(따라서 영주에서도 근대 역사거리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항구가 쇠퇴함에 따라 수순을 밟던 목포와 다르게 영주에는 큰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61년 여름, 서천의 제방이 무너지고 강이 크게 범람하여 막대한 규모의 피해를 입힌 대홍수가 그러하다. 이후 강의 유로를 바꾸는 직강공사가 시작되었고 이를 계기로 영주가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나뉘게 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더불어 70년대 영주역 이전, 80년대 영주시청까지 이전하며 구도심은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채 쇠퇴하였으나 최근에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당시 근대 시장의 풍경을 재현해 놓고 영주 여행자센터와 근대역사관을 배치하여 현재는 영주관광의 요충지로 떠오르고 있다. 그야말로 ‘역전()의 역전()’이다. 


특히 근대역사관은 꼭 방문해 볼 것을 권한다. 꽤 협소한 공간이지만 재밌게도 그 안에 영주의 모든 역사가 다 담겨있으며 오랜 세월 영주와 함께하신 나이 지긋한 어르신께서 생생한 고장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깊이 있고 실감 나는 설명에 홀려 시간을 꽤 잡아 먹혔지만 덕분에 주저 않고 다음 관광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소수서원을 견학 온 예비 유생들>


영주를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환하게 반겨주는 도령님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이 도시의 마스코트이자 상징, 이 도시의 테마 그 자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로 치면 사립대학 즉,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이곳 영주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도산서원보다 훨씬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곳이다. 송림을 지나 흐르는 물길 따라 서원 내를 거닐어 보면, 청아한 가을 날씨만큼 맑아지는 정신에 내면에 반듯한 고요함이 깃든다. '배움'을 위해선 '비움'이 필요하듯 이곳 소수서원은 그야말로 세상의 잡음을 비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다리를 건너 이어진 선비촌에서는 오래된 고택과 함께 당시의 생활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차원을 넘어 공유되는 공간에서 그들이 그러했 듯, 수만 가지 물음을 잠시 접고 사색에 잠겼다.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 '무량수전'이 자리한 이곳 부석사는 그야말로 가을의 절경이다. 산맥을 따라 그 풍경에 고스란히 잠식된 정경을 보고 있노라면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도 모르게 절을 올리게 된다. 아마도 경외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터. 영주에서는 사과축제가 한창이었다. 제법 모질었을 계절을 꿋꿋이 견딘 결실의 축제는 곳곳이 탐스럽기 그지없었다. 끊임없이 배우고 비워가는 저 서원의 유생들도, 수 백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저 부석사도 그야말로 무르익었다. 방문한 나 또한 청아한 기품에 젖어들고 말았다. 수행하고자 하는 자, 추구하고자 하는 자, 모두 이곳을 방문하기를 권한다. 그 깊이를 함부로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은 모두 여기 영주에 모여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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