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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정 Nov 06. 2024

지도에 없는 가게

잠자리 동화

나윤이는 신이 났어요.

엄마가 젤리 사러 편의점에 혼자 다녀오라고 했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몇 번이나 졸랐지만

엄마는 걱정이 된다며 허락해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늘은 웬일일까요?


"나윤아, 잘 봐. 여기가 우리 집이고, 여기가 편의점이야."

엄마는 스케치북을 찢어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어요.

나윤이네 집과 편의점 사이로 기다란 두 줄이 이어졌어요.

"이게 뭐야?"

"지도! 길을 잃었을 때는 이 지도를 보고 찾으면 돼!"

나윤이는 지도를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었어요.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어요.

이건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보물 지도 같았거든요!


"다녀오겠습니다!"

집을 나서는 나윤이의 얼굴은 신이 난 것 같기도, 살짝 겁이 난 것 같기도 했어요.

나윤이는 엄마가 준 조그만 가방을 어깨에 메고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엄마, 아빠와 같이 탈 때는 몰랐는데

나윤이 혼자 있으니 엘리베이터가 엄청 크게 느껴졌어요.

덜컹! 움직일 때마다 조금 무서웠지만 꾹 참았어요.


바깥으로 나오니 바람이 나윤이의 옷자락을 스쳐가며 인사를 했어요.

바람뿐만 아니라 키가 큰 아파트도, 하늘의 구름도

모두 나윤이에게 인사를 하는 것만 같았어요.


나윤이의 발걸음이 화단 앞에서 멈췄어요.

"네잎클로버!"

나윤이는 쪼그려 앉아 토끼풀을 들여다보았어요.

"하나, 둘, 셋...... 에이, 세 장이잖아."

나윤이는 쪼그려 앉은 채로 종종거리며 다음 화단으로 갔어요.

거기에도 네잎클로버는 보이지 않았어요.

화단을 몇 군데 지났을 때, 나윤이가 소리쳤어요.

"네잎클로버다! 이번엔 진짜야!"

나윤이의 손에는 이파리가 네 장으로 갈라진 토끼풀이 들려있었어요.

오늘은 정말 기분 좋은 날이에요.


나윤이는 토끼풀을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여기는......"

집도, 편의점도 보이지 않았어요.

덜컥 겁이 났지만 나윤이에게는 엄마가 그려 주신 지도가 있어요.

지도만 있으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지도를 들여다봐도 돌아가는 길을 알 수가 없었어요.

지도에는 나윤이가 있는 곳이 나와있지 않았거든요.

나윤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나윤이의 눈물이 볼을 타고 뚝뚝, 네잎클로버 위로 떨어졌어요.


"안녕!"

울고 있는 나윤이의 뒤에서 누군가 인사를 했어요.

돌아보니 까만 원피스에 뾰족 모자, 꼬마마녀였어요.

"길을 잃어버렸니?"

나윤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꼬마마녀는 요술봉으로 크게 네모를 그렸어요.

그러자 조그만 문이 생겨났어요.

"들어와. 우리 가게야."


꼬마마녀의 가게에는 모든 게 다 있었어요.

나윤이가 좋아하는 젤리부터 알록달록한 사탕들,

오로라빛 주스와 동물 모양의 솜사탕이 가득했어요.

꼬마마녀는 그중에서 무지개 색깔의 젤리를 집어

설탕가루를 톡톡 뿌려주었어요.

나윤이는 젤리를 받아서 입에 쏙 넣었어요.

달콤한 맛이 먼저 톡톡 터지더니

깨물었을 때는 새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어요.

나윤이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어요.


젤리를 다 먹고 나니 엄마 생각이 났어요.

"엄마가 기다리실 텐데......"

꼬마마녀는 다시 요술봉을 들고 크게 네모를 그렸어요.

그러자 아까 그 조그만 문이 생겨났어요.

"자, 여기로 가면 돼."

문을 살며시 열자 나윤이를 찾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어요.

나윤이는 엄마를 향해 달려갔어요.

"엄마!"

엄마는 나윤이를 번쩍 들어 안아 주었어요.

엄마 품에서 무지개 젤리 향이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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