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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정 Nov 07. 2024

엄마의 도시락

잠자리 동화

며칠 있으면 소풍 가는 날이에요.

그런데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요.

왜냐하면 엄마가 예쁜 동물 모양 도시락을 싸주지 않을 거라고 했기 때문이에요.

다른 친구들은 다 예쁜 도시락을 싸 올 텐데.

나만 김가루 뚝뚝 떨어지는 주먹밥을 싸가면 너무너무 창피할 거예요.


"엄마, 나도 도시락, 한 번마안."

"엄마가 말했지? 도시락은 맛있으면 되는 거라고."

"다른 친구들은 다 예쁘게 싸 온다고 했단 말이야아."

"네 도시락 한 번 맛보면 친구들도 다 네 거 먹는다고 할걸?"


엄마랑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아요.

맛도 중요하지만 모양도 중요하다는 걸 왜 모를까요?

도시락을 열었을 때 곰돌이가 나를 보고 웃고 있으면

나는 엄청 행복할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눈물까지 핑 돌았어요.


내일은 드디어 소풍날이에요.

나는 아직도 화가 나 있어요.

"주스는 무슨 맛으로 사줄까?"

엄마가 물어봤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만화도 재미가 없고, 장난감 놀이도 하고 싶지 않아요.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안 되니까

그냥 일찍 씻고 자리에 누웠어요.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이고 있는데 바깥에서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려와요.

엄마는 정말 방구쟁이 마녀 같아요.


소풍날 아침이에요.

엄마가 내 가방에 도시락을 넣어요.

나는 엄마의 도시락을 가져가고 싶지 않아요.

몰래 화장실에 가서 도시락을 꺼내놓고 나왔어요.

가방은 가벼웠지만 유치원 가는 발걸음은 너무 무거웠어요.

엄마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벙글이에요.


엄마와 함께 등원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엄마가 내 가방을 잡으며 말했어요.

"도시락 때문에 가방 무겁겠다. 엄마가 들어줄까?"

하지만 빈 가방은 가볍기만 했어요.

"어? 가방이 왜 이렇게 가볍지? 어머! 도시락을 깜빡하고 안 넣었네!"

엄마는 나를 두고 후다닥 집에 다녀왔어요.

손에는 엄마의 도시락이 들려있었어요.

'망했다.'

엄마의 도시락은 다시 내 가방 속으로 쏙...... 들어갔어요.


점심시간이 됐어요.

서연이의 도시락은 문어 소시지랑 돌돌 말린 햄치즈 샌드위치가 가득하고

하린이의 도시락은 귀여운 캐릭터 얼굴 주먹밥이 가득했어요.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어요.

정말 열기 싫은데...... 천천히 도시락 뚜껑을 열었어요.

거기에는 달걀 이불을 덮은 곰돌이가 잠을 자고 있었어요.

알록달록 방울토마토에는 하트모양 꽂이가 꽂혀 있고요.

"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요.

친구들이 와서 내 도시락을 보고 예쁘다고 칭찬을 해 주었어요.

난 정말 행복했어요. 우리 엄마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가 봐요.


곰돌이 얼굴이 너무 귀여워서 포크로 찌르기가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푹 떠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어요.

하얀 곰돌이 얼굴을 먹고 있으니 며칠 전 엄마가 한 말이 떠올랐어요.

"모양낸 도시락은 맛없을걸? 이것저것 팍팍 넣고 조물조물해야 맛있지!"

엄마의 말이 맞았어요.

엄마의 말은 틀린 적이 없어요.

그치만 난 귀여운 곰돌이 얼굴이 좋아요.

그리고 다음번엔......

김가루 팍팍 묻힌 주먹밥을 싸달라고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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