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동화
현서는 동그랑땡을 아주 싫어해요.
예전엔 좋아했는데 지금은 싫어요.
왜냐하면 아빠가 맨날 동그랑땡만 주거든요.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어제는 밥도 주지 않고 동그랑땡만 그릇에 한가득 주었어요.
"이게 밥이야?"
"응, 밥이야."
현서는 동그랑땡을 포크로 집어 꾸역꾸역 입에 넣었어요.
이러다간 응가도 동그랑땡 모양으로 나오겠어요.
며칠 후면 소풍날이에요.
현서는 아빠에게 소풍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눈물 쏙 빠지게 혼났어요.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현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빠에게 등을 돌린 채 잠들었어요.
세상 모든 것이 동그랑땡으로 변해버린 아주 무서운 꿈을 꾸었어요.
사람들의 머리도, 지나가는 강아지도, 나무에 달린 열매도.
현서는 잠에서 깨자마자 앞집에 사는 아주머니께 달려갔어요.
"현서야, 무슨 일이야?"
현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몸을 배배 꼬기만 했어요.
"좀 있으면 소풍날이지?"
현서는 부끄러워서 고개만 간신히 끄덕였어요.
아주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어요.
"현서 것까지 김밥 싸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소풍 잘 갔다 와. 알았지?"
현서는 그제야 꽈배기 같은 몸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오늘은 소풍 가는 날.
현서는 앞집 아주머니의 도시락만 기다렸어요.
아빠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또 동그랑땡을 데우고 있어요.
"아휴, 지긋지긋해."
아빠는 동그랑땡만 가득한 도시락을 현서의 가방에 넣었어요.
현서는 아빠가 화장실에 간 사이 살금살금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어보았어요.
문 앞에는 도시락 가방이 놓여있었어요.
"우와......"
아주머니의 김밥은 기름이 반질반질하고 깨소금이 솔솔 뿌려진
최고의 김밥이었어요.
소풍은 정말 재밌었어요.
안 왔더라면 아쉬울 뻔했지 뭐예요.
점심시간이 되었어요.
현서는 김밥 생각에 들떠서 가방을 열어 보았어요.
그런데 가방을 아무리 뒤져봐도 김밥 도시락이 보이질 않아요.
아빠가 싸준 동그랑땡 도시락뿐이었어요.
현서는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간신히 참았어요.
동그랑땡 도시락을 여니 기름냄새가 훅 끼쳤어요.
"현서야, 뭐 싸왔어?" 이거 뭐야?"
현서의 가슴이 쿵쿵쿵 뛰었어요.
친구들이 놀리면 더 이상 울음을 참지 못할 것 같아요.
"우와. 동그랑땡이잖아!"
"어디? 동그랑땡?"
친구들이 갑자기 현서를 둘러싸고 우르르 몰려왔어요.
"현서야, 내 거랑 바꿔먹자. 동그랑땡 하나만!"
"나도, 하나만!"
순식간에 동그랑땡은 사라지고
현서의 도시락에는 친구들이 가져온 김밥만 남았어요.
현서는 친구들의 김밥을 맛있게 먹었어요.
최고의 소풍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