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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망 Oct 19. 2019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다 부서진 언어와 산산이 흩어진 의미

왜 나는 수업 중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인가



당연히 누리던 것들 중 하나가 별안간 고장이 난다면?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거나 냄새를 맡기가 어려워진다면 나의 하루는, 삶은 어떻게 돌아갈까? 


수업을 듣다가 난데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모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철렁, 하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옹기종기 모여 선 학생들의 맨 뒤에 조심스레 서 본다. 각자 발표를 하라거나 생각을 나눈다는 등의 큰 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원하지만, 역시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 모두가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 수업 주제와 관련하여 설명해보는 시간을 가지자고 한다. 


너도 나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였다. 다들 손을 들고 그럴듯한 이론들을 유창한 독일어로 말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독일어들은 내 귀에 단 한 글자도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 눈이 구원자라도 되듯이 손에 들린 사진을 파악하려고 그저 애를 쓸 뿐이다. 스무 명 남짓한 수업에서 세 명만이 남았을 때, 나는 아직도 발표를 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을 찾는 시선에 떠밀리듯 손을 들고 무언가를 더듬더듬 말했다. 삶에는 여러가지 양상이 있고 그들은 모두 비슷하게 보이지만 모두 다른 배경과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다른 배경과 이야기를 가진 상황임에도 공통점이 있을 수 있다, 는 진부한 말을 정말... 뭐라고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보가 된 것 같다. 매일 농담처럼 내가 독일어를 못하는 거지 머리가 빈 건 아니라고 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내 안에 차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다.

조금 더 유려한 문장을 말하고 싶다. 주문장과 부문장이 명확히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맞춰 내 입에서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좋은 단어와 아름다운 문법으로 이야기하고 글을 쓰고 싶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지만 그 중에 내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건 0에 수렴한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무언가'를 정확하게 표현할 방법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독일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문학을 공부했고 배울수록 그 배움의 과정과 내 안에 쌓여가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좋아서 과감하게 택한 길이었다. 지나간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지만 지나간 시간에 미련은 두고 왔나보다. 언어를 더 열심히 해 둘 걸, 하는 단순한 고민보다도 학부 시절 조금 더 밀도 있게 나를 채워 놓을 걸, 하는 미련이다. 조금 더 일찍 아주 조금만 더 많이 빨아들였다면 어땠을까. 스치는 짧은 생각은 이미 구성된 지식에 붙여둘 때 비로소 잔가지가 된다. 하나 둘씩 천천히 심은 나무로 작지만 나만의 숲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나만의 착각인 걸까, 돌아본 곳엔 고작 몇 그루만이 초라하게 서 있을 뿐이다.


잘 정리된 느낌을 주는 텅 빈 말과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자신감을 가득 넣은 시선으로 버티던 나는 며칠째 무너지는 중이다. 말을 정리할 수도, 내 생각이 드는 대로 할 수도 없다. 당장 일상에서의 간단한 대화도 스스로에게 몇 번을 검열한 뒤 겨우 내뱉고야 만다. 말은 생각의 그릇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무엇이 담길지에 대한 계획도 세우지 않고 그릇을 준비한 대가를 혹독히 치르는 중인 것 같다. 다 깨져버린 그릇을 그러쥐고 백날 비싼 황금물을 부어 봤자다. 심지어 현실적으로는 황금물은커녕 담을 게 흙탕물밖에 없는 것 같다. 다 부서져버린 볼품없는 그릇과 산산이 흩어진 채 빛 바래 버리는 의미들.


언어 수업과 달리 대학 생활은 낭만이 질척거리는 현실이었다. 교수님이 말하는 걸 귀가 듣지만 쓸모가 없고, 손이 받아 적지만 왜 그런지도 모르고 들리는 것만 적은 건 필기가 아닌 받아쓰기일 뿐이다. 눈이 교수님을 향해 있으나 자칫 잘못하면 교수님의 넥타이 무늬를 보고 있는 부작용만 발생시킬 뿐이다. 집중하지만 이해하기 힘들어서 머리는 과열되고 하나의 수업을 마치면 녹초가 된 채 다음 수업을 준비한다. 이제 2주차라서 알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알 수 있어서 슬프다. 


당연히 여겨 오던 자유로운 말과 대화는 현재 나에게 가장 결핍된 것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독일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물 흐르듯 내뱉는 나를 상상하다가 잠이 들곤 한다.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두세 번씩 생각하고 문장을 재배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0.1초로 단축되는 마법을 바라곤 한다. 전지전능한 신이 나에게 독일어 문법 마스터 쿠폰 하나와 독일어 발음 마스터 쿠폰 하나 중에 무조건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무엇을 골라야 하는가에 대한 실없는 고민을 하다가 두 개 다 버리고 독일어 단어 마스터 쿠폰은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겨우 멈춘다. 


20년 넘게 같은 말로 표현하던 내 사고의 세계를 깨부수며 난입한 독일어와 프랑스어. 새로운 발음의 a, b, c를 처음 떼던 날을 생각하면 많이도 발전했다. 나는 한때 영어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던 시절 굳이 한국말로 번역해서 생각하지 않아도 영어 그대로가 자연히 머릿속에 흡수되던 카타르시스를 잊지 못한다. 물론 그 순간은 오래 가지도 않고, 자주 찾아오지도 않았지만 외국어도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음을 문득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제 2, 제 3 외국어도 언젠가는 그런 멋진 경험을 선사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주 가끔 와도 좋으니 이렇게 정체기를 겪을 때 슬쩍 찾아와 나에게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적용하는 기쁨을 다시 일깨워 주었으면 좋겠다. 한번쯤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긴 문장으로 망설임 없이 표현해냈을 때, 비록 자잘한 문법 실수가 있을지언정, 상대방이 알아들을 때의 그 통쾌함을 제대로 겪었으면, 그리고 영원히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9.10.2019.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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