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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획자 Nov 17. 2019

리마인드 웨딩 인 파리

2018년 8월, 프랑스 파리

내는 이제 여한이 없다


 아빠는 파리에서 웨딩사진까지 찍었으니 이제는 여한이 없다고 했다. 엄마 아빠의 결혼식장은 부산의 작고 평범한 곳이었다. 신혼여행지는 제주도였고 변변한 웨딩사진도 없었다. 그랬던 아빠가 57살 평생 처음 프랑스 파리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장성한 딸, 아들과 함께 웨딩사진을 찍었다.




 리마인드 웨딩 장소로 파리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엄마 아빠는 누구나 알 만한 곳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했다. 동창회에 나가서 슬며시 사진을 꺼냈을 때, 누구나 '여기!'하고 알아차릴 수있는 곳.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의 도시 파리.


 현지 사진 촬영 업체를 사전 계약하고 메일로 당부의 메시지를 보냈다.

4인 촬영이지만 엄마 아빠의 리마인드 웨딩사진이니 두 분 위주로 예쁘게 찍어주세요.
신혼부부가 할 법한 유치한 포즈도 많이 시켜주세요.

 메일로 소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기사님은 막상 우리 가족을 보고 꽤나 놀란 눈치였다. 신혼부부 촬영은 많이 해봤지만, 환갑을 바라보는 어머니 아버지를 모신 건 본인도 처음이라고 했다. 사진기사님은 오히려 본인이 잘 부탁한다며 쑥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사진 촬영이 많은 파리지만 하얀 드레스와 정장을 입고 성인 4명이 함께 움직이는 모습은 파리지엥에게도 낯설었나 보다. 어떤 꼬마 아이가 엄마에게 다가와 뷰티풀하고는 수줍게 도망치기도 하고 어떤 청년이 아빠에게 다가와 매거진 촬영 중이냐며 물어보기도 했다. 엄마 아빠는 마치 모델이 된 것 마냥 설레어했다. 사진기사의 농담일 수도 있었지만, 덕분에 엄마 아빠 표정이 정말 좋다고 했다. 보통 젊은 신혼부부를 찍을 때도 표정이 얼음장 마냥 굳어 있어 난감할 때가 많은 데 엄마 아빠는 표정이 밝아 저절로 셔터가 눌러진다고 했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이니, 엄마 아빠는 오죽했을지. 칭찬을 들으니 더욱 밝아진 얼굴로 싱글벙글했다. 볼뽀뽀부터 유치한 귓속말 포즈까지. 평소 같았으면 남사스럽다며 손사래 쳤을 포즈도 척척이 었다.


엄마는 촬영 말미쯤 모델이 되어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난 후, 엄마는 사진기사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더니 팁을 왕창 줬다. 알고 보니 그는 파리에 영상 공부를 하기 위해 온 유학생인데 아르바이트 삼아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젊은 청년이 타지에서 고생이 많다며, 덕분에 너무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며 훤히 웃는 엄마에게서도 여한 없는 기쁨이 느껴졌다.




 엄마의 팁 덕분이었을 까, 약 2주 후 전달받은 보정 사진은 아주 근사했다. 엄마 아빠를 진짜 모델로 만들어줬다. 엄마 아빠의 화보 사진은 액자에 담겨, 휑하게 비어있던 거실 벽을 꽉 채웠다. 아빠는 커다란 액자를 보면서 다시 말했다. 이제 진짜 여한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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