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그렇긴 하지만 경쟁을 부추기고 경쟁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당시. 그리고 경상도의 어느 학구열이 억쑤로 크던 우리 학교. 그녀는 선생님들과 우리 사이에서 한마디로 스타였다. 전교 1등 & 전교 얼짱 배우 김태희 같은 인물이었다.
영광스럽게도 혹은 불행하게도 나는 완벽한 그녀의 중학교 1학년 내내 옆자리 짝꿍이었고, 또한 완벽을 추구하는 일상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몸소 옆에서 느껴볼 수도 있었다. '저렇게 공부도 잘하고 예쁜데 왜 자꾸 울까?' 그녀가 종종 자학적인 행동(머리카락을 뽑거나 손톱을 물어뜯으며 괴로워함)과 눈물을 보이는 것을 보고 섬뜩함을 느낀 적도 여러 번이다.
시험에서 틀린 한 문제 때문에 교실이 떠나가라 오열하는가 하면, 교복 치마와 책가방이 깨끗한데도 항상 무언가 묻은 듯이 꽤 심각하게 털기도 했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는 오랫동안 잔머리 없이 머리를 정갈하게 빗어낸 뒤에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기도 했고, 소풍날 사복을 입고 왔는데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은 친구를 발견하곤 집에 있는 엄마에게 다른 옷을 갖다 달라고 해서 갈아입기도 했다. 이 외에도 재미있는 기억이 많다. 이웃 학교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실로 엄청난 스타였다.
이렇듯 내 짝꿍은 14살 어린 나이에 참 많은 집착과 강박을 가진 듯했다. 나도 사실 그런 부분이 좀 없지 않아 있었는데, 내가 걷는 놈이면 그녀는 나는 놈이었다고나 할까. 요즘 전교회장 출신 아이돌 연습생 L양을 코칭하면서 이때 이야기를 엄청 들려준다. L양이 딱! 그때 그녀 같아서다.
'성공이 뭘까?' 그렇게 완벽하게 치열하게 살아내고 멋있는 변호사나 의사가 되어 부자가 되는 것? 그럼 '행복은 뭘까?' 그렇게 되어야만 느낄 수 있는 감정? 나는 살면서 이 물음을 꽤나 오랫동안 달고 살았다. 열심히는 사는데도 공허한 마음이 자주 나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교육이나 작업 현장의 분위기는 때로 개선이 부족한 것도 같다. 성공이 무엇보다 중시되는 강압적인 온도와 습도는 구성원의 정서에 나쁜 곰팡이가 피도록 만드는 환경으로 작용하기 일쑤다.
간혹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일부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하는 생각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가정 내에서 가지는 착한 딸 or 아들 콤플렉스를 겪는 경우라든지,SNS 좋아요를 위해 내 집을 동화처럼 아름답게 유지해야만 하는 주부 등도 역시 비슷한 감정이리라 유추를 해본다. 이러한 경우들은 대개 불안,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과 연관이 되어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낳는다. 만약 그렇게 완벽을 추구하는데도 스트레스가 없다고 한다면, 내심 거짓말 같기도 하지만 정말이라면 강인한 멘털이 부럽기도 하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이러한 생각과 행동이 의례화되고 반복되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고 수치심, 죄책감, 고립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한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강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자아상과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진단 부분이다. 절망감과 우울감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유의해야 할 성향이다. 그러니까 이제껏 그러지 못했더라면 이제는 우리가 비로소 행복을 제대로 알고 진짜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매일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또한 가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1등이 아니면 어떠한가, 완벽한 외모가 아니면 어떠한가? 인스타에 올릴만한 뿜뿜이 없으면 어떠한가? 과연 세상에서 '항상', '제일'인 생명체는 존재하는가?
그 가치와 기준은 절대적인가?
생각을 키우다 보니 어느새 정답은 완벽이 아니라 '성장'임을 깨닫는다. 하루하루 즐겁게 성장하는 일상, 시행착오를 받아들이며 작은 성취를 쌓는 사람다운 삶.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싶어 스스로 이야기해 준다.
"고운아, 완벽은 정답이 아니야."
"기억하렴, 성장이야!"
여하튼 완벽주의가 완벽하던 미모의 내 짝꿍.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공부를 계속 쭉 잘해서 전문직이 되어 있을 것도 같고, 화려한 미모 덕분에 인기 있는 삶을 누리고 있을 것도 같고 아니면 반전 드라마처럼 평범한 엄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SNS 검색에도 뜨지 않는 그녀가 궁금하다. 어쩌면 사생활도 완벽하리만큼 차단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