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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강 Dec 07. 2020

051. 덕심

  1년 전쯤 마이아트뮤지엄에 '알폰스 무하전'을 관람하러 간 적이 있었다. 보통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갈 때 전시해설이나 오디오 가이드 없이 작품을 감상하는 편인데 그날은 함께 간 친구가 원하기도 했고 시간대도 마침맞아서 전시해설을 들었다. 물론 특별한 기대 없이. 그런데 그날의 전시해설이 꽤나 신선하게 느껴진 건, 도슨트에게서 굉장한 덕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 덕질의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1860년에 태어나 사망한 지 80년도 넘은 화가도 충분히 그만의 아이돌이 될 수 있는 거다. 섹션을 넘어갈 때마다 고조된 감정은 마지막에서 정점을 찍었는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도슨트의 표정은 화가와 그의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과 진심이 없었다면 지을 수 없는, 절대 부러 꾸며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알폰스 무하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는 편견에 분개하고, 그의 뿌리이자 명맥인 슬라브 민족에 대한 처절한 사랑에 감명하며, 나치로부터의 핍박과 고난에도 '슬라브 서사시'라는 위대한 작품을 남긴 그의 숭고한 정신에 표하는 깊은 존경심을 그 날 그 자리에서 느끼지 못한 관람객은 아무도 없었을 테다. 

  그리고 약 1년 만에 다시 찾은 마이아트뮤지엄. 이번에는 '앙리 마티스전'을 관람했고 역시 그분의 전시해설을 들었다. 그리고 이전에 느꼈던 소회를 다시 한번 느꼈다. 1860년대생 화가들만 덕질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본인이 맡은 전시의 화가는 다 덕질을 하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인데, 앙리 마티스에 대해 본인이 궁금해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질문과 답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해설을 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되려 한 시간 내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질문의 종류가 꽤나 참신했고,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그 화가와 작품에 대한 방대한 배경지식과 인사이트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역시나 앙리 마티스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는 편견에 분개하고, 붓을 쥘 수 없고 눈이 보이지 않아도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되 그 역경을 사람들에게는 철저히 감추고 싶어 했던 그의 헌신에 감명하며, 눈을 감는 마지막 날에도 드로잉 네 점을 남기고야 만 그의 숭고한 정신에 표하는 깊은 존경심을 그 날 누가 느끼지 못했을까. 

  덕심은 사람을 멋져 보이게 한다. 무언가에, 혹은 누군가에 덕심을 갖게 되면 당연히 호기심으로 이어지고 호기심은 수많은 물음표를 파생한다. 그 물음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는 강제되지 않은 학구열을 불태우며 공부한다. 빠져 빠져 빠져 들고 파고 파고 파고든다. 누구보다 그 대상에 대해 많이 알고 싶고 깊게 알고 싶고 잘 알고 싶다. 그리고 인풋은 쉽게 아웃풋이 된다. 이렇게 좋은 걸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 널리 널리 알려야 되기 때문에 가공하고 재가공해서 새로운 창작물로 만들어 낸다. 열정적이고 낭만적이고 지적이다. 좋아서 하는 일의 힘이란!

  비슷한 기운을 앞의 두 전시를 함께 했던 친구에게서도 느낀다. 나보다 약 10살은 어린, 90년대생 그 친구는 아직 취향이 굳기 전이라 뇌와 심장이 모두 말랑말랑한데, 관심이 있는 모든 분야의 모든 정보를 물 먹는 하마처럼 흡수하고 왕성하게 소화시킨다. 음악과 미술과 영화에 관심이 많은 꽤 적극적인 향유자이자, 스스로 음악과 미술과 영상의 창작자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모르는 어떤 것에 대해 내가 말하면 눈을 반짝이며 수많은 질문들을 와르르 쏟아내는데, 일일이 주석을 덧붙이기에는 내 지식이 습자지처럼 얇아서 아마 충분히 만족스러운 대답을 준 적은 없었을 거다. 오히려 시간 내어 따로 찾아보고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을 되려 내게 전해 주기도 한다. 보물찾기 하는 아이 마냥 즐겁게. 고맙고 또 미안하다. 함께 우리만의 살롱문화를 꽃피우기에는 내가 너무 건조하네.

  그래서 결국 나를 반성할 수밖에 없는데, '것 참 시시하고 뻔하다'의 눈빛으로 세상을 무료하게 바라본 지가 꽤 되었기 때문이다. 눈 앞에 외계인이나 좀비가 나타나도 무심히 가던 길 그대로 갈 것 같은, 바짝 말라버려 바사삭 부서질 것 같은 내 마음아. 얼굴에만 미스트를 뿌릴 게 아닌 듯한데, 덕심은 어떻게 모이스처라이징 하나요. 나도 덕질하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TJizuwQEXs&ab_channel=MAGICSTRAWBERRYS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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