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는 다정하다. 매일 문자메시지로 폭염 속 나의 건강을 염려해준다. 물을 자주 마셔라, 챙이 넓은 모자나 양산을 써라, 그늘과 무더위 쉼터를 이용해라, 무더위 시간에는 웬만하면 외출하지 마라와 같은 당부의 말을 전한다. 꼭 부모님의 걱정 섞인 잔소리 같다.
하지만 난 청개구리 자식처럼 무더위 시간(14시~17시)이면 외출을 하고 싶다. 잠깐 도서관, 잠깐 카페, 잠깐 탄천을 거치는 별 거 없는 루틴을 이상하게 꼭 그 시간에 하고 싶다. 올여름은 유독 더운데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땀에 흠뻑 젖는다.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살갗이 자글자글 끓는다. 마스크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힌다.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은 밖에 나오지 않는다. 거리도 도서관도 카페도 천변도 한산하다. 대신 작은 것들이 활개를 친다. 천변은 특히 난리다. 잎의 무게로 축 처진 가지들은 바닥에 쓸리고, 들꽃은 무럭무럭 자라 하늘을 건든다. 날개 달린 것들은 기척에 저만치 도망치거나, 아니면 곰살맞게 옷 위로 들러붙는다. 걸음마다 개미나 송충이나 그 비슷하게 생긴 것들을 밟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잠시만 오래 들여다보면 저건 물살이 아니라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몇몇 것들은 소리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렇다. 여름은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일련의 생애과정이 빠르고 가볍고 흔한 계절이다. 망설이거나 유예되는 법이 없이 삶의 서사가 착착 진행된다. 기다렸다는 듯 동시다발적으로 생로병사를 치러내는 꼴이 좀 징그럽긴 한데.
아마도 그래서 나는 밖에 나간다. 바깥의 그러저러한 일들과는 단절된 네모난 공간에서 선풍기를 틀어 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보면 여름이 나를 비껴가는 기분이 든다. 입맛은 없고, 밤잠을 설친다. 몸은 둔하고 마음은 더디다. 오래 혹은 깊이 사유하는 게 귀찮고 버겁다. 여름이라는 계절과 무관한 시간들로만 하루가 채워지는 건 건강하지 못하다. 대신 잠깐이라도 바깥에서 태양을 받으면, 그리고 돌아와 한소끔 끓었던 몸을 찬물로 식혀 내면, 외출 전과는 완전히 다른 내가 된 듯하다. 절절 끓는 생명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바깥의 저 작은 것들에 덩달아 부화뇌동한지는 몰라도.
빌려온 여름의 기운은 늘어진 몸과 마음을 조이면서 슬그머니 조급하고 긴장된 기분을 만든다. 뭐라도 하고 싶고 뭐라도 해낼 수 있을 듯하다. 물론 그 '뭐'가 될 대상이나 목적을 찾는 것과는 다른 얘기지만. 어제는 실패했고 오늘은 마뜩잖았지만, 또 모르지. 내일엔 제법 그럴싸한 '뭔'가를 를 찾을지도. 사실 못 찾아도 상관없고. 사람에게 붙은 온갖 거창한 수식어와는 달리 저 작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대단치 않은, 찰나의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