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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강 Apr 25. 2020

042. 꿀잠

  잠들지 못하는 밤. 이불속에서 '끙'하고 몸을 뒤척이면 그 인기척에 놀란 먼동이 저만치 물러나고 새벽은 요원해진다. 낮에 늘어지면, 그 텐션이 이어져 밤은 전원 오프가 아닌 저전력 모드가 된다. 낮에 분주하면, 밤에 까무룩 곯아떨어졌다가 금세 각성상태로 회귀한다. 때때로 밤은 여전히 공포스러워서, 백팔번뇌가 한꺼번에 내 침실로 쏟아져내리는 거다. 모른 척, 다른 생각. 걱정과 불안을 밀어내느라 가장 말도 안 되고 있을 법하지 않은 것들을 공상한다. 공상은 그 자체가 공허할수록 도움이 된다. 무의미할수록 무해하다. 가상의 세상, 가상의 공간, 가상의 인물, 가상의 사건 속을 헤매다 보면 불면은 꿈 많은 잠으로 치환된다. 곧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밤은 끝장나고 결국 아침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찾아온 아침을 고스란히 맞으며 조그맣게 다짐한다. 늘어진 낮엔 귀찮음을 부수고 분주한 낮엔 시간을 쪼개서라도, 그렇게라도, 꼭 볕을 쬐고 빛을 보는 스케줄을 일상 속에 끼워 넣자고. 밤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낮에 할 수 있는 가장 건실한 방법. 


  코로나 19가 끝나면 바닷가 마을로 여행을 가고 싶다. 좀머 씨처럼 종일 걸어야지. 짠물 섞인 바람에 머리칼이 끈끈해지고 비린내에 콧잔등이 시큰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푹푹 발이 빠지는 모래사장과 아슬아슬한 해안절벽 위를 쉼 없이 걸어야지. 하루치 여독을 짊어진 밤에는 젓갈처럼 절여지거나 말린 생선처럼 꾸덕해진 몸을 낯선 이부자리 위에 뉘여야지. 공상할 틈도 없이 꿈이 들어설 자리도 없이, 저 밤바다처럼 새카만 잠을 자야지. 철썩이나 쏴아아 소리에 깨어나 동트는 하늘을 지켜봐야지. 그러다 문득 절실한 귀소본능을 느껴야지.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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