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둘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가끔씩 들긴 하지만 생각만큼 외롭고 아쉽지 않다. 순간에 충실하게 놀고 나만의 스타일로 여행하는 중이다. 남미는 참 재밌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쿠스코는 가장 재밌는 곳이다. 굳이 표현해보자면 만남의 광장?
일화를 몇 가지 나열해보자면 라파즈에서 쿠스코로 이동 중 국경선에서 비자 받다가 만난 한국인 언니랑 친구 먹어 삼일 밤을 함께 하고, 그 삼일 중 우연히 들어간 펍에서 한국인을 반겨주는 주인아저씨와 친해져 이틀을 그곳에서 웃고 떠들었다. 그다음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조식 챙겨 먹다가 만난 동생과 자연스럽게 카페 가기로 약속하고, 내친김에 워킹투어까지 하게 됐는데 투어가 끝나고 로컬 시장에서 먹은 세비체의 맛을 잊을 수가 없어 다음날 다시 갔더니 산티아고 콘차이토로 와이너리 투어에서 만난 네덜란드 커플이 우리 옆자리에 앉아있었고, 화장실에서 화장하다가 눈인사 주고받다가 친구되어 밤새도록 웃고 떠들었다. 그다음 날, 아타카마-우유니 2박 3일 투어를 함께했던 독일인 친구를 우연처럼 아르마스 광장에서 마주쳐 너무 반가운 마음에 서로가 꼭 껴안으며 호스텔이 어디냐고 묻는데 같은 호스텔이었던 재미있고 신기한 일들을 한꺼번에 마주치는 곳이 쿠스코였다.
오늘은 그 쿠스코에서 마지막 밤을 기다리는 중이다. 나, 쿠스코에서 남들 다 가는 마추픽추는 안 갔지만 남들보다 충분히 즐겼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남미까지 가서 마추픽추도 안 보고 오느냐고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마추픽추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으니까 괜찮다. 어쨌든 하루를 실컷 즐기고, 사람도 만나고, 해발고도 3500미터에서 술도 진탕 마시고, 다음날 숙취 때문에 죽은 벌레처럼 낮을 보내도 나는 이 여행 정말 만족한다. 마추픽추가 나를 아쉽게 만들면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뭐. 앞으로 70년은 더 살 텐데 그중 한 번을 더 못 올까.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을 버리니 아쉬운 것도 없더라. 아무튼 나 지금 되게 행복하다. 올해는 남들 눈치 안 보고, 어제보다 더! 열심히! 먹고, 마시고, 춤추고, 돈 벌고, 사랑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이곳, 라틴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