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셀레스타에서의 모든 건배사는 Michelsonne! 이었다.
* 슬럼프로 오랜 휴식기를 가진 뒤 다시 글을 올립니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 제가 셀레스타를 다녀온지 벌써 1년이 되었네요. 혹시나 기다려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린다 미셸과 페이스북으로 처음 나눈 대화는 매우 간단했다.
나는 린다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다음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그녀는 반갑게 나에게 인사를 해준 다음 아쉽게도 자신은 영어를 할 줄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의 짧은 대화는 끊겼다.
하지만 내가 미셸손 피아노로 틈틈히 연주 활동을 하면서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게시글을 올리면 그녀는 빠지지 않고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그러다가 약 4년 뒤인 2019년 3월, 나는 토이피아노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미셸손 피아노의 정보를 검색하다가 린다 미셸이 쓴 책인 “작은 피아노 미셸손의 위대한 역사’ 를 웹상에서 발견했다. 그러나 프랑스어로 구입처를 검색해보아도 찾을 수가 없어서 나는 약 4년만에 린다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최대한 정중하게 당신이 작성한 책을 발견했으며 구입처를 알고 싶다고 물었다.
린다는 내 메세지를 받고 장문의 프랑스어를 보냈다. 요지는 나에게 그 책을 선물해줄테니 주소를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믿기지 않아서 구글번역기와 파파고 두개로 번역해보았고 내가 이해한 사실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 뛸 듯이 기뻐했다. 바로 내 주소를 메세지로 보냈고 한달 뒤 미셸손의 역사를 담은 책은 우리집에 도착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매세지를 이어갔다. 그러다 나는 2019년도에 경기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사업인 청년예술인 자립준비금 사업에 선정이 되었다. 이 사업은 이름 그대로 청년예술인이 스스로 지속가능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소정의 지원금을 주는 정부사업이었다. 나는 시장성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한 채 한국에서 토이 피아노에 관련된 책 하나쯤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출판을 할 계획서를 세워서 지원금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작성한 계획서의 내용 중에는 프랑스와 폴란드에서 토이 피아노 관련 인터뷰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 막연하게 미셸손 피아노를 만든 사람의 후손을 만나서 인터뷰를 해보자는 생각 하나만 가지고 계획을 세웠고, 심지어 지원사업이 확정되기 전까지 린다에게 만나러 간다는 메세지를 할 생각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덜컥 사업에 선정이 된 것이다. 선정 이후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린다 미셸은 영어를 하지 못하고,
나는 영어는 커녕 프랑스어도 못하는데
어떡하지?
일단 이번해 안에 볼 수 있을까?
그래도 얘기해보자. 만나러 가겠다고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며 다시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서 린다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내가 사랑하는 토이 피아노 미셸손 제작의 따님인 당신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린다는 내 제안에 매우 긍정적으로 답변을 했고 서로 날짜를 조정하자고 하는 등 적극적으로 일정을 맞추어보았다. 처음에 그녀는 2박 3일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했으나 언어에 대한 걱정이 매우 컸고 여행에 많은 비용을 쓸 수 없었던 나는 일정의 문제로 1박 2일밖에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후 나는 이 결정을 조금 후회했다.)
그리고 나는 폴란드의 토이 피아니스트 파웰도 만나야했기 때문에 일정표를 열심히 짜서 최종적으로 2019년 11월 말에서 12월 초 2주동안 유럽에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틈틈히 돈을 더 모아서 셀레스타에서 머물 1박 2일 일정 중 두번째 날 점심부터 저녁까지 함께 할 현지 통역사를 구할 비용을 간신히 마련했다. 그리고 통역사와의 일정도 무사히 조율을 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뒤 드디어 11월 말에 프랑스 파리로 입국하여 떼제베를 타고 바로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했고, 하루 정도 현지적응을 마친 뒤 29일 5시에 우여곡절 끝에 셀레스타역에서 린다와 그녀의 언니 브리짓을 만나게 되었다.
보슬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린다의 차에 탔다. 나는 구글번역기와 손짓발짓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대강 이해한 바로는 그들은 식당을 예약했고 우리는 식당에 가기 전에 셀레스타를 조금 둘러볼 예정 같았다.
차를 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곳은 셀레스타에 있는 성당이었다. 경건한 분위기로 성가를 연습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구역마다 장식을 다르게 한 트리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는데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각 구역별 트리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학창시절 공부했던 때보다 더 열심히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이런 작은 트리가 달려있었는데 구역별로 장식이 달랐고 조금씩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종교가 없는 나는 밤의 성당을, 그것도 해외에서 이렇게 들어온 적은 처음이어서 신기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둘러보았다.
성당을 잠시 거닌뒤 우리는 예약한 식당으로 갔다.
그리고 식당까지 가면서 또 하나 신기했던 점은 린다와 브리짓이 이 셀레스타라는 마을에서 매우 유명인사였다는 점이었다.
이동 동선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이 자매를 알고 있었고, 식당에서도 주인을 비롯한 손님들이 그녀들에게 인사를 하고 비쥬를 했다.
못알아 들어도 이 사람들은 참 다정한 인사를 주고 받는것이 보였다.
우리가 식당에서 먹은 음식은 생굴과 알자스 지방 전통 음식인 타르트 플랑베, 화이트 와인이었다. 타르트 플랑베는 얇은 화덕피자 같은 것으로 보통은 햄, 양파, 샤워크림등을 얹어서 오븐에 구워낸다고 하며 이 날은 시나몬을 뿌린 구운 사과를 얹은 것을 먹었다. 그리고 다음날까지 보내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프랑스 사람들은 정말 와인을 물처럼 마신다는 것이었다.
미셸손(Michelsonne)!
원래 술에 강한 편이 아니었던 나는 적당히 달면서 고급진 와인 몇잔에 금새 취했고, 음식이 맛있다, 당신들을 만나서 너무 즐겁다 등의 이야기를 하다가 어휘력이 딸리면 잔을 들어서 미셸손을 힘차게 외쳤다. 그러면 린다와 브리짓도 깔깔 웃으면서 함께 잔을 들고 미셸손을 외쳤다. 다른 테이블 손님들이 나가면서 린다에게 인사를 건내자 그녀는 나를 소개해주면서 또 미셸손을 외쳤다.
황홀하면서 아직까진 완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던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마을을 잠시 더 둘러본 다음 다시 이동을 했다. 린다의 집에 잠시 들린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밤 묵을 숙소가 그녀의 집인줄 알았는데 잠을 잘 곳은 거기가 아니고 셀레스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몽생오딜(Mont Saint Odile) 수도원이라고 답변을 들었다. 수도원에서 하룻밤이라니, 운치있을 것 같았다.
린다의 집에 들어서자 붙임성 좋은 러시안블루 고양이가 반겨주었다. 낯을 가리지 않아 내가 내민 손끝에 다가와 냄새를 맡고 꼬리를 살랑 거리며 방을 걸어다니는 모습이 한국에서 나를 기다리는 집고양이가 생각났다.
나도 고양이를 키운다고 말하고 다시 조금 대화를 이어가다가 린다와 브리짓이 나를 지하실로 안내했다.
린다의 집 지하실에는 그 옛날 미셸손을 생산하던 공장이 화재로 불탄 이후 출고되지 못했던 토이 피아노들을 박스채로 보관하고 있었다.
둘은 지하실 보관창고에 관해 설명을 해주더니 박스 두개를 가져와서 두대의 피아노를 보여주었다.
그때까지만해도 나는 중고로만 접했던 미셸손 피아노를 반짝반짝한 새 상품으로 본 것에 흥분해서 감탄하며 사진을 계속 찍고 있었다.
그런데 두 악기의 소리를 번갈아가며 들려준 다음 브리짓이 나에게 둘 중 하나를 줄테니 고르라고 말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내가 이걸 받아도 되냐고 물어보았고 그들은 한국에서 여기까지 와준 것에 고마워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내 가슴은 미친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하나를 골라야 했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보았다.
25건반 악기는 중고로 집에 있지만 20건반은 가진 적이 없는 악기이다. 하지만 연주 활동을 위해서는 건반수가 조금이라도 많은 악기가 더 활용도가 높다. 하지만 20건반은 빨간색 앞판이 너무나 귀여웠고....
고민이 컸지만 결국 건반수가 많은 악기를 선택했다. 받으면서도 믿기지 않은 순간이었다.
정말 뜻하지 않게 악기를 선물받고 피아노를 트렁크에 고이 모셔놓은 다음 몽생오딜 수도원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미셸손이라고 써져 있는 간판이 신기해서 찍었는데 토이 피아노를 생산하던 공장이 망한 뒤 만들어진 악기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매장은 다른사람이 운영하고 있으며 다음날 둘러보기로 하고 약 1시간 반정도 산을 올라가 수도원에 도착했다.
밤 늦게 도착하여 수도원에 있는 리조트에 짐을 풀고 짧은 티타임을 가진 뒤 잠을 청했다.
좀처럼 잠들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으나 어느 순간 긴장이 탁 풀리더니 깜빡 잠에 빠졌다.
4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