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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글에 앞서 악기로서의 토이 피아노에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토이 피아노의 세계] 글을 참고 바랍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toypianoworld
토이 피아노는 주로 현대음악 혹은 기타 여러 장르의 음악에서 사용되고 있는 악기이다. 또한 피아노의 형태를 띤 이 작은 악기는 음악 외에 여러 예술 장르에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보통 타 장르의 예술가들이 토이 피아노에 흥미를 느끼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로는 일반 피아노의 크기나 규모, 가격 등을 감안해서 대용으로 사용할 악기를 알아보다가 토이 피아노를 알게 되는 경우이다. 두 번째로는 토이 피아노 자체를 이미 인지한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이다. 두 경우의 작업물들이 완성도나 작품성에서 차이가 나진 않으며 이번 글에서는 토이 피아노를 여러 예술 장르에서 활용한 사례를 소개해보겠다.
허공에 매달린
수십대의 토이 피아노 작품
ToyLand Fever
사진 속의 작가는 마치 허공에 매달린 토이 피아노를 지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아름다운 작품은 [Ringing Glass(Rilke)]전에서 전시된 ‘Toyland Fever’이다.
켄 언스워스(Ken Unsworth)는 호주 멜버른 출신의 설치 예술가이며 현재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2011년 11월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텔미 텔미 : 한국 - 호주 현대미술 1976~2011> 전에서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Ringing Glass(Rilke)] 전은 호주 코카투 섬에서 2009년 6월 24일부터 8월 2일까지 진행된 대규모 전시로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추모하는 전시였다. 비록 고인을 기리는 전시였지만 전시장은 축제 같은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전시가 개막하기 전 진행한 오프닝 파티에서 작가는 160명가량 손님들을 초대하여 저녁식사를 함께 즐기고 춤을 추는 파티를 열었다.
전시의 큰 흐름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소네트에 영감을 받았다. 총 4개의 방이 작품으로 채워졌으며 토이랜드 피버는 3번째 방에 설치된 작품이다. 켄 운스워스는 원래부터 피아노를 자신의 작품 세계의 주요 테마로 삼았으나 이 전시에서 처음으로 토이 피아노를 활용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사진엔 보이지 않지만 - 어린이용 철제 침대와 커다란 노, 수십대의 숀헛 토이 피아노가 끈에 묶여 공중에 매달려 있다.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소재들은 마치 소리 없는 음악의 우주를 항해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토이 피아노와 모기덫? 유머러스한
상상이 담겨있는 작품
보부상 시리즈
첫 번째 소개가 여러 대의 토이 피아노를 활용한 작품이었다면 두 번째는 한대의 토이 피아노에 작가의 예술적 사고가 위트 있게 담긴 작품이다.
<김순기 : 게으른 구름>전 은 김순기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으로 개최한 전시로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2019년 8월 31일부터 2020년 1월 27일까지 진행되었다. 전시 이름은 작가가 프랑스에서 낸 동명의 시집의 제목에서 비롯되었으며 자료 100점에 작품 200여점이 전시되었다.
프랑스 빈티지 토이 피아노를 소재로 작업한 이 작품에 대해 아쉽게도 작가분께 직접 설명을 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금요일 도슨트인 편현주님께 전달받은 유래를 정리해보았다.
김순기 작가는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으며 비엘 메종이라는 농가를 개조한 작업실에서 작업을 한다. 작업실에는 모기와 쥐가 많이 있는데 보부상 시리즈는 그중 모기에 관한 유희스러운 작품이다. 토이 피아노에 철실로 엮인 줄이 있는데 그것은 마치 모기를 유인하는 덫과 같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모기가 피아노 위를 왔다 갔다 하다가 줄을 건드리게 되면 팅~ 하고 피아노를 치고 건반 위에 있는 모기향의 냄새에 취해 와인잔에 빠져 죽게 된다.
시골집의 성가신 모기로 인한 상상이 이렇게 재치 있는 작품으로 발전한 것이다.
토이 피아노에 단청을 입히다.
Dream
토이피아노가 한국 고유의 전통 채색 기법인 단청을 입었다.
단청은 한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붉은색과 푸른색을 뜻한다. 그러나 명사로서 풀이하자면 오방색을 기본으로 단색 혹은 배색을 사용하여 건축물, 공예품 등에 채색하는 것을 뜻한다. 흔히 단청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사찰의 지붕 문양뿐만 아니라 칠을 할 수 있는 온갖 조형물에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에 단청을 공부하는 예술가들은 현대적인 소재에 단청 기법을 활용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 소개할 ‘Dream’ 또한 그러한 작품이다.
Dream 은 강남에 위치한 국가무형문화재교육전수관에서 2019년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졸업전시회 [수다를 나누다]에서 전시된 작품 중 하나이다.
작가 김태리는 오랫동안 서양화를 해왔으며 우연한 기회로 단청을 접하게 되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였다. 이번 졸업 작품의 도안 모티브는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은해사 백흥암의 수미단(불상을 모시는 불단)의 문양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작업은 중고 토이 피아노를 구입하여 겉 페인트를 벗겨내고 전통 안료를 사용해서 뇌록 색으로 바탕색을 덧칠한 뒤 밑 작업한 도안을 그리고 채색을 했다고 한다. 설화에 나오는 여러 동물들이 동화 속 세상에 뛰노는 것처럼 토이 피아노의 여러 면에 그려져 있다.
이전 글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토이 피아노는 서양의 악기이지만 동양 사찰의 풍경 소리와도 닮았다. 동서양의 조화가 어우러진 악기에 동양의 색이 입혀지니 소리뿐만 아니라 외관 또한 한국에 좀 더 친숙해지는 것 같았다.
무용가와 클래식, 그리고
토이 피아노와 쇼팽
Wisona - Spring Op. 74. Nr.2.
이 몽환적인 유화 작품은 폴란드의 화가 마리올라 피탁(Mariola Ptak)의 그림이다. 2019년 제작된 이 그림은 여러 대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빈티지 토이 피아노가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고 중앙에 소녀 무용가가 토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마리올라 피탁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여성(특히 무용수)이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북유럽 특유의 조금은 서늘하고 정적인 느낌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인 Wisona는 폴란드어로 봄이라는 뜻이며 부제인 Spring Op. 74. Nr. 2는 작곡가 쇼팽의 가곡 제목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작가가 폴란드의 유명한 토이 피아노 밴드인 말레 인스트러멘티(Male instrumenty)가 2010년 쇼팽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발매한 앨범에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자세히 보면 각각의 토이 피아노의 크기와 생김새, 문양들이 모두 다른데 이 악기들은 말레 인스트러멘티가 소장하고 있는 토이 피아노들이다. 그녀는 또한 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성을 화폭에 담으며 2020년에는 대만 피아니스트이자 토이 피아니스트 베로니카 옌(Veronica Yen)이 해변가에서 토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리기도 하였다.
라이브 연주에서 악기는 연주만 되어야 할까
망구 - 그믐달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한국 전통무용과 전통노래인 정가, 라이브 토이 피아노 연주가 함께 한 작품인 [망구 - 그믐달]이다.
무용극 망구 - 그믐달은 2015년 1월 20일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 작품이다. 망구는 할망구의 줄임말이 아닌 90세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여든한 살의 별칭이다. 작품은 무용가 박연정의 1인극에 정가를 하는 안정아가 노래와 함께 적극적인 조연으로 무대에 생기를 더한다. 무대 한켠에서 토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차혜리는 공연의 효과음과 배경음악을 여러 대의 토이 피아노로 소화해낸다.
극의 전반적인 주제는 망구의 일생을 다루었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서 임신을 하여 보름달처럼 배가 둥글게 부풀어 올랐으나 안타깝게 저물어버린다. 남편은 외도를 하고 폭력을 쓰며 망구는 그런 현실에 분노하지만 세월은 계속 흘러간다. 남편도 잃고 아이도 잃은 망구는 흘러가는 시간을 받아들이며 하늘에서 내리는 쌀과 같은 눈물 또한 받아들인다.
이 공연에서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토이 피아노는 단순히 악기로서만 사용되지 않았다. 극의 중간에 망구는 무대 밖에 있던 연주자에게 불쑥 다가가 토이 피아노를 뺏어간다. 그녀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토이 피아노의 건반을 손으로, 그리고 발로 눌러보기도 하고 급기야 악기를 밟고 위에 올라가서 자신을 표현한다. 그렇게 폭삭 늙어버린 망구는 잠시나마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