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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 Jan 13. 2020

일말의 희망

희망이 담겨있는 어머니의 말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수능 성적표를 받고 한동안은 내 성적을 부정했다. 저건 내 성적이 아닐 거야. 절대 저럴 리 없어.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냉혹했고 나는 나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최저등급 미달로 인하여 모든 수시 논술을 보러 가지 못하고 백수처럼 집에 누워만 있기를 약 한 달. 나는 정시모집 일정을 기다려야만 했다. 물론 내 성적으로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을 가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대학 등급표를 읽어보며 나 자신과 타협하고 그나마 내가 어느 정도 만족하며 다닐 수 있을만한 대학을 찾아볼 뿐이었다.               



 나는 내 성적으로 지원해볼 수 있는 여러 지방 대학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대학들조차도 이제 내 성적으로 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했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지방의 한 4년제 국립대학. 성에 차지는 않았지만 등록금도 싸고 학과의 비전도 있는 꽤 괜찮은 학교를 찾아 지원 가능 성적대를 알아보았다. 높은 성적은 아니나 최근 5개년 합격점을 확인해보았을 때 합격할 가능성이 있는 학교였다. 나는 정시 3개군 중 하나에 이 학교를 지원하고 이것마저도 안되면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나머지 정시 카드들은 그냥 버렸다.               


 정시 지원 후 나는 이 학교와 관련된 커뮤니티 사이트나 점수 공유 카페를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인 적극적인 모습에 부모님도 조금은 기분이 풀리신 듯했다. 합격점은 지난해와 비교해보았을 때 내 성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한 가지 불안한 점은 학과의 인기 상승으로 인해 커트라인이 계속 상승하는 추세라는 것이었다.               



 점수 공유 카페를 통해 또 다른 정시 지원자들과 점수를 비교해보았다. 올해가 이전 연도들에 비해 유난히 성적대가 높아 보였다. 1차 수능 성적 2차 면접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입시전형에서 1차만 어찌어찌 통과한다면 2차 면접을 잘 볼 자신은 있었지만 문제는 면접을 볼 기회조차 없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1년만 더 일찍 태어날걸 ······. 지원자들끼리 점수를 종합하여 결론 낸 1차 합격 커트라인이 내 성적보다 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모든 정시 모집 일정이 끝난 후였다.               


 정보력에 굉장히 취약하신 부모님께서는 이 사실을 꿈에도 모르셨다. 가능성이 있다는 나의 말에 당연히 1차는 붙는 것이고 2차가 관건이겠거니 하는 낙관적인 생각. 오랜만에 돌아온 부모님의 활기를 다시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직 1차 결과가 나오진 않은 어느 날이었다. 오래간만에 하는 외출에 어머니께서 나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고 계셨다. 거울을 보며 옷태를 확인하던 중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옷 잘 어울리네. 면접 보려면 양복도 하나 마련해야 할 텐데 양복은 언제 사지?"       


        

 나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요새 항상 기가 죽어있는 나에게 옷이라도 한 벌 사주어 기분을 풀어주려고 하신 말씀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희망. 희망이라는 것이 담겨있는 어머니의 말씀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그래, 사실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릴 수밖에 없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분노.               



 "면접 못 본다구요!"     



 나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나가버렸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며칠 후 컴퓨터를 통해 나는 지원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귀하는 정시모집 1차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운명의 신은 나에게 일말의 희망조차 허락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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