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7일, 나의 첫 번째 수능을 망쳐버린 그 날. 나는 내 인생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던 단단한 기둥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2년 동안 수능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나에겐 수능의 실패가 단순히 시험에서 낙방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릴 정도의 강력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부끄럽지만 성적을 확인한 그 순간 나는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었을 정도로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었다.
수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처절한 실패를 겪은 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위로의 말이었다. 나도 안다. 그들이 무슨 의도로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있는지. 하지만 지금까지 수능과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것마냥 교육받고 자라온 나에게 이런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나를 위해서 해주는 말임을 알고 있음에도 저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오히려 화가 날 정도였으니.
세상 모든 것을 원망했다. 교육열 높은 대한민국에 태어나 나를 고통 속에서 살게 한 현실을 원망했고 수능 한 번에 모든 운명이 갈리는 현 교육·입시 시스템을 원망했으며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신을 원망했고 남들처럼 유명한 학원에 다닐 수 없는 형편의 부모님을 원망했다. TV 속에서 웃고 떠드는 예능인들이 미웠고 행복한 얼굴로 공원을 산책하는 남녀가 미웠다. 나는 이렇게나 힘든데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했다.
이 브런치를 읽는 사람들 중에는 첫 번째 도전이 실패로 끝나 재수를 준비하거나 그 이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 또한 나와 같은, 또는 나보다 더한 상처를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인생에는 수능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거나 다른 소중한 가치를 찾아 떠나라는 식의 어설픈 위로는 하지 않겠다. 여러분들도 알고 있지 않은가. 나 또는 주변의 누군가가 무슨 말을 해준다한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쓰디쓴 실패를 겪은 후에 나는 노력이 배신하기를 밥먹듯이 한다는 사실과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점을 가슴 깊이 깨달았다. 그리고 그 진리는 단지 수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면접, 시험, 취업, 승진 등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을 모든 역경에 있어서 이 진리는 항상 적용된다. 나와 여러분들은 이 진리를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이를 가슴속 깊이 알아가는 과정을 어른이 되어간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항상 실패를 겪으며 산다. 친구들과의 밥값 내기와 같은 단순한 일부터 시작하여 소중한 연인과의 이별이나 오랫동안 준비해온 프로젝트의 무산 등 매번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실연도 당해보았고 1년 가까이 준비한 국가시험에 택도 없는 성적으로 떨어져 보기도 했으며 나의 꿈과 관련된 대외활동에서 쓰디쓴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은 나도 아직 실패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실패를 겪을 때마다 나는 내가 가장 힘들어했던 순간인 나의 수험생활을 떠올리곤 한다. 통쾌한 역전 스토리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내 삶에 있어서 가장 가슴 아픈 실패를 맛보았던 그 날을 떠올리며 새로운 실패와도 친해지려 한다. 그리고 오히려 가장 암울했던 그때,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한 없이 빛냈던 나 자신을 떠올려본다.
나는 이 책을 읽는 여러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실패를 겪은 그대가 새롭게 시작한 도전이 성공으로 빛을 볼지 실패로 마무리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흘린 눈물과 땀, 투자한 시간과 노력들이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분명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성공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성공에 목매는 순간 성공을 위해 쏟아부은 당신의 모든 것들이 모두 하찮은 것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으니까. 성공은 당신이 목표를 이루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때 딸려올 수 있는 매우 부수적인 것이다. 도전을 위해 변화된 자신의 모습들이야말로 삶을 살아가는데 소중한 자양분이 될 가장 값진 보상이 아닐까.
실패를 겪은 모든 이들에게 힘내라는 말 밖에 해줄 수 없는 내가 조금은 밉다. 같은 아픔을 겪어보았던 나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한 가지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실패한다 하더라도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수능이나 대학 따위가 당신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당신은 그렇게 초라한 존재가 아니다. 실패와 친해지자. 그리고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소중히 가꾸자. 어떤 결과가 드러나든 소중하게 가꿔온 당신의 모습이 나아가 새로운 도전을 할 때에 탄탄한 기반이 되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