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텃밭 여성농민 생산자 협동조합이 한 달에 한 번, ‘이달의 언니’를 소개합니다. 토종씨앗을 잇는 활동으로 씨앗의 권리를 찾고, 농생태학을 배우고 실천하며 자신과 주변 생태계를 돌보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언니네텃밭 여성농민들. 느리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자신과 주변을 살리는 언니들의 농사 이야기를 나눕니다. 두번째 생산자는 언니네텃밭에서 유일하게 계란을 선보이는 여성농민, 홍경희 언니입니다.
농민들이 모인 자리에는 언제나 흥을 돋구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역농민회 회식자리부터 언니네텃밭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큰 행사까지, 흥이 아쉬운 순간에 찾으면 결코 빼는 법 없이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홍경희 언니. 그는 농민 사이에서 공인된 예인입니다. 짧은 곱슬머리에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꾀꼬리같은 목소리는 프랑스의 국민가수 에디프 피아프를 연상하게 합니다. 이런 경희 언니는 전라남도 영광에서 목청으로 둘째라 하면 서러워 할 동물, 닭을 키우고 있습니다.
같은 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한 남편 정정기 농민을 만나 결혼 후 남편의 고향에 빈몸으로 들어와 농사를 시작했다는 홍경희 언니. 결혼과 함께 농민의 삶을 결심하면서 논농사와 밭농사를 이어오며 고된 농민의 삶을 살아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니네텃밭을 만난 이후, 부부의 농사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꾸러미에 넣을 달걀이 필요해 양계를 시작하게 된 것이죠.
닭들이 자유롭게 뛰어 놀도록 땅 위에 계사를 마련해 산란계 하이브라운을 키우는 경희 언니. 그래서 농장 이름도 ‘자유란농장’이라 지었습니다. 양계는 특히 악취가 심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마을 초입에 자리한 자유란농장은 양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청결하게 관리되어 있습니다.
경희 언니는 닭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넓은 계사에 직접 농사지은 왕겨를 두툼히 깔아주고, 직접 배합한 사료를 먹입니다. 직접 배합한 사료에는 NON-GMO 사료를 베이스로 허브(아니스, 페퍼민트, 유칼립투스, 타임오일)와 실리카가 들어간 ‘미아롬 피’, 유황, 프로폴리스와 EM(유산균, 고초균, 효모균)이 들어갑니다. 거기에 때때로 직접 기른 풀과 콩비지를 먹이기도 하고, 닭에겐 사람들이 마시는 마을 약수터 물을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닭과 퇴비에서 유익균의 비율이 높아져야 계사 환경이 좋아지고, 그런 환경에서 자란 닭이 건강하고 맛있는 달걀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계분은 계사 안에서 발효가 잘 돼 냄새가 나지 않을 뿐더러 좋은 퇴비로 숙성돼 동네사람들 대부분이 경희 언니네 퇴비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생태농업의 중요한 원리는 조화와 균형이에요. 유익균과 병원균 개체 중 유익균의 비율을 높여 균형을 맞추는 거죠. 그런데 올 여름은 너무 더워서 매일 계사에 들어갈 때마다 긴장돼요. 습도가 높은 것이 더운 것 보다더 위험하거든요. 그럴때 닭 호흡기가 약해져서 닭이 폐사하기 쉬워요. 올해 닭 한마리가 그렇게 죽어서 주변 베태랑 농가에 물어봤어요. 그런데 그 집은 벌써 수백마리를 도태시켰다는 거예요. 호흡기 질환 때문에 폐사위기가 있었다고요. 닭이 대규모로 폐사하면 아무리 생태농을 고집하던 농가라도 소독약을 뿌려서 계사를 청소해야 해요. 말하자면 원칙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소독약 뿌린다는 것이 미생물 방식에서 후퇴한 건데,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한 공든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 있겠구나, 너무 덥고 습한 환경에서 생태적 방법으로 키우는게 힘들구나. 이런걸 올해 많이 느꼈어요.”
미생물의 조화와 균형을 맞추면서도 AI를 비롯한 질병을 차단하기 위해 제독유황으로 계사 주변을 방역한다는 경희 언니. 자유란농장의 닭은 10~12개월 간격으로 ‘졸업’합니다. 이후에는 이웃들이 달걀을 자급자족할 요량으로 기르기도 하고, 이제는 닭이 졸업할 때를 기다려 닭을 가져가는 고정고객까지 생겼습니다. 유황을 먹여 키운 닭이라 인기가 좋다고요.
경희 언니는 주업인 계란 말고도 농사를 더 짓습니다. 닭에게 왕겨를 제공하는 벼농사, 그리고 가족들과 먹기 위해 기르는 토종작물입니다. 경희 언니 밭에는 계절별로 토종 가지, 대파, 노각오이, 아욱, 시금치, 흰당근이 자라고 있습니다. 흰당근은 씨앗을 맺기 전 줄기가 높이 올라오며 함박꽃처럼 피는 모습에 반해 심기 시작했고, 토종 가지는 씨앗을 뿌리는 족족 100% 발아해 농민을 기쁘게 하는 작물입니다.
가지는 내가 좋아하는 토종이에요. 생산자들이 토종을 안 하는게 안타까운데 가지나 오이가 금방 쇠어진다는 거예요. 겁나게 쓰고 빨리 늙어부러서 상품성이 없대요. 그런대 내 생각은 달라요. 토종가지는 훨씬 오동통하고 개량종보다 살이 더 많아요. 나는 더 맛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왜 맛이 없다고 하지? 잘 키우면 오히려 모양도 더 예쁜데... 토종오이도 노각(늙은오이)으로만 보면 상품성이 좋아요. 노각을 즐기지 못하면 토종의 진가를 알지 못해요. 향을 아는 사람들은 노각을 알 텐데, 진짜 고급이여. 시골에서 살지 않으면 늙기 전에 따 버리니까 그 맛을 모르는 거지...
좋아하는 토종농사 이야기를 할 때면 말이 빨라지고 사투리가 잔뜩 묻어 나오는 경희 언니. 농민들이 토종농산물을 많이 키우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규모화 된 농업환경에서 토종 농산물을 키우는게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토종은 취미’라며 가족과 함께 먹고 씨앗을 잇는데 의미를 둡니다. 때때로 수확이 많으면 계란을 주문하는 소비자들과 함께 나누기도 합니다. 정기적으로 달걀을 주문해 먹는 소비자는 이번엔 경희 언니가 어떤 토종작물을 함께 보냈을까 기대하곤 합니다.
“허브를 급여한 뒤로 냄새가 많이 사라졌어요. 우리가 양계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아무도 계사가 있는 걸 모를 경지로 관리하고 있죠. 허브는 직접 키워서 닭장에 넣어주기도 해요.”
“평사여도 우리 안에 산짐승이 들어올 때 있어요. 특히 삵이 맛을 알면 날마다 출퇴근을 해요. 너구리도 온 적 있고. 야생동물을 잡지 못해서 50마리를 잃은 적도 있어요. 밤새도록 지킬 수도 없고, 어디로 출물하는지 구멍 찾기도 힘들고... 방사나 평사 유정란은 이렇게 산짐승 손해가 많아요. CCTV 달아놓으니 이제 뭐가 들어오는지 대충 보이죠.”
“유기농채소나 과일이 안 예쁘고 그런 것 처럼 달걀도 유기농 방식으로 기르면 솔직히 모양은 잘 안 나와요. 항생제 안 쓰고 자연치유 되길 기다리니까 모양이 너무 안 나오는 달걀은 우리가 먹고 주변에 나눠줘요. 고가의 천연약제를 가져가 써도 10개월에서 12개월 지나면 최상의 품질이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그 시기마다 한번씩 닭을 교체하고 있어요.”
“달걀을 수확하면 깃털도 묻고 그렇잖아요. 그런걸 소비자에게 보내고 싶지가 않아서 사람이 장청소 할 때 먹는 루골액을 옅게 희석시킨 물에 달걀을 한번 세척해요. 물기를 일일이 말려서 포장하는게 번거롭긴 해도 이렇게 보내는게 마음이 편해요.”
“여기는 회복실. 무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 닭들은 따로 마련한 공간에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해줘요. 이런 공간이 필수로 있어야 해요.”
“저도 처음엔 농협사료를 먹여 닭을 키웠거든요. 그러다 언니네텃밭 덕분에 더 자극을 받아서 논지엠오(Non-GMO) 사료를 먹이려고 알아봤어요. 논지엠오 먹이려면 정미소에서 부산물을 구해와야 하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고, 고가이지만 논지엠오 사료를 받으려 했더니 그건 가농 회원이 아니면 배달받을 수 없대요. 그런데 지금은 가농 회원들만 받는 서울사료 논지엠오 사료를 받아요. 우리가 회원도 아닌데 우리 농장만 보고 김제에서 여기까지 배달을 해주죠. 지금 해썹(HACCP) 인증을 추진 중인데 해썹에서는 자가사료가 인정이 안돼요. 그런데 우리같은 작은 규모에도 검증받은 논지엠오 사료를 보내주니 운이 참 좋죠.”
이런 경희 언니가 예전에는 대규모 관행농을 했다면 믿어지시나요? 농사를 시작해 10년동안은 6천평에서 1만평 규모로 일꾼을 고용해 대규모 수박 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농민을 보호하는 정책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지만 그런 것 조차 없었던 시절. 비가 오거나 가격이 폭락해 가계가 곤두박질 치는 것을 몇해 경험하며 고된 농민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대규모 농사가 그래요. 농약도 치는데 그 약은 농부가 먼저 마시잖아요. 약은 약대로 먹고, 이윤도 안 맞아요. 초기 자본이 정말 많이 들어가요. 고추만 봐도 비닐, 스프링쿨러, 부수시설, 지지대... 중소기업 투자 이상이라니까요. 그걸 1만평, 2만평 규모로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때나 지금이나 가격폭락이 매번 반복되는데 그런 것을 예전 정부나 지금정부나 전혀 해결하지 못해요. 농업기술은 첨단과학으로 다 제어한다는데 왜 수급조절은 안 되는지. 정부에서 수급조절을 못하니까 한 쪽에서는 가격폭락을 경험한 농민들이 과잉생산된 농산물을 파뭍거든요. 그런데 한쪽에서는 생산량을 높인다며 스마트팜 정책을 미는게 이해가 안 되죠.”
이익을 남기기 보다 실패하는 해가 더 많았던 농사. 자식들 키우며 농사를 이어나가기 위해 부부는 번갈아가며 직장생활을 하면서 까지 가정경제를 지키고 농사를 이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지을 땅을 지키는 것은 홍경희, 정정기 농민 부부에게 사명같은 것이었습니다.
“농촌에서 논의 형상이나 밭의 형상이 없어지면 공장이나 다른 건물이 들어서요. 그 땅이 다시 농지로 회복되는게 힘들어요.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농사는 농민이 계속 농사를 지어서 유지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농사를 놓을 수 없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라도 놓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죠.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누군가 해야할 일을 우리가 하고 싶으니까요. 지금 농부가 인구의 2.5%라고 하는데 농정이 이대로 간다면 누가 계속 농부로 살아갈 수 있겠어요. 정부도 고민해야 하고, 지금 농민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농사를 이어나가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감이 돼야해요. 어려움 속에서도 농사를 계속한 이유는 그런 것들 때문이죠. 거창한 것 같지만 농민운동하는 사람들은 아마 제 생각에 공감할 거예요.”
언니네텃밭으로 꾸러미 사업에 생산자로 참여하게 되며 경희언니는 양계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30마리로 시작했던 양계는 꾸러미 회원이 늘어나며 100마리로 늘었고, 점차 늘기 시작해서 이제는 800마리가 되었습니다. 어엿한 농장 경영주가 된 거죠. 이렇게 언니를 불안하고 고되게 하는 대규모 농사와는 결별하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언니네텃밭이 요구하는 생태농업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면서 경희언니의 양계도 달라져왔습니다. 농협사료를 먹던 닭도 이제는 논지엠오 사료를 먹고, 밭농사를 하던 경험을 활용해 닭이 먹을 청초와 보리를 직접 키워 먹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해썹과 동물복지 인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모든 판매방식을 100% 직거래로 바꿨고, 농장을 운영하며 나온 계분으로 자가퇴비를 만들어 소규모 텃밭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자급자족을 하며 남는 양파나 마늘은 조금씩 팔고 있는데 이제는 매년 그 양파나 마늘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소비자가 있어 넉넉하게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농사에서 서로를 지지하는 안정적인 직거래 방식으로 농사와 생활이 모두 바뀐 셈이죠.
“내가 민요강사를 2년동안 했어요. 그때 토속민요, 통속민요가 전승된 마을마다 노래를 수집하러 다녔죠. 그래서 강강술래는 공연하기전 준비할 필요도 없을 정도 경지에는 이르렀어요. 가사도 다 욌고요. (웃음) 가사를 보면 주로 여성들이 부르던 노래가 많거든요. 지금은 많이 돌아가시고 얼마 안 계신 할머니들 이야기 들어보면 어릴때 강강술래가 일상적으로 하던 놀이였대요. 대보름때만 한 게 아니라 자주 하며 놀았다고요. 밤새도록 하기도 했고요. 자세히 들어보면 내용이 다 여성들이 한 고생 했던 내용이야. 옛날엔 베짜는게 제일 힘들었대요. 낮에논일 하면서 밥하고 그러면서 길쌈(베)하면서 눈 비벼가며 잠도 못 자고 하는게 제일 힘들었다는데 그 노동요가 강강술래 소재에요. 그렇게 만든걸 자기는 입지도 못하고 가족들 입히고...”
경희 언니는 무형문화제 17호 우도농악보존회 이수자입니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 좋아하는 언니는 바쁜 일상 속에도 짬을 내 자신이 좋아하는 민요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토속민요에는 여성농민의 삶이 많이 담겨있어 특히 공감이 많이 되지만, 가사를 알수록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헌신하고 희생하며 사는 삶이 대부분이고 회환이 담긴 내용이 대부분이라고요.
“가사를 보면 마음에 안드는 내용도 참 많아요. 여성혐오적인 표현도 있고요. 그럼 가사를 고쳐불러요. 길쌈 노동요에 ‘망구’라고 할머니를 낮춰 부르는 부분은 ‘할매’로 바꾼다든지 그런 식으로요. 토속민요가 여성농민의 삶인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공감 가는 부분이 많죠. 그래서 식기세척기랑 빨래 건조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 찾으며 더 나아질 방법을 고민하는 경희 언니. 고되고 힘든 상황도 특유의 흥을 발휘해 이겨내는 언니는 언제나 당당하고 유쾌합니다. 이런 언니가 너무 궁금하다고요? 그렇다면 언니네텃밭 행사에 오세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에너지를 나눠줄 거예요. 언니가 등장할 때면 외치는 단골 인사말과 함께요!
여성농민회 공인된 예인 홍경희올시다!
© 언니네텃밭 여성농민 생산자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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