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5일 ~ 11일
사진의 여인은 미소를 짓지만 왠지 서글퍼 보인다. 나른하면서 기운이 없어 보인다. 사진은 36년 장기집권 후에도 다시 7번째 임기 시작을 위해 투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대통령 폴 비야가 이끄는 카메룬의 평범한 일상을 담았다. 여인의 서글픈 표정, 기운 없는 표정이 폴 비야의 장기집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잘 사는 나라의 사람들도 얼마든지 서글프고 기운 없는 모습으로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여인의 표정이 카메룬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에 선택된 것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정기적으로 대통령이 교체되고 독재를 있을 수 없는 사회악으로 여기는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1982년부터 단 한 번의 정권교체 없이 똑같은 대통령이 통치한 나라에서 사는 사람의 심정이 이 여인의 모습으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미소를 짓지만 왠지 서글프고, 나른하며 기운이 없는 삶.
카메룬이란 나라를 간략히 살펴보자. 카메룬은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중소규모의 국가이며, 우리에겐 축구로 유명하다. 역사적으로는 1902년에 독일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침입에 독일군이 항복하면서 1919년, 카메룬의 90%가 프랑스, 10%가 영국에 분할되었다.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위임통치를 받게 된 카메룬은 1922년 프랑스의 카메룬과 영국의 카메룬스로 차이를 갖게 된다. 1944년에 영국 통치하의 카메룬스가, 1947년에 프랑스 통치하의 카메룬이 독립운동을 시작했고, 1960년 1월 1일 카메룬공화국으로 독립했다. 현재 10%의 영어 사용 국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만 단독 공용어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가 카메룬을 프랑스의 피지배국으로만 떠올리게 되는 연유이다.
카메룬을 통치하는 폴 비야(Paul Biya)는 초대 대통령 아히조(Ahmadou Ahidjo)의 뒤를 이어 1982년, 카메룬의 두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36년이 지난 2018년 지금까지, 우리 나이로 86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7번째 연임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막강한 야권 후보가 부재한 상태에서 이는 거의 기정 사실화되어 있다. 그가 연임을 자신하는 또 다른 배경으로 나이지리아의 악명 높은 극단 이슬람주의 조직 보코하람을 카메룬에서 패퇴시켰다는 사실(2018년 9월 30일 공표)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심지어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는 문젯거리가 있다. 앞서 언급한 소수의 영어 사용자들이 그것이다. 그들은 영어를 공용어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폴 비야 정부는 이를 분리 독립운동으로 간주하여 무려 400명의 영어 사용 국민을 살해했다. 이런 까닭에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아프리카의 다음 내전지로 카메룬을 꼽기도 한다.
그밖에도 카메룬에는 여러 문제들이 있겠지만 대체로 카메룬의 국민들은 폴 비야의 장기집권을 그리 문제시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폴 비야에 대한 <나무 위키>의 설명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는 모부투 세셰세코 (구 자이레, 현 DR콩고) 대통령처럼 국가 부를 엄청나게 착복하거나 자국민을 학살하는 등의 인간 이하의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장기집권에 반기를 들지 않는다고 한다. 적당한 지지율을 기반으로 적당히 통치하고, 국민에게 극단적으로 원한을 살 일만 하지 않으면 평범한 독재자로 취급되는 것이다. 폴 비야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막대한 권력을 손에 쥐고도 대부분의 시간을 외국에서 보내고 자국에서는 외교사절을 접견하는 일에 치중하며 눈에 띄는 통치행위를 하지 않고 있다. 수많은 쿠데타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변칙적인 정치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자국민이 장기집권 독재에 대해 대대적인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 상황에서 남의 나라 정치에 감나라 배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위의 사진들로 알 수 있듯이 야당 지지자들은 폴 비야의 장기집권을 반대할 것이고, 대통령 지지자들은 폴 비야의 7선 연임에 환호할 것이다. 폴 비야의 7선이 성공한 후에도 카메룬이 조용하면 그걸로 끝이다. 다시 한번 카메룬 여인의 사진을 보자. 카메룬의 현재 정치적 상황을 떠올리지 않으면 지극히 평범한 카메룬 여인의 일상적인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정기적인 대통령 교체가 당연시되는 나라의 사람에게 82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대통령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은 믿기 힘든 비극이다. 혹여 정치적 우월감에 빠진 감상이란 비아냥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아프리카는 지구에서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가장 젊은 대륙’이다. 그러나 그곳 정치가들의 평균 연령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역설적 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이 장기집권으로 인한 폐해이다. 아프리카가 엄청난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늘 정체되어 있는 건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정치적 역동성의 부족이 한몫을 할 것이다. 폴 비야가 이끄는 카메룬은 그런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나라이다. 다시금 여인을 보며 서글프고 기운 없는 카메룬을 떠올린다. 폴 비야가 7선 연임에 성공하고 국민도 그것에 불만을 표하지 않으며 아무런 정치적 변화가 없는 이상,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