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프리카 마치 Jan 15. 2019

23. 이상한 내전이 벌어지는 나라, 남수단

2018년 10월 19일 ~ 25일

Reuters / 목요일, 지난달에 서명한 평화 협정의 일부로, 남수단 전쟁 포로들이 수도 주바에 있는 감옥에서 나오고 있다.



-아프리카 마치의 단상-


요즘 세상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는 ‘전쟁포로’라는 단어에 곧바로 사진을 보았다. 어둡고 수척할 거란 예상과 달리, 석방에 기뻐하는 것처럼 보여 다행스럽다. 이들은 남수단 대통령 살바 키르(Salvar Kiir)의 정적인 릭 마차르 (Riek Machar) 부통령의 편에 서서 내전을 벌인 남수단 정부의 전 주지사와 반란군 사령군들이다. 그런데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부통령이 서로 정적이고, 내전을 벌인다고?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가발전이라는 같은 뜻을 갖고서 협력해야 할 동업자가 아닌가? 하지만 남수단은 그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남수단 사람들은 2011년에 그리도 염원하던 독립을 쟁취하고도 이전보다 훨씬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수단에서 분리독립


대체 왜 그렇게 된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 2011년에 독립해서 이제 겨우 7년밖에 되지 않은 남수단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봐야겠다. 일단 남수단이 분리 독립되기 전의 수단공화국을 남쪽 수단과 북쪽 수단의 개념으로 비교해서 살펴보자.  북쪽 수단은 이집트에, 남쪽 수단은 에티오피아에 면해 있다는 지리적 환경으로 유추할 수 있듯이, 북쪽 수단에는 이슬람교를 믿고 아랍어를 구사하는 아랍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남쪽 수단에는 기독교 또는 토속신앙을 믿으며 영어나 각 부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흑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이 함께 살면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내전이 일어났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이렇듯 수단은 매우 이질적인  남과  북이 억지로 묶인  나라였다. 게다가 남쪽에는 엄청난 량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고 북쪽에는 석유 채굴과 수출에 필요한 인프라가 구비되어 있는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해 분리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2010년에 촉발된 아랍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수단(북쪽 수단)이 전처럼 남쪽 수단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 남수단은 2011년 2월 분리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이에 99%가 찬성하면서 그해 7월 독립을 쟁취해낸다. 나아가 UN에 193번째 독립국가로  UN 회원국이 되어 전 세계의 인정을 받는 신생국가로 탈바꿈한다. 수단과 벌인 10년간의 전쟁 뒤에 이룬 성과였다. 수단으로써는 눈앞에 있던 남수단의 석유가 물거품이 되고 국토 대국으로서의 지위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힘든 상황이었을 텐데, 뜻밖에도 남수단 독립선포식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서 남수단의 독립을 축하했다.  남수단의 독립은 싱거울 정도로 손쉽게 성사되었다.



살바 키르의 등장


적은 내부에 있다는 말은 남수단을 두고 하는 말인가? 고대하던 독립을 쟁취했으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와야 하건만, 남수단은 내부에서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초대 대통령 살바 키르가 2013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독재를 가능케 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한 것이다. 이에 반발한 당시 부통령 릭 마차르는 남수단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이들과 정부에 반대하는 민주세력을 규합하여 살바 키르에  저항한다. 2013년 남수단 내전의 시작이었다. 일견 친정부 독재세력 대(對) 반정부 민주세력의 싸움으로 보이지만, 살바 키르 대통령의 딩카족 대(對) 릭 마차르 부통령의 누어족이 벌이는 싸움으로도 볼 수 있다. ‘누어족인 릭 마차르는 살바 키르가 딩카족 위주의 정책을 펴서 누어족에게 피해를 입힌다고 보고, 살바 키르(딩카족)은 릭 마차르(누어족)가 쿠데타를 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출처: 나무 위키>  실제로 남수단 내전 연구자들은 이를 종족 간 싸움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인권유린의 현장


지난주 <이 주의 장면>에서는 앙골라로 피신 간 DR콩고인들이 앙골라 정부에 의해 살해되고 쫓겨나는 비극적인 사건을 다뤘다. 그러나 이번 주에는 그보다 더 비참하고 믿기 힘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살바 키르 대통령 치하의 남수단 국민들은 정부군에 의해 살해되고 있고, 자신의 나라에서 사는 것이 무서워 다른 나라로 도망치고 있다. 살바 키르의 정부군은 딩카족을 위한 군대는 될 수 있을지언정 남수단 국민 모두를 위한 군대는 될 수 없다.  살바 키르라는 대통령이 있어도 남수단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다. 남수단 인구의 90%가량이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빈층이라는 사실을 차치하고도 정부군, 이른바 딩카족 군대가 남수단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딩카족 외의 누어족을 비롯한 타 종족 마을에 대한 방화, 여성들에게 벌이는 강간 및 살해, 소년병 징집, 인육 먹이기 등이 현재 진행형으로 살바 키르 정부군에 의해 자행된다.  너무나 끔찍해서 여러 문헌에서 수집한 사례들을 자세히 논하고 싶지는 않다. 국제사회가 보낸 구호물품의 유입을 막기 위해 정부군이 타 종족 마을의 입구를 봉쇄하고 무단 갈취하는 일은 애교로 봐줄 정도다. 2015년에 맺은 평화협정에도 불구하고 남수단은 여전히 내전 상태이다. 이번에 석방된 다섯 명의 전쟁 포로들은 지난달에 맺은 평화협정으로 석방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실은 한참 전에 석방되었어야 한다. 아직도 감옥에는 수많은 전쟁 포로들이 남아있다. 살바 키르는 현재 망명 중인 릭 마차르를 남수단으로 불러 안전을 보장하고 부통령직에 앉히겠다고 말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그의 말을 믿기란 힘들다. 게다가 그는 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군대가 저지른 잔학 행위를 뻔뻔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릭 마차르는 평화협정을 완성시키기 위해 2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10월 31일 남수단으로 돌아왔다.)



남수단에도 평화가 올까


대통령과 부통령의 정치적 갈등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해도, 이 지경이 될 정도로 싸워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심지어 권력을 장악한 정부가 군대를 대동해서 이토록 국민을 괴롭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취약국가 지수 1위의 파탄 상태에 이른 남수단의 재기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돕고 싶어도 정부가 막고 있다. (비록 독립 전의 이야기지만) 남수단도 한 때는 풍부한 농산물 덕분에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국가였다. 자국에 매장된 엄청난 량의 석유 덕분에 갈등 상황에서는 배짱을 부릴 여유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어디서도 희망을 찾기 힘들다. 하루에도 수천 명이 남수단을 떠나고 있다. 그렇게 수백만 명이 자신의 나라를 등졌고, 남은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로 언제 살해될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상황에 방치되어 있다.  


자신을 지키고 보호해줘야 할 사람이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상황, 그것이 바로 남수단 사람들이 처한 현실이다. 남수단 국민들은 내전으로 인한 엄청난 피로감을 호소하며 제발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시 사진을 본다. 석방된 포로들은 다시 무기를 들게 될까 아니면 정부에 회유될까. 제대로 된 삶을 보장받을 수는 있을까. 저 미소가 유지될 수 있을까. 정부가 국민을 죽이는 이상한 내전이 벌어지는 나라, 남수단에서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찾아올 수 있을까.



글을 마치며


아프리카 공부를 하던 당시, 남수단 내전에 대해 논문을 작성하던 군인 동기가 있었다. 한국이 남수단 재건을 위해 군부대(한빛부대)를 파병했다는 말에 내가 위험하지 않느냐고 묻자, 군인 동기는 우리나라 부대가 있는 곳은 위험하지 않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때는 그렇구나 하고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남수단도 사람 사는 곳이라 숨 쉴 곳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외국 부대가 있는 곳은 특별히 안전하게 보안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아두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다. 


또 하나, 지금 일어나는 남수단의 불행한 사건들이 종족을 고려하지 않은 국경선 분할이라던가 교묘하게 종족 간 분쟁을 일으켜 식민통치를 원활하게 했던 서구 열강의 조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남수단을 가망 없는 곳으로 바라보는 나의 시선 역시 서구의 시선을 그대로 옮겨놓은 게 아닌가 하는 반문도 해본다.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를 안타까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아프리카는 정말 문제가 많은 대륙이야라고 말하며 그곳 사람들을 한 수 아래로 바라보는 것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도 남수단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 불과 30년 전, 우리나라에도 정권을 무단으로 탈취했던 군부가 그것에 저항하는 국민들을 무차별하게 살해한 적이 있었다.  만행을 저지른 자들은 아직까지도 사죄는커녕 자신의 죄를 부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때는 정부가 국민을 죽이는, 이상한 내전이 벌어지는 나라였던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2. 앙골라에서 쫓겨나는 DR콩고 이주민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