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상카라, 페스파코 등 이모저모 2018년 10월 26일 ~ 11월
지난 3주 연속으로 아프리카의 안 좋은 소식들, 예컨대 독재, 난민 추방, 내전에 관한 이야기들만 하게 되어 다음엔 꼭 아프리카에 대한 즐겁고 유쾌한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보기에도 기분 좋은 사진이 있어야 하는데, 다행히 이번 주엔 내 바람을 충족시켜주는 사진들이 많아 다행스러웠다. 내 글들로 인해 아프리카에는 불행한 사건들만 있다는 편견이 더욱 강화될까 봐 두려웠는데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다.
많은 좋은 사진들 중에 <이 주의 장면>으로 선택한 것은 부르키나파소의 인형 디자이너와 그녀가 만든 인형이 담긴 사진이다. 매번 어둡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와 사진들을 보다가 이렇게 사진 속 화사한 색감과 피사체의 미소를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디자이너의 손에 쥐어진 완성 직전의 인형은 무표정인데도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지금 내 표정은 인형을 바라보는 디자이너의 그것과 똑같다. 마치 엄마가 아직 철들지 않은 막둥이를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오늘은 이런 따뜻한 기분을 선사한 사진의 국가인 부르키나파소를 살펴볼까 한다. 사실 부르키나파소는 콩고민주공화국 다음으로 아프리카에서 내가 가장 아끼고 잘 되기를 바라는 나라이다. 이 두 나라에 대한 나의 마음을 간단히 말하자면, 콩고는 그 나라 사람들과의 만남이라는 직접적인 인연에서 비롯된 애정이고, 부르키나파소는 그 나라를 공부하며 알게 된 국민들의 맑은 심성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국민의 뜻에 반하고 독재를 펼친 정치가들은 부르키나파소 국민의 범주에 넣지 않았다.)
부르키나파소를 말하려면 반드시 이 사람을 언급해야 한다. 토마 상카라(Thomas Sankara 1949~1987). 아프리카에 대해 또는 세계사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온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부르키나파소,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를 만든 사람이 바로 그이다. 개인적으로는 토마 상카라를 아프리카에서 제일 멋진 남성이라고 생각한다.
서아프리카 사하라 주변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소는 오랫동안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1960년 독립했다. 이후 극심한 가난과 혼란을 겪었지만 1984년 토마 상카라 대통령의 개혁으로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민주 국가로 재탄생했다. 그의 개혁은 만성적 빈곤과 독재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토마 상카라는 대통령 자신과 장관들의 월급을 대폭 삭감하는 대신 질병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예방접종과 의무교육을 시행했고, 고질적인 여성 할례 관습을 타파했으며, 철도와 도로를 건설하는 국가 개조사업을 착수했다. 또한 공공장소에 대통령의 초상화나 사진을 걸어두는 것도 금지했다.
쿠바 같은 사회주의 국가를 꿈꿨던 그가 미국의 눈 밖에 난 것은 당연했다. 과거 부르키나파소를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에게도 불온한 존재로 낙인찍혔다. 국내 보수적 엘리트의 이반 현상이 심해졌고, 바로 그때 친한 동생이자 동지로 함께 했던 블레즈 콩파오레의 배신이 일어났다. 권부 이인자로 꼽히던 콩파오레는 1987년, 쿠데타를 일으켜 형 토마 상카라의 등에 칼을 꽂고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대외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한 불화를 표면적 이유로 내세웠지만, 그가 권력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블레즈 콩파오레는 대통령이 된 뒤 토마 상카라가 취했던 대부분의 개혁 조치들을 무위로 돌려놓았다.
토마 상카라가 대통령이었다면 계속해서 누릴 수 있었던 권리를 박탈당한 부르키나파소 국민들은 2014년까지 무려 27년간 독재를 해왔던 블레즈 콩파오레가 5선 연임을 위한 개헌을 시도하자 극렬하게 봉기한다. 결국 부르키나파소 국민들은 콩파오레를 끌어냈고, 이 사실은 장기 집권을 꿈꾸고 있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재 권력자들에게도 위협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도 부르키나파소처럼 독재권력을 끌어내린 아프리카 국가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사실은 부르키나파소 국민들이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매우 우수한 정치의식과 실천력을 갖고 있는 사례로 해석이 가능하다. 콩파오레에 반대하는 군부의 개입, 즉 쿠데타가 콩파오레 축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군부의 과도정부를 거친 뒤, 2015년 12월 선거를 통해 민주진영에서 활동했던 야당 인사 로크 마크 크리스티앙 카보레이가 부르키나파소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민주 정부를 둔 부르키나파소의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용기와 과감성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의 통치를 받았던 부르키나파소는 아직도 과거 식민통치국가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리 프랑스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서슴없이 표출한다. 올해 부르키나파소의 와가두구 대학을 방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의 대 아프리카 정책을 비판하는 대학생들과 고성까지 지르며 설전을 벌여야 했다. 사실 프랑스에 대한 부르키나파소 국민들의 반감의 이면에는 프랑스가 콩파오레에게 토마 상카라 대통령의 암살을 사주했다는 확신이 있다.
원래는 부르키나파소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정치 이야기를 길게 하고 말았다. 사실 한 나라의 현재와 미래의 발전 가능성을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실현되는 안정적인 국가가 발전하리라는 것은 당연한 예상이며, 그런 나라에서 활기찬 문화와 예술이 발생할 수 있다. 비록 수많은 쿠데타와 테러가 일어났고 오랜 독재 때문에 교육, 복지 상황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열악한 부르키나파소이지만, 제대로 된 지도자(토마 상카라)를 가졌던 경험은 부르키나파소 국민에게 다른 아프리카 국가의 국민들이 갖기 힘든 높은 차원의 정치의식을 심어주었다.
그런 의식은 문화와 예술로도 이어져서 부르키나파소는 아프리카의 문화와 예술의 부흥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판을 받고 있다. 또 앞에 제시된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조형예술이 매우 발달한 나라로도 알려져 있다. 솔직히 나는 부르키나파소의 문화예술에 대해 언급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지식과 참고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부르키나파소의 문화’를 검색해서 찾아낸 글로 그에 대한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부르키나파소는 다양한 종족의 문화를 보여주며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오고 있다. 특히 전통가옥, 조각(나무, 동, 여러 가지 물체) 등에 뛰어난 예술 감각을 가지고 있다. 수도인 와가두구에 볼타인(人)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생생히 보여주는 국립박물관이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최근 아프리카 예술과 문화의 부흥을 주도하고 있는데, 1969년부터 홀수 해에 2~3월에 걸쳐 페스파코(FESPACO)영화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짝수 해에는 3~4월에 음악, 무용, 극장 공연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축제를 개최한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기념품 시장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 부르키나파소의 문화>
마지막으로 부르키나파소에서 열리는 아프리카의 주요 영화제인 페스파코의 사진 몇 장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열 마디 말보다 한 번 보는 것이 페스파코를 훨씬 더 생동감 있게 느끼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