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프로마치 Jan 17. 2019

2. 절벽에 선 사람들, 아프리카 난민

2019년 1월 4일 ~ 10일

Getty Images / 일요일, 스페인 해안에서 고무보트가 구조된 뒤 말라가에서 한 난민이 응시하고 있다.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충혈되고 피곤해 보이지만 강렬한 남자의 눈빛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남자는 스페인 해안에서 구조된 고무보트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아프리카 어느 조국에서의 힘겨운 삶에서 벗어나 유럽에서 새 삶을 살 기대로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을 브로커에게 맡겼을 것이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뒤집힐 고무보트에 몸을 맡긴 채 바다를 건넜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뒤집혀 버린 고무보트. 천신만고 끝에 구조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인데 남자의  눈빛에서 강한 두려움이 감지되는 것은 왜일까. 


감히 추측하건대, 살아남고 보니 자신이 아무도 자신을 반겨주지 않는 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목숨을 걸고 스페인이라는 생면부지의 나라에 도착한 남자는 절벽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자신을 힘들게만 했던 지긋지긋한 조국을 떠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외면했던 타국에서의 진짜 삶을 불현듯 깨닫게 된 것이다. 그 모든 일들을 생각하니 모든 것이 두렵다. 살아남은 것이 반드시 기쁘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걸, 어쩌면 죽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붉은 천으로 가려진 얼굴에서 조심스럽게 드러나는 눈빛에는 대상을 알 수 없는 막연한 원망이 서려있다.  


떠나는 것 말고는 할 수 없는 게 없어서 떠났지만, 떠나온 곳은 그에게 다시 떠나라고 명령할 것이다. ‘세상은 하나’라는 말은 거짓이다. 세상은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다. 강한 세상과 약한 세상, 명령하는 세상과 복종하는 세상, 부유한 세상과 가난한 세상, 주도하는 세상과 소외되는 세상, 빛나는 세상과 어두운  세상으로… 어떤 세상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삶의 양상이 달라지고, 인생에 대해 갖는 감정과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남자가 강하고, 명령하고, 부유하고, 주도하고, 빛나는 세상에 태어났다면 두려움은 자신감, 원망은 자부심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꼭 자기 나라를 떠나야 하느냐고. 자기가 사는 곳에서 잘 살면 안 되느냐고. 잘 사는 나라에 굳이 와서 살려는 건 욕심 아니냐고. 못 사는 나라의 인간이 잘 사는 남의 나라에 와서 괜히 물 흐리지 말라고. 나처럼 소극적이고 이동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다른 이유에서, 이들의 목숨을 건 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 나라에서 사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 왜 힘겹고 서러운 이방인의 삶을 자처하는 것일까. 이 모든 질책과 연민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인간다운 삶을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적극적이고 숭고한 의지를 무시하고 있다. 



Reuters / 이집트 아이들이 “죽은 자의 도시”라는 별명의 민야(Minya) 외곽 묘지에서 놀고 있다. 목요일, 이집트는 2019년 아프리카네이션스컵 개최국으로 선언되었다.



어린 시절, 폐허 속에서도 즐겁게 뛰어놀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의 일들에 무지해서겠지만, 내일은 지금보다 나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을 자기도 모르게 갖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지금,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저 남자는 낯설고 호의적이지 않은 시작 앞에 두려움과 원망에 휩싸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릴 적 의 막연했던 믿음을 이루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결코 녹록치 않은 삶의 여정이 그의 앞에 놓여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가 끝내 자신이 품어왔던 삶의 모습을 그려내길 바란다. 남자와 같은 사람들이 성공하는 일이 늘어날 수록, 두 개로 분리된 냉정한 세상은 ‘둥글게 둥글게’ 하나로 연결될 터이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