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1일 ~ 17일
2014년에 아프리카 공부를 처음 시작했다. 아프리카 공부는 아프리카 대륙 전반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살펴보는 것과 동시에 아프리카 대표 국가들을 선정하여 공부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첫 번째 나라가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한 케냐였다.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한 데다 아프리카 54개국 중 처음으로 접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나는 케냐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좋은 나라 또는 가장 잘 사는 나라일 거라 생각했다. 현대적 도시 외관을 자랑하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나 야생이 살아 숨 쉬는 킬리만자로 국립공원과 사파리 투어, 케냐인들의 주요 식사인 우갈리에 대한 이야기들은 책을 통한 간접경험이었지만 케냐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게다가 ‘다 잘 될 거야’, ‘문제없어’라는 뜻의 스와힐리어(케냐 언어)인 ‘하쿠나 마타타’가 한참 유행하며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 아프리카의 첫 관문인 케냐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공부가 무르익으면서 케냐 현지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지역 전문가를 초빙하여 그곳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책으로 접했던 평화롭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이야기들과 달리 케냐 전문가는 2013년 9월에 일어났던 폭탄테러부터 언급했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 중심가의 쇼핑몰에서 9월 21일부터 24일까지 나흘 동안 지속된 이 사건으로 무려 72명이 살해되었는데, 사상자 중에는 한국인 관광객도 포함되어 있었다. ‘젊음’ 또는 ‘청년’이란 뜻의 소말리아의 이슬람 극단조직 알 샤바브의 소행으로, 기독교 국가 케냐가 이슬람 국가 소말리아에 군대를 파병한 것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나는 아무리 위험하다는 아프리카에서도 케냐 정도 되는 나라는 안전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도심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폭탄테러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아프리카를 가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무서워서 아프리카를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로부터 약 5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똑같은 알 샤바브의 소행으로 알려진 케냐 도심 폭탄 테러 소식을 접하며 그때와 비슷한 두려움을 잠시 느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도심 테러가 비단 아프리카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아프리카를 공부하는 나로서는 아프리카는 위험하다는 세간의 편견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었다. 다른 대륙보다 아프리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더 잦을 순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꼭 아프리카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2014년 당시 케냐 지역 전문가의 대답이 떠오른다. 현장 근처에 있으면서 무섭지 않았냐는 내 질문에 그는 ‘사람 사는 곳에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너무 단순하게도 그 말을 ‘아프리카에 가려면 그 정도의 담대함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아프리카에 대한 내 인식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아프리카에 대해 완전히 무지할 때에는 그곳을 막연하게 나와 멀리 있는 곳, 많이 가난하고 살기 힘든 곳으로 생각했다. 아프리카를 조금 배운 뒤에 아프리카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지의 세계, 신비로운 곳,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그러나 공부가 무르익고 실상을 알게 되면서 그곳은 다시금 위험한 곳, 예컨대 케냐 도심 테러처럼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곳이 되었다. 하지만 그곳에 대해 깊이 숙고하게 되면서 아프리카를 그렇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갖게 된다.
아프리카든 지구의 어느 잘 사는 대륙이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위험이 내재한다. 아프리카가 위험하다는 말은 반은 사실이지만, 반은 편견이다. 그 편견이 아프리카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만든다면 너무 아까울 것이다. 아프리카에 대한 나의 진실한 마음과 예비된 애정이 폭탄 테러에 무너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테러로 고인이 된 분들의 명복을 빈다. 피해자 분들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