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9일 ~ 7월 5일
과거에 식민통치를 했던 국가가 피식민 국가의 독립운동가를 존경하여 수도에 동상을 세운다? 일본이 아직도 우리에게 사죄하지 않고 오히려 적반하장 격의 행동을 보이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 벨기에 역시 다른 식민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콩고민주공화국(이하 콩고)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하고 잔인한 짓을 저질렀고, 독립 이후에도 콩고에 안 좋은 영향력을 미치려고 했다는 것을 알기에 더 이해할 수가 없다.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가보지 않게 될 저 먼 나라 콩고를 단지 자신의 부강함을 과시하기 위해 심지어 벨기에 것도 아닌 자기 것으로 사유화했다. 그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이전에 그보다 더 잔혹한 홀로코스트를 저질렀던 인간이다. 예컨대 당시 환금작물로 콩고에서 많이 생산되는 고무를 할당량만큼 채취하지 못하면 손목을 잘라버렸는데, 그렇게 해서 손목을 잘린 사람들이 수백만이었다. 레오폴드 2세와 벨기에의 통치기간(1880년부터 1960년)에 살해된 콩고인 수는 1000만 명에 달한다.
파트리스 루뭄바(1925~1961)는 '자유로운 콩고의 자주독립과 통합'을 주창하며 콩고가 벨기에로부터 정치적 독립뿐만 아니라 경제적 독립까지 이룰 것을 주장한 민족주의자다. 1960년, 지속적인 독립운동과 ‘아프리카 국가 독립’이라는 세계사의 거센 물결이 만나 콩고 역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벨기에로부터 독립했다. 하지만 국가재건을 위해 협력해도 부족할 독립운동가 출신 지도자들이 권력쟁탈전을 벌이면서 민중의 가장 큰 지지를 받았던 파트리스 루뭄바가 독립 후 1년도 채 되지 않은 1961년 1월 17일,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동지였던 모이세 촘베에 의해 살해되었다.
모이스 촘베는 콩고의 천연자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벨기에와 루뭄바가 이끌게 될 콩고가 소련의 편이 될 것을 우려한 미국의 도움으로 파트리스 루뭄바를 해치울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은 미국과 서방세계의 ‘개’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모부투 세세 셰코에게 넘어갔다. 그는 루뭄바가 콩고 총리였던 시절 참모총장으로 임명한 자였다. ‘자이레’라는 국명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모부투가 바꾼 콩고 이름이 자이레다. 자이레 시절, 모부투는 한국을 방문해 같은 독재자 전두환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콩고를 착복한 것밖에는 한 일이 없는 인간이었다.
다시 파트리스 루뭄바로 돌아오자. 그가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을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상과 계획은 실현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다. 그가 독립 직후 콩고를 이끌었다면 오늘날 콩고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사실 긍정적일 거라 장담하기가 힘들다. 최근 축출된 짐바브웨의 무가베도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독립 직후 통치 초반에는 백인 재산 몰수 등 개혁적 행보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 노욕에 찌든 독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보자. 여담이지만, 나는 사람의 얼굴에게서 받는 인상이 실제와 맞아떨어지는 경험을 자주 가졌다. 그리고 나는 이 사진에서 파트리스 루뭄바가 곧 있을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신과 함께 했던 동료들이 자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더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런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나라를 통치할 때 적어도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나의 직감과 경험을 믿으며 말한다. 파트리스 루뭄바가 통치했다면 오늘날의 콩고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지금, 파트리스 루뭄바가 브뤼셀에 있다. 동상이라 해도, 조국을 식민 통치했던 나라의 한가운데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소환된 그의 기분은 어떨까? 모두가 그렇지 않다 해도 동양인을 보면 눈 찢기부터 하고 여전히 식민종주국으로서 우월감에 빠져있는 벨기에 사람들이 있는 한, 벨기에는 감히 파트리스 루뭄바의 동상을 세울 자격이 없다. 도대체 왜, 어떤 염치로 한 나라의 고귀한 독립운동가이자 지도자의 동상을 그곳에 세워놨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콩고인도 아닌 내가 더 화가 나서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하지만 감정을 가라앉히자. 진심 어린 선의일 거라고 믿어보자.
사실 나는 콩고와 인연이 깊다. 아프리카를 공부하면서 처음 만난 아프리카인이 바로 콩고 사람들이었고, 가끔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인간적인 정을 쌓았다. 그들의 높은 자존감과 품위 있는 행동, 정감 어린 미소, 순박한 마음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그들을 알고 그들의 역사를 알게 된 뒤, 그들의 맑은 미소에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녹아있을지를 생각했었다. 모부투 이후에도 조제프 카빌라라고 하는 무능한 독재자의 통치를 받고, 풍부한 천연자원이 오히려 저주가 되어 극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콩고 사람들이 외세와 내부의 적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정말로 잘 살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