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시 의자에 앉게 만든 한 줄
쓰는 사람, 그리고 써야만 하는 사람인 내게도 주기적으로 슬럼프는 온다. “이 문장은 이래서 별로고, 이 문장은 이래서 별로야.” 나를 까 내리는 자아가 아주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다.
이 시기가 오면 시작은 했으나 끝을 맺지 못한 글, 다 썼지만 성에 안 차서 발행하지 못한 글들이 보관함에 켜켜이 쌓인다. 오늘 아침에도 자괴감 섞인 한숨을 푹푹 내쉬며 (임시 저장될) 글을 쓰는 중이었다. 그때, 브런치 앱에서 다음과 같은 푸시가 도착했다.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지 벌써 2주가 지났으니 다시 힘내서 쓸 수 있도록 독려하는 알림이었다. 꾸준함과 재능, 두 단어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리고 깨달았다.
결국 두려움 때문이었다. 글쓰기는 내게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잘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 뒤에는 '못하면 어떡하지?' 그리고 '못했다고 평가받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따라왔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두려움이 두려움에서 끝나지 않고 수많은 의심을 낳는다는 데에 있었다. 전공을 포기하고 새로운 꿈을 찾아 나선 내 선택이 옳았을까? 내 역량으로 이 치열한 콘텐츠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안 될 놈인가?
이런 비관을 일삼던 내게, 오늘 아침 브런치의 푸시는 내가 처음 기록하기 시작한 이유를 떠올리게 했다.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지만 성실함은 있다. 꾸준함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행위 ─ 기록을 하자'.
나는 '잘 쓴다'의 동사도 결국은 '쓴다'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 같다. 쓰는 걸 두려워할수록 잘 쓸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재능이 있어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만, 일단 실천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재능을 갖게 된다. 꾸준함이라는 재능.
두 발로 걷거나, 옹알이를 하거나, 스스로 먹기 시작하는 일. 그런 '처음'은 갓난아기에게만 찾아오는 게 아니다. 어른에게도 수많은 처음이 존재하며, 그때마다 우리는 미숙하고 부족하고 우스꽝스러워도 괜찮다. 그게 자연스럽다.
어쩌면 우리를 정말 다르게 만드는 것은, 처음이 아닌 '다음'일 지도 모르겠다. 못하는 게 두려워서 시작을 못하고 가만히 있거나, 나의 가능성을 재단하고 시작과 동시에 끝을 내버리는 것이 아닌 '나의 구림을 버티고 수많은 다음을 만들어가는 것'. 아주 조금씩 덜 구려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어떤 일이든 능히 할 수 있게 되는 '재능' 역시 그런 끈기나 존버력 사이에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한 오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