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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방여인 Dec 21. 2020

나는 육아만 하지 않기로 했다.

(ft. 클라라 슈만)

“팔방미인 상호로 사업자 등록 완료되었습니다”

“저기요, 상호명은 팔방미인이 아니라 ‘팔방여인’ 인데 오타수정 부탁드립니다”

“앗, 죄송해요. 얼른 수정해 드리겠습니다”    


2019년 6월 17일 나는 ‘팔방여인’이라는 상호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이름만 보고 식당이름이냐 전통상품 브랜드 이름이냐 등의 질문을 하지만 팔방여인은 바로 나를 나타내는 이름이다. 나의 오랜 꿈은 나의 연주로 사람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피아니스트지만 언젠가부터 사람들과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소통을 하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내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음악 말고 내 목소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10년의 미국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2달만에 결혼을 했다. 이후 자연스레 피아노와 영어 레슨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강사의 삶을 시작했다. 지식과 기술만 전달하는 강사일에 지쳐가고 있을 때 아이를 갖게 되었고 본격적인 육아를 시작으로 나의 꿈은 잊혀갔다. 그러던 중 100일의 기적이라는 육아 용어를 듣게 되었고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나 지금 육아만 하고 있잖아’      

아이에게 100일이 찾아오면 육아가 1차로 조금 수월해진다. 통잠을 자기 시작하고 불안정한 신생아에서 안정기가 찾아오는 시기인 것이다. 100일의 기적이 의미하는 것은 엄마에게도 조금 여유의 시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100일의 기적을 나의 기적일로 삼기로 결심했다. 

주3회 필라테스 저녁 운동을 시작함으로 남편에게 아이맡기기를 적응시키고 주말에는 다양한 강좌와 자격증 과정을 들으러 다녔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나고 우연한 기회로 인스타라는 SNS플랫폼을 통해 엄마들과의 소통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소통자체에 큰 위안과 기쁨을 얻었고 나도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만의 프로젝트를 열어서 많은 엄마들과 스터디를 시작했다. 내가 잘하고 자신있는 클래식음악과 사람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영어를 결합해 ‘영어원서로 배우는 예술가들의 삶’이라는 스터디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2017년 12월부터 시작된 나의 프로젝트는 현재 누적스터디원 인원은 약 3천명이 될 정도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나는 현재 나만의 브랜드를 구체화하는 단계에 있다.

육아를 하는 엄마이기에 스터디를 유지해가는게 어려울때도 참 많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여러 여성 예술가들을 떠올렸다. 비록 빛을 내지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여성예술가들이 많지만 그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성 음악가가 있는데 바로 ‘클라라 슈만’이다.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인 ‘로버트슈만’의 부인으로 브람스의 뮤즈로 알려져있는 사람이다. 나는 딸 아이 하나 키우면서 고군분투 하고 있지만 클라라슈만에게는 8명의 아이가 있었고 정신질환으로 일찍 생을 마감한 남편으로 40년동안 아이들을 혼자 키우며 살면서 자신의 일을 해냈다.     

육아를 병행하며 일을 하다보면 습관처럼 육아를 핑계삼아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정당화를 시킬때가 있다. 물론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때도 있지만 ‘육아’라는 이유로 나 자신을 자꾸만 세상으로부터 제외시키게 되는 것 같다. 즉 나의 일을 육아를 핑계로 미루게 되는 경우 말이다.     

‘아이가 좀 크면 시작해야지. 어린이집 보내면 시작해야지. 유치원보내면, 초등학교에 보내고나면...등등’   

  


클라라 슈만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신동으로 어떤면에서는 슈만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졌을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8살에 9살연상인 로버트슈만에게 청혼을 받아 일찍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아이를 8명이나 낳느라 음악활동을 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녀의 일대기를 보면 그녀의 삶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다. 남편의 자살소동으로 혼란스러웠을때도 그녀는 남편의 적극적인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 남편을 입원시켰고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아이들을 살뜰하게 돌보았다. 남편이 죽고나서도 그녀의 음악적 활동은 멈추지 않았으며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남은생애 동안 남편의 작품들을 손수 정리하며 후대에 큰 업적을 남기게 된다.      


지금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며 음악가 생활을 했던 클라라슈만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감히 헤아려보지도 못할 그녀의 남모를 여러 어려움들을 상상해보곤한다. 남편에게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했던 그녀의 작품들, 남편이 죽고나서야 떠날 수 있었던 연주여행등 그녀역시 한 남자의 부인으로써 아이들의 엄마로써 미뤄야했던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높은 자식교육열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나도 육아하는 엄마로써 자식교육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고 신경쓰고 있지만 부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은 부모의 삶으로 보여주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좋은 교육기관에 보내고 교육적 환경을 마련해 주는것도 필요하지만 부모의 선행된 삶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의미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일을 멋지게 해냄으로 아이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고 싶고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보다 삶 자체가 업적이 되는 유산을 내 아이에게 남겨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팔방여인’을 소개함으로써 이 글을 마치고 싶다.     

Artful Life Designer를 꿈꾸는 팔방여인입니다. 여러 분야에 호기심이 많고 지식을 융합하고 재창조 하는 일을 즐겨합니다. 다양한 관심사와 하고싶은 일이 많아 고민하고 계신분들을 진정한 팔방미인이 될수 있도록 제가 가진 능력과 경험으로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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