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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규 Sep 07. 2024

라면 삶을 때 면부터 넣어야 하는 과학적인 이유

반박은 받지 않습니다

 선택은 언제나 우리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다. 나는 선택이라는 삶의 고민을 줄이기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 사고실험'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와 펩시 중 어떤 콜라가 더 맛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면, '내가 눈을 가리고 두 콜라를 구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구분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나는 그 주제에 대해서는 더이상 신경쓰지 않고 대충 아무거나 선택한다.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린 주제 중 하나가 라면을 삶을 때 물이 끓고 나서 재료를 넣어야 하는 것인가이다. 나는 찬물에 면과 스프를 때려넣고 라면을 끓인다 해도 맛을 분간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물과 스프를 아무때나 넣는다.


 하지만 물조절은 중대사안이다. 간은 요리의 알파이자 오메가이기 때문이다. 사실 계량컵을 쓰면 되지만 남자로 태어난 이상 그런 얌생이스러운 물건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더욱 성공률 높은 물조절을 위해 스프 대신 면을 먼저 넣는다. 우선 '면, 스프 중 어떤 것을 먼저 넣는 것이 맛있냐'는 질문은 내 블라인드 테스트 사고실험에서 '구분 불가' 판정을 받았음을 일러둔다. 내가 면을 먼저 넣는 이유는 바로 면이 피듀셜 마커(fiducial marker)로 쓰이기 때문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피듀셜 마커는 사진 상에서 물건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기준 물체를 말한다. 위 사진에서는 자(ruler)가 피듀셜 마커이다. 우리가 라면 물조절에 실패하는 이유는 냄비라는 이미지에 담긴 물의 부피를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라면 면이다. 면에 피듀셜 마커의 임무를 부여하고 냄비에 넣음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이 냄비 속의 물이 라면을 끓이기에 적당한 양인 지 가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면은 냄비에서 다시 꺼내지 않아도 된다. 면이 들어있는 상태에서 물이 부족해 보인다면 보충하고, 많아 보인다면 조금 따라내면 된다. 이 얼마나 실용적인가? 


당신이 교양과 지성을 갖춘 현대 문명인이라면, 부디 라면을 끓일 때 면부터 넣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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