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은규 Sep 07. 2024

라면 삶을 때 면부터 넣어야 하는 과학적인 이유

반박은 받지 않습니다

 선택은 언제나 우리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다. 나는 선택이라는 삶의 고민을 줄이기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 사고실험'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와 펩시 중 어떤 콜라가 더 맛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면, '내가 눈을 가리고 두 콜라를 구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구분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나는 그 주제에 대해서는 더이상 신경쓰지 않고 대충 아무거나 선택한다.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린 주제 중 하나가 라면을 삶을 때 물이 끓고 나서 면/스프를 넣어야 하는 것인가이다. 나는 찬물일 때 면과 스프를 때려넣고 라면을 끓인다 해도 맛을 분간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물과 스프를 아무때나 넣는다. 


 하지만 물조절은 중대사안이다. 물조절만큼은 내가 안대를 쓰고 포박을 당해도 라면 맛을 구분을 할 수 있다. 사실 계량컵을 쓰면 되지만 남자로 태어난 이상 그런 얌생이스러운 물건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더욱 성공률 높은 물조절을 위해 스프 대신 면을 먼저 넣는다. 우선 '면, 스프 중 어떤 것을 먼저 넣는 것이 맛있냐'는 질문은 내 블라인드 테스트 사고실험에서 '구분 불가' 판정을 받았음을 일러둔다. 내가 면을 먼저 넣는 이유는 바로 면이 피듀셜 마커(fiducial marker)로 쓰이기 때문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피듀셜 마커는 사진 상에서 물건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기준 물체를 말한다. 위 사진에서는 자(ruler)가 피듀셜 마커이다. 우리가 라면 물조절에 실패하는 이유는 냄비라는 이미지에 담긴 물의 부피를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라면 면이다. 면에 피듀셜 마커의 임무를 부여하고 냄비에 넣음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이 냄비 속의 물이 라면을 끓이기에 적당한 양인 지 가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면은 냄비에서 다시 꺼내지 않아도 된다. 면이 들어있는 상태에서 물이 부족해 보인다면 보충하고, 많아 보인다면 조금 따라내면 된다. 이 얼마나 실용적인가? 


당신이 교양과 지성을 갖춘 현대 문명인이라면 라면을 끓일 때 면부터 넣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서평] 평균의 종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