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위키 켜라
최근 회사에서 개발을 하면서 한 프로토콜에 대해 분석을 할 일이 있었다. 한 일본 회사에서 만든 통신 프로토콜인데, 매뉴얼을 열어보니 500페이지가 넘어갔다. 나는 이 프로토콜을 사용할 라이브러리를 개발해야 했기 때문에 대충 볼 수도 없었다. 꼼짝 없이 하루 종일 매뉴얼을 보는데, 좀체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매뉴얼만 한 달을 분석해야할 판이었다.
검색으로 이런저런 커뮤니티를 둘러보다 보니 이 프로토콜에 대한 감이 잡혔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경우에 매뉴얼에 쓰인 몇 가지 통신 방식 중 일부만이, 또 그 중 일부 포맷만이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매뉴얼에서 자주 사용된다는 부분만 추려보면 몇 십 페이지 되지 않는 분량이었다. 이런 정보를 처음부터 알았다면 많은 시간을 절약했을 것이다.
매뉴얼이 순수한 정보(text)라면, 이 정보에 대한 맥락(context)은 매뉴얼의 어떤 부분이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정보다. 맥락 정보가 없었다면 쓸모없는 정보를 습득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을 것이다.
비유하면, 매뉴얼은 팩트 위주로 쓰여진 위키백과와 같고, 커뮤니티 글은 작성자 주관과 경험이 들어간 나무위키와 같다. 내 경우처럼 어떤 정보 그 자체보다는 그 정보가 알 만한 가치가 있는지 같은 맥락 정보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맥락 정보는 변하기 쉽고, 개인의 주관이 들어갈 여지가 많다. 따라서 높은 신뢰도를 유지하려는 출처일수록 맥락 정보가 부족해지기 십상이다. 내 생각에는 이런 점이 나무위키에 자꾸 손이 가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다 못해 나무위키의 맥락 정보가 잘못 됐다고 하더라도, 어떤 포인트에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는가 하는 메타정보 자체가 그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만약 강의, 블로그처럼 정보 제공을 컨텐츠로 한다면 소비자에게 유의미한 맥락을 제공한다면 좋겠다. 예를 들어 어떤 기술을 소개하는 강의라면, 우선 주관적인 견해임을 밝히고 현업자 입장에서 그 기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푼다거나, 맥락에 해당하는 통계자료를 덧붙이면 훨씬 쉽게 손이 가는 컨텐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