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은규 Nov 03. 2024

[비망록] 항해사 3년 6개월 회고 (1/2)

대학교 입학부터 첫 승선까지

 배를 타면 군대도 안 가고 돈도 많이 번단다. 고등학교때 친구를 통해 우연히 들었던 정보가 내 인생 경로를 조금 바꾸어놓았다. 당시 형편이 좋지 않던 우리 가족을 위해 스스로 보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과 가까운 목포해양대학교로 진학했다. 제복을 입는 군대식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 우울증에 걸렸다. 3학년이 될 때까지 그 흔한 노트북도 없이 대학교를 다녔다. 다른 학우들이 인쇄된 레포트를 수 십 장씩 제출할 때 나는 자필로 서너장 씩을 써냈다. 내가 불쌍했는지 교수님들이 학점을 잘 주셨고, 장학금 덕분에 학비는 내지 않았다. 생활비는 한국장학재단에서 매 학기 최대 한도로 대출을 받았다.실습했던 회사에 산학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밀려있던 집 생활요금을 내기도 했다. 3학년때 생긴 나의 작고 느린 노트북에는 몇가지 프로그래밍 툴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때부터 개발자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 고1때 인터넷에 '개발자가 되는 법' 질문글을 올렸을 때부터, 더 거슬러 올라가 방구석에서 톱과 사포를 들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대던 어린 시절부터 내 적성은 그런 류였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학교 생활을 마치고 실습했던 회사로 취업을 했다.


 당시 회사의 3등항해사는 참으로 고된 직책이었다. 사회 초년생에게 주어진 일 치고는 너무하다 싶은 분량의 일이었다. 법정 서류인 로그북을 기록하는 사관이자, 수십 종류의 약을 관리하고 처방하는 약사이기도 하면서, 매달 수십명의 선원들의 혈당과 혈압을 체크하거나 간혹 심전도 검사도 하는 간호사도 됐다가, 수백개에 달하는 소화기와 화재감지기를 비롯한 각종 안전장비의 상태와 재고를 관리하고, 명절이면 레크레이션 코디네이터로 둔갑하기도 하며, 입출항 작업, 월간 회의 준비, 신규승선자 업무 포함 기타 티도 안 나는 온갖 잡일을 도맡는 잡부 중에 잡부였다. 더욱 처참한 사실은, 항해사는 휴일도 없이 하루 8시간씩 고정적으로 항해 당직을 선다는 것인데, 불쌍한 3항사들은 위에 나열된 업무들을 항해당직을 마친 후 오버타임으로 소화해야했다.


 나는 외부실습 6개월 중 5개월을 갑판부에 소속된 기관사인 화물 기관사와 작업하며 보냈는데, 통상 3항사를 도우며 일을 배우는 실습항해사와는 크게 다른 생활을 한 것이다. 당시 좋은 분들을 만나 매일 과분한 칭찬을 들으며 생활했던 터라 실습 생활을 나름 잘 보냈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는 큰 착각이었다. 3항사의 업무를 아무것도 모른 채 초임 항해사로 승선한 나는 업무들을 쳐내기는 커녕 계속 사고를 쳐대서 배에서 거의 쫓겨날 뻔했다. 매주 입출항을 하는 바쁜 배에서 다음 후임자를 편하게 해주겠답시고 재고관리 같은 일에 너무 큰 시간을 보냈고, 마치 현실이 컴퓨터마냥 컨트롤+z 키로 되돌릴 수 있는 것처럼 부주의하게 행동했다. 대충 하고 빠르게 치워버려야 할 일에도 시스템을 고민하며 우선순위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주먹구구도 안 되면서 계산기를 만들 궁리를 하느라 시간을 버린 셈이다. 매일 욕을 먹었다.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잠이 든 지 4시간만 되면 심장이 짓눌리는 느낌이 들어 깼다. 수면 부족에 더해 하루 12시간 넘는 근무가 휴일도 없이 매일 이어졌다. 업무부하와 스트레스에 의해 인지능력과 기억력이 바닥을 기었고, 실수는 더 잦아지는 악순환이었다. 마지막 입항일마저 휴대폰과 태블릿 두 개가 동시에 방전돼 알람을 듣지 못했고, 항해당직에 지각하며 화려하게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렇게 첫 배는 완벽히 실패했다.


 그렇게 지옥같은 첫 배를 한 달 반 만에 내렸는데, 아마 당시 선장님이 회사에 하선 의견을 전달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 상황이 더 길어졌다면 나의 심신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사회 첫걸음부터 시원하게 박살이 났고, 나 스스로를 깊게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내 안의 에고, 건망증, 과도한 휴리스틱, 뻔히 알면서도 잘못된 길로 이끄는 가학적인 무의식,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생각하는 직관적 사고방식까지, 나라는 인간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이후 나는 기억술, 뇌과학, 인지과학, 업무관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관련 서적을 찾아 읽으며 실천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겸손해졌다. 다른 사람의 실패에 누구보다 너그러워졌다. 누군가 나처럼 헤매고 있을 때 욕이 아니라 당장 실천 가능한 조언을 건네줄 수 있게 됐다. 니체의 말처럼, 나를 죽이지 못한 실패는 나를 한 뼘 더 성장시켜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