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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나 작가 Sep 29. 2023

혼자 보내는 '추석'을 유의미하게 즐기는 법

혼자 보내는 연휴를 백분 즐기려면


"남편, 나 이번 연휴에 하루정도 혼자 보내고 싶은데..."


엊그제 밤, 고민 끝에 남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감사하게도 남편은 망설임 없이 아이 걱정 말라며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그도 알고 있다.

요 근래 내 삶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팍팍했다는 걸.

'팍팍하다'는 어휘가 돈이 없어 굶어 죽을 것 같을 때만 튀어나오는 말이 아니었다.

쉼 없이 달려온 몇 달 동안 '정신적 피폐함'이라는 언덕 끝에 한 손으로 대롱대롱 매달려서 버텼다.

그렇기에 모두가 동등하게 쉴 수 있는 이번 연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고대했던 시간이었다.

엿새라는 긴 법적 공휴일이 주어지는 경우가 흔치 않으니까.


'그래, 떠나자.'


이번이 아니면 안 될 듯싶어 아침부터 짐을 부랴부랴 쌌다.


"아예 노트북도 가져가지 마."


남편이 만류했지만, 생각 정리를 위해 글을 써야 했기에 백팩에 제일 먼저 챙긴 건 (유감스럽게도) 노트북이었다.

그다음으로 성경책, 읽을 책 두 권, 검정 펜 하나, 빨간 펜 하나, 옷 한 벌, 속옷, 탈모 전용 샴푸(일하면서 혹독한 연단을 치루다보니 탈모가 진행되어), 화장품 등을 쑤셔 넣고 겨우 지퍼를 잠갔다.

짐을 싸는 동안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살포시 자리 잡았다.


먼 곳에 가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여력도 없으니.  

집에서 택시로 30분 정도 가면 나오는 송도에 있는 숙박업소를 알아보고 특가 호텔을 예약했다.

호텔방에 들어오자마자 세 시간 정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집에서 잠을 못 잔 것도 아닌데 하염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일곱 시 하고도 삼십 여분 지나자 산책을 나갈 수 있는 동력이 조금 모아졌다.

평소 송도를 종종 찾아왔지만 '달빛공원'이라는 이 지역은 처음이었다.

날은 이미 어둑해지고 대부분 상점이 추석 연휴로 문을 닫았다.

주변을 설렁설렁 한 바퀴 돌고 나서 샛노랑 간판에 시선이 빼앗겨 무심결에 한솥도시락을 구매했고 (배를 채우는데 의의를 두기로), 500ml 생수 두 병과 내 최애 음료인 핑크 분다버그 한 병을 사들고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행을 갈 때면 가지고 다니는 조그만 블루투스 스피커를 핸드폰에 연결해서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좁다란 베란다에 놓인 (누가 봐도) 1인용인 정사각형 나무 탁자를 밥상 삼아 창밖을 보며 밥을 한 숟가락 입 안에 넣었다.

꽤 괜찮았다.

정적만이 함께 했다.

그토록 바랐던 고요이다.


망연히 창 밖 풍광을 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왔다.

블루투스에서 새어 나오는 '오르막길'이 애달픈 건지, 먹고 있는 도시락이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란 건지, 주어진 휴식에 감격한 건지...

그게 아니면 명절이면 잊고 지내던 현실인 우리 부부를 외면하는 양가 부모에 대한 서운함이 갑자기 물밀듯 밀려와서 그런 걸까.

눈에서 짭짤한 물이 흘러내리는 이유를 명확히 알 길이 없는 나는 어느 순간 표정마저 잃었다.

때, 추석 명절 잘 보내라는 안부가 담긴 메시지가 약속이라도 한 듯 '카톡, 카톡' 연이어 울렸다.

 

 




달.

그렇지, 오늘내일은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뜨겠구나.


카톡으로 온 메시지를 읽다가 문득 떠오른 책이 있다.

여행 떠나올 때 배낭에 넣어온 두 권 중 하나.

'달'하면 내 머릿속을 번개처럼 파박 스치는 책. <달의 아이>

밥을 다 먹자마자 책을 꺼내 들었다.



<달의 아이>는 브런치 작가이자 드라마 PD이신 최윤석 작가님이 이번에 출간한 신작소설이다.

최윤석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건 바로 이곳, 브런치스토리이다.

'초이스'라는 필명으로 브런치스토리에 발행하는 맛깔난 그의 글을 우연히 접한 나는 어느새 구독을 눌렀고, 그다음부터는 그가 글을 발행하자마자 찾아 읽게 되었다.

평소 최윤석 PD님이 지닌 필력에 신뢰가 있었기에 주저 없이 이 책을 구매하기도 했지만, 이번에 집필한 내 책 <상처받지 않는 관계의 비밀>에 추천사를 써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도 크게 한몫했다.


책이 서점에 풀린 첫날,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샀다.

약 400페이지가 넘는 SF재난 소설 <달의 아이>를 주말 이틀에 걸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책 읽는 내내 마음속을 부유하던 생각 하나.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지?


기발한 상상과 속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달로 아이들이 끌려 올라간다니.

예사롭지 않았던 이 책은 마침내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역시나 좋은 책은 모두가 알아본다.


<달의 아이>는 장르가 SF재난 소설이지만, 누군가의 아빠나 엄마 또는 언젠가는 부모가 될 어떤 이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시사한다.

나는 소설 속 인물 중 누구와 가장 흡사한 모습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내 부모는 내게 어떤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가. 남편부모는 어떤 모습으로 그를 사랑하는 걸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책은 이렇게 독자에게 즐거움을, 눈물 나는 위로와 감동을, 사유할 거리를, 때론 지식까지 안겨준다.

책으로 얻는 간접 경험은 분명 우리에게 무해하다, 아니 유익하다.

마땅히 유익하다고 렷하게 말하고 싶다.

엿새라는 귀한 연휴가 모든 이에게 주어졌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잠시라도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마음에 드는 책, 언젠가는 읽을 거라며 속으로 콕 점찍어 둔 책, 혹은 나처럼 재독하고 싶은 책에 탐닉해 보는 건 어떨까?


나는 연휴 첫날에 홀로 송도 어느 호텔방 한 구석에서 <달의 아이>를 다시 만났다.

덕분에 엄마, 아빠와 시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내 딸과 아들에게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다시금 곱씹으며 오늘을 유의미하게 마감한다.

그리고 백팩 속에 넣어온 또 다른 책을 읽으며 내일을 보낼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웃음을 짓게 된다.

이것이 혼자이기에 누려 볼 수 있는 소소한 행복아닐까.



하늘에 뜬 둥근 보름달처럼 드밝은 추석 연휴를 만끽하시기를.




#책과함께하는연휴 #혼자떠나는여행 #혼여 #달의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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