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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나 Nov 24. 2024

오늘 날 위키드(Wicked)는 나와 내 베프였다

이 시대의 위키드(사회적 소수자)가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

내겐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루이스 같은 절친이 있다. 처음 그를 만나게 된 건 첫째가 5살 때 다니던 체육 학원에서였다. 학부모 대 학부모로 마주한 셈이다. 우리는 모든 게 반대였다. 내향형인 그와 외향형인 나, 치마를 즐겨 입는 그와 캐주얼을 좋아하는 나, 조선시대 며느리 같은 그와 잔다르크 같은 나. 누가 봐도 어울릴만한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한데 묘하게 끌렸다. 마치 자석의 음과 양처럼. 그러더니 언제부턴가 힘든 일이든 좋은 일이든 그와 함께하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만의 소소한 일탈도 감행했다. (내 인생에서 친구랑 단둘이 해외여행 간 건 이 친구와 간 여행이 처음이었다) 서로가 없었다면 만들지 못했을 추억을 하나하나 쌓아갔다.


그러다가 몇 년 뒤, 내 부부 생활에 금이 갔다. 그로 인해 난 멀리 인천으로 이사했고, 바쁘게 사느라고 연락이 뜸해졌다. 그 사이 친구 가정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 집중하며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엊그제 약 5년 만에 루이스가 내게 찾아왔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 중 한 장면

설렘을 안고 소래포구 지하철 역까지 마중을 나갔다. 반려견 쿠키를 데리고 역전에서 서성이는데 살짝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많이 바뀌었으려나, 못 알아보진 않겠지. 5년이라는 세월을 온몸으로 맞으며 살았기에 그도 나도 어찌 바뀌었을지 예측할 수 없었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멀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루이스의 옛 모습을 찾기 위해 시선을 바삐 움직였다.


도착 시간이 오 분쯤 지났을까. 에스컬레이터 꼭대기에서 끔한 검정 투피스를 위아래로 차려 입은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띄었다. 루이스다!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눈가에 미세한 세월의 흔적이 좀 보일 뿐. 갑자기 눈앞이 뿌예졌다. '... 이 지지배가 몹시 그리웠구나.' 그때서야 깨달았다. 오랜만의 만남이기에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서로를 얼싸안으며 눈이 마주쳤다. 루이스 눈가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 모습을 보니 또 코끝이 찡해졌다. 서로 붉어진 눈시울로 길바닥에서 주책맞게 울지 말자며 팔짱을 꼭 끼고는 우리 집으로 종종 걸어왔다. 그 사이 맘고생이 많았던 건지 루이스는 살이 쪽 빠져 있었다. 그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그간의 삶을 나눴다.


"난 쉬고 싶었어. 모든 게 싫었어.
내가 OO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내 신앙과 별개의 이유라고.
그냥, 내 삶이 왜 이렇게 힘든 건지 답을 찾고 싶었어.
위로를 얻고 싶었다고."


루이스가 호소하듯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심정을 너무도 이해할 수 있었기에. 기독교인 그녀의 신앙과 방향이 다른 학문을 공부한다고 친정에서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지난한 논쟁 끝에 루이스와 친정 가족은 결국 연락을 끊었단다. 그 뒤로 그는 '자발적 히끼코모리'를 자처했다. "모든 게 다 싫었어.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어."라는 묵직한 고백이 당시 루이스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일터와 집만 오가며 자녀들과 의기투합하여 가장으로서 열심히 살아왔단다. 순간 그에게서 내 모습이 비쳤다. 부모님이 원하는 결혼 생활을 지속하지 못한 내게, 상심한 엄마아빠는 나와 인연을 끊자고 하셨다.


"앞으로 그냥 니 맘대로 살아. 아빠한테 연락할 생각도 하지 마!"

몇 년이 지났지만 아빠가 내게 던진 이 마디는 아직도 귓가에 선명히 맴돈다. 당신네 가치관에 부합하지 못한 삶을 사는 첫째 딸이 꽤나 못마땅하셨나 보다. 내게 건 기대가 기에 실망도 몇 배로 크셨겠지. 그렇게 연락 끊고 산 벌써 5년이 흘렀다. 아직도 궁금하다. 당사자인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었던 게 아닌데... 과연 나만큼 힘드셨을지.  


지금 나는 모든 걸 잃고 가족에게 버려져 홀로 있던 시절, 걸핏하면 자살하려던 날 지켜준 사람과 결혼해서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살다가 가끔 전보다 더 연세 드셨을 부모님을 떠올린다. 아니 솔직히 일주일에 한두 번씩 부모님 생각이 난다. 그립다. 미워도 그립다. 더 늦기 전에 뵙고 싶지만 그들을 기다리기로 맘먹었다. 뵙는 그날까지 더 잘 살아야지 다짐하면서 말이다.




요즘 우리 같은 X세대가 흔치 않나 봐. 마음이 허전해.
그리고 되게 눈치 보여.

식사를 마치고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기자, 잔을 어루만지며 루이스가 나직이 토로했다. 과거의 내가 그랬다. 루이스 마음이 이해되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공허한 그를 위해 자기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제안했다. 휑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사는 방식이 다르다고,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지 않는다고 그게 잘못된 거니?
그냥, 너랑 난 우리 또래 나이에 비해 사고가 좀 다를 뿐이야.
나는 네가 글을 썼으면 좋겠어.
그냥 네 이야기를 자서전 쓰듯이 차근차근 써내려 가다 보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될 거야. 내면도 더 단단해지고.  
 


글쓰기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가장 현명하고 좋은 방법이다. 또한 글쓰기는 상처 입은 우리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최고의 심리치유법이기도 하다. 

4년 전, 나 역시 마음 치유를 위해 교수님의 강력 추천으로 내 첫 치유에세이를 출간하게 되었다. 그 후 몇 년에 걸쳐 상처가 아물어갔고, 전보다 단단해지고 있다. 지금도 이렇게 내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을 수 있으니 말이다. 평소 독서와 글을 가까이하며 지냈던 친구이기에 실천하기 어렵지 않을 것 같아 권유했다. 친구를 위한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루이스는 웃음으로 내게 화답했다, 해보겠노라고.


서로 아이들이 자란 이야기도 하면서 격세지감에 하하호호거리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갔다. 친구를 역까지 바래다주면서 마지막까지 그의 팔짱을 꼭 끼었다. 언제까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 사는 동안 네 곁에 늘 있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이제 자주 보자며 활짝 웃는 얼굴로 돌아서는 친구를 보니 미소가 지어졌다. 내게 올 때보다 돌아가는 친구의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 보였다.

 



우리는 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에게 내 감정을 휘두를까. 

그 누구보다 나와 가장 밀접한 타인은 '가족'이다. 내 탄생의 기원이요, 내가 마주하는 첫 사회집단이다. 가족구성원 모두 서로 다르다. 한데 왜 모든 가족이 똑같은 가치관이나 방향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 수는 없는 걸까. 사랑이 있는 참된 가정의 모습은 이와는 좀 달라야 하지 않나 싶다. 걱정된다고 성토하며 상대에게 내 주장을 강요하기보다는 상대 결정을 믿고 응원해 주는 것, 그러다 실패하거나 좌절하면 가장 먼저 달려와 일어서도록 격려해 주는 것,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족의 모습'이라고 믿는다. 다양성과 개인주의가 강해지는 요즘은 더욱 그러하다.

  

루이스와 나, 우리 둘은 기존 X세대의 가치관이나 통념에서 다소 빗겨 난 길을 걷고 있다. 그 이유로 둘 다 가족과 단절되었다. 어젯밤 남편과 본 영화 <Wicked> 속에서 그런 나와 내 친구를 보았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야유와 손가락질을 받는 '초록색 마녀, 엘파바'가 바로 우리 모습이었다.

그냥 남들과 좀 다른 것뿐이에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주면 안 되나요?


엘파바가 부르는 애절한 가사가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엘파바가 눈물을 흘릴 때, 내 뺨에도 뜨거운 무엇이 흘러내렸다.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어. 동시에 내 친구 루이스 얼굴이 떠올랐다. 극장에서 나와 여운을 품은 채 루이스에게 카톡을 보냈다.


영화 위키드(Wicked)를 봤는데 그 안에 너랑 내가 있더라. 꼭 한번 봐봐.

무슨 말인지 이해할는지 모르겠지만. 고맙게도 루이스는 영화를 봐야겠다는 답을 보내왔다.


루이스와 만난 날, 우리는 무언의 다짐 같은 걸 나눴다. 우리는 조금 다르니까, 그러니까 남들과 달라서 죽을 만큼 외롭고 힘들었으니 우리가 만든 가정은 참다운 가정으로 만들어보자고. 내 의견, 내 가치관보다 가족구성원의 의사를 존중하고 품어주는 엄마가 되어보기로 말이다. 그간의 삶을 접고 시작하는 루이스 마음에 내 진심이 닿을 수 있도록 자주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그리고 이제 함께 글을 쓰며 서로 더 단단해져 보련다. 영화속 위키드가 중력을 벗어나 날개를 펼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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