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설익은 군밤
월미도의 밤을 돌아다녔다.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돌아다닐 때나 서른다섯을 까먹은 지금이나 이곳은 변함이 없다. 안심이 된다. 화려한 간판과 더러운 바닥, 비릿한 서해 바다 기운과 싸구려 폭죽 냄새가 코를 찌르는 곳, 짠내에 취한다. 조개구이 아주머니의 호객 드리블링도, 어금니를 코팅하는 탕후루의 혈당 스파이크도 오늘만큼은 반드시 감내하리라.
1950년 9월 15일,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가 261척의 전함과 미해병 1사단, 한국 해병 1연대를 진두 지휘해 상륙에 성공한 곳, 월미도.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혼혈 꼬마 하나가 위대한 상륙 지점 바로 앞에서 악을 쓰며 근본 없는 쥐불놀이를 했다. 행여나 아이가 휘두르는 불꽃이 옷에 튈까 봐 나는 멀리 도망갔다. 저 아이도 언젠가 눈치 보고 조심하는 법을 배울 테지.
오래전, 월미도는 돈 많은 국내 부유층이 즐겨 찾는 최고의 휴양지였다. 화려한 요정과 온천, 수영장, 숙박 시설 등을 갖춘 완전한 휴식의 공간 말이다. 일제강점기에 월미도는 달 월(月)을 뜻하는 가쯔(がつ) 그리고 꼬리 미(尾)를 뜻하는 비(び)를 합쳐 가쯔비 섬이라 불렸다. 그래서 실제로 1930년대 중반의 월미도 조탕 간판을 보면 'GETSUBI'라는 영자가 대문짝만 하게 박혀있다. 가쯔비, 가츠비,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 내 사랑.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컨테이너 상점이 하나 보였다. 그곳에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 한 분이 멍한 표정을 지으시곤 빨빨거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계셨다. 오만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저 말이라도 걸어드리고 싶었다. 군밤을 어떻게 파시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한 봉지에 오천 원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오천 원어치를 달라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수줍게 끄덕이시더니 조용히 집게를 하나 들어 다 식은 군밤 여러 알을 흰 종이 봉지 안에 담으셨다. 봉지를 건네받아 쥔 채 나약한 목소리로 많이 파시라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는 아까보다 더 수줍은 표정으로 내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셨다. 감사합니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마저 걸어가는 길에 손이 심심해 군밤 한 알을 꺼내어 괜히 깨물어 먹어봤다. 설익고 식어서 맛이 영 별로였다. 누런 색깔만큼은 참 예쁘게 잘 익어 보였는데 말이지.
차를 몰아 본가로 돌아가는 길에 이상하게도 자꾸만 아까 그 군밤 할머니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그런데 말이죠, 할머니, 저는 할머니의 정중한 고개인사를 받을 만큼 성숙한 인간이 아닌 걸요.
부디 건강히 오래오래 사세요.
[오랜만에 함께 듣고 싶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