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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K Oct 15. 2020

HOW 사진치료?(3) L의 사례를 통해

사진을 통한 숨겨진 욕구의 통찰과 명료화

사진치료를 배우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사진치료 집단'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이며, 내담자의 신상정보에 대해서는 비밀보장을 하였음


 

자신을 부르는 듯한 사진 2장을 가져오라는 지시에 L은 “대나무 숲”과 “비 오는 기차 안의 사진”을 골라왔다.      


상: “자신이 고른 사진에 제목을 부치고,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해 주세요.”

L: “사진1: 대나무 숲"은 무더운 여름 시원한 원두막에 누워서 지붕 위를 올려보고 있고, "사진2: 나를 위해 떠나는 여행"은 예전에 비 오거나 눈 오면 필름 카메라를 메고 버스나 기차를 타고 관광한 기억이 났어요. 한 겨울에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주행하고 있어요.”

      

상: “두 사진에 공통점과 공통된 욕구가 있는 것 같네요. 무엇인 것 같나요?”

L: “둘 다 휴식 사진이고, 좀 더 느긋하게 여유롭게 하고 싶은 것 같아요. 버스를 타고 오두막에 가서 쉬는 것 같아요”    

 

상: “그럼 두 사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L: “차이점은 한 장은 “땡볕의 여름”이고, 다른 사진은 “비 오는 겨울”이에요. 햇볕이 있고 없고의 차이, 계절의 차이 같네요. “     

- 사진2: L이 고른 기차 안 사진(울라 하콜라의 힐링 포토 중에서)  -



 여기서 내담자는 사진이 '기차 안'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버스>라고 하고 있다. 무의식적 기제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상: “계속 버스 안이라고 하는 데, 다른 분들이 보기에도 이 사진이 버스 안으로 보이나요?”

집단원들: “아니요. 기차 안으로 보이는 데요.”     


상: “기차로 보이는 사진인데, 계속 버스라고 하네요. 왜 버스로 보고 싶어하는지 궁금하네요."

L: “(사진을 찬찬히 살펴본 후) 그러고 보니 기차역인 것 같아요. 그렇게 봤는데도 제가 계속 버스라고 말하네요. 난 기차를 타지 않았다고.”      


상: “이 사람은 차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사진 안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지만, 사람이 있는 것으로 가정하여 질문을 한다.


L: ”차 잘 가고 있는지, 길을 혹시 잘못 들지는 않았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겠지요. “     


지난 회기에 내담자가 한 이야기와 공통되는 부분이 있어서 "연결 지우기"를 했다.



- 사진 안에서 철로가 튼튼한 지 두드려보고 있을 것 같다고 L이 말한 철로 사진 -

상: “지난 회기 때 철로 사진을 보면서 철로를 두드리면서 철로가 튼튼한 지 확인하고 있다고 했어요. 지금 한 말과 비슷한 의미로 들리는 데, 어떤가요?”

L: “맞아요. 그런 것 같네요. 가는 과정이 불안해서 기찻길도 튼튼한 지 확인하는 것 같아요. 이 철로에 제 기차를 올려도 되는지 생각하고 있어요.”     


여기서 내담자는 메타포(은유)를 사용하고 있다. 내담자에게 기찻길과 기차의 각각의 의미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상: “기차와 철로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걸로 들려요. L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L: “기차는 “나”인 것 같고, 철로는 “나의 진로”인 것 같아요. 기차도 연료가 충분히 들어가 있고, 철로도 튼튼하게 잘 깔려 있어요. 이 철로가 튼튼한 것은 알고 있어요. 그런데 철로 방향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몰라서 불안한 것 같아요.“     


기차를 버스로 본 내담자의 무의식적 욕구를  탐색해 보기로 했다.


상: “궁금한 게 있어요. L에게 기차와 버스의 차이는 뭘까요?”

L: “기차는 후진을 못하잖아요. 삶을 되돌릴 수가 없어요. 기차는 정해진 역에만 서고, 버스는 휴게소에도 쉬고 중간중간 서잖아요.- 중략: 기차의 단점 계속 나열 - ”      


내담자의 통합적 관점(정반합)을 가지는 것을 조력하기 위해 반대의 관점으로 보기를 시도하였다.


상: “기차는 버스에 비해 그런 많은 단점들이 있군요. 그래서 본인도 모르게 기차가 아닌 버스로 보게 한 걸까요? (아마 그런 것 같아요.) 그렇다면 반대로 기차의 장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L: “음... 그래도 생각해보면 기차는 장점이 많은 것 같아요. 일단 무궁화를 타면 천천히 가면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좋아요. 버스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지요. 또 신호등으로 막히거나, 교통사고로 체증이 될 위험이 없어요. 그리고 식당칸도 있고 화장실도 있어서 웬만한 일은 기차 안에서 다 해결할 수 있어요.(와!) 또 기차는 도착지가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철로 이탈만 되지 않으면 그 길로 쭉 가요. 버스는 너무 열려있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너무 열려 있어서 선택에 어려움이 있고 변수가 너무 많아서 복잡해요. 기차는 한 번에 갈 수 있어요. 중간에 내리지만 않으면 끝까지 가요. 그리고 기차의 가장 중요한 장점은 내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거예요.(진짜! 맞네) 버스 같은 경우는 번호가 없어서 먼저 타는 사람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있지만, 기차는 내가 식당칸이나 화장실에 갔다가 와도 내 자리에 앉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앉아 있어도 나오라고 요구할 수 있지요.“     


여기서 내담자는 기차를 00 생활, 버스는 00 밖의 생활과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사진에 투사된 내담자의 욕구를 현재 생활로 연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상: “그렇게 짧은 시간에 기차의 장점들을 다양하게 찾을 수 있는 게 대단한 것 같아요. 나도 생각 못했던 기차의 장점이 정말 많네요. 그러면 이제, 본인 이야기를 해 볼까요? 기차의 장점들을 현재 내 생활에 대입해 보면 어떤가요?”

L: “바쁘지만,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고, 밖에서는 이것저것 골라서 선별하기 어려워요.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어서 그것으로 배우고요. 화장실, 식당, 00실이 있어서 생활이 가능하고 편하게 누릴 수 있어요. 운행방향을 못 바꾸는 것도 통제가 될 수 있어요. 제가 00 생활하면서 자취하고 있는데, 00안에서 먹는 것과 자는 것, 쉬는 것이 거의 다 해결되어요. 좁아서 답답한 면이 있지만. 그런 것 같아요. 00 생활을 하면서 제 진로와 관련된 공부를 다양하게 딱 이 부분만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   

  

상: “와! 대단한데요. 어떻게 한 번에 응용할 수 있는지 대단한 것 같아요. 또 어떤 게 있을까요?”

L: “기차에 탄 내가 "지금의 나" 같아요. 내 자리는 이미 정해졌고 어떤 역으로 갈지 정해져 있어요. 그런데 워낙 바쁘게 달려가니까, 전 성격상 천천히 여유를 부리고 싶은 사람인데 그 부분에서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종착역에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았으니 그 종착역이 궁금했던 것 같아요.(생각에 잠긴 표정)”     


인지적 기능이 뛰어난 내담자이고 통찰력도 높다. 촉진적 질문만 잘해주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통찰을 하고 있다.


상: “지금 소감이 어떤가요? 이번 회기에 새롭게 얻은 통찰은 무엇인가요?”


L: “(얼굴이 붉어지며) 제 속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좀 부끄럽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해요. 머리로 정리하려고 하니까 되지 않았던 것이 사진으로 하니까 정리가 되네요. 모든 게 연결되어 있었어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마음이 따뜻해지고 충만한 느낌이에요. 사진 속에 나의 진짜 리얼 메시지가 들어 있구나 싶은 것이 참 신비스럽고 매력적이에요. 방어를 할 수 없고 방어하기를 체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진이 나를 대변해 주는 것도 같고 지켜주는 느낌도 들었어요.   

  

지난 시간 사진 작업에서 기찻길을 보며 유난히 두드려보고 점검하던 제 모습을  연결시켜 주셨는데 그 순간 속으로 ‘아하’ 싶었어요. 기찻길이라는 내 인생길, 진로가 탄탄한지, 무리는 없는지, 철로 위를 달리게 될 나라는 ‘기차’가 제대로 달릴 수 있을는지, 늦게 시작하는 만큼 실패를 줄이고 싶던 내 욕구와 욕심, 걱정이 기차와 철로 두 가지로 명확하게 드러난 것 같아요.     


또, 기차의 단점들을 뒤로하고 장점을 찾아보라는 제안이 의외였어요. 생각해보니 내 자리가 보장되고, 기차 안에는 화장실도 있고, 먹을 것도 있고, 언젠가 다다를 종착지도 있고, 차선을 변경할까 고민하지 않고 한길만 쭉 달리면 되는 안정성이 있었어요.  내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고민을 밖으로 내뱉고 나니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네요. 거기다가 제 이야기에 집중해주고 맞장구쳐주고 공감해주는 선생님과 다른 집단원들에게서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 꺼내길 잘했다는 생각과 내가 그릇되지 않았다는 것, 잘 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어요. 그저 들어주는 것을 넘어 존중하고 경청하고 이해해준다는 게 이런 것일까? 로저리안의 온기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상: “제게도 이 시간이 상당히 의미가 깊었어요. 기차를 버스로 보는 것에서 이렇게 깊은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이 참 놀라웠어요. L이 워낙 통찰력이 뛰어나서 스스로 잘 찾으신 것 같아요. 우리를 믿고 진솔되게 참여해주셔서 고마워요. 


#사진치료 #상담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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