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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K Jul 23. 2021

사진으로 배우는 상담기법(1) "확인"

내가 짐작한 의미와 그가 말한 의미가 과연 같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상담 경력이 좀 쌓이면 내담자가 문 열고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아! 저 사람은 무슨 문제로 왔겠군!’ 대충 느낌이 온다. 신기하게도 짐작한 내용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고, 내담자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도 맞아떨어지는 확률도 높아진다.

  초심 상담자들은 내담자의 입에서 도대체 무슨 말이 나올까 덜덜 떨면서 긴장하지만, 상담경력이 좀 쌓이다 보면 한결 여유가 생기고 다양한 사례의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 얼추 마음 상태가 보인다.

 그런데 ‘난 다 알고 있어’라는 상담자의 자만심이 수시로 독이 되어서 확인 없이 확신하는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1. 나는 과연 제대로 공감하고 있을까?


  20대 직장인이었다. 상담 초기 자신의 트라우마 사건을 얘기하면서 그것이 얼마만큼 큰 고통이었는지 토로하였다. 그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아픔의 정도를 짐작했다.

  테이블 위에 사진들을 가리키며 그에게 요청했다.

“00 씨. 지금 얘기하신 아픔이 어느 정도의 아픔인지 제게 보여주실 수 있나요? 여기 있는 사진 중에서 비슷한 느낌의 사진을 골라주세요.”

  내가 짐작한 사진은 ‘산산 조각난 유리창’이었는데 그는 그 사진을 지나쳐 ‘칼이 꽂혀 피가 흐르는’ 사진을 갖고 왔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심장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 같고, 심장에 꽂힌 칼이 한없이 파고드는 느낌이어서 너무 고통스럽다고 겨우 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때 사진 이미지로 보여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가 트라우마 사건을 얘기할 때마다 훨씬 낮은 강도의 ‘깨진 유리창’ 이미지를 떠올렸을 것이고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만큼 의미가 크고 귀한 일이다.                                                                            

사진 1. 내가 짐작한 사진 - 산산 조각난 유리창(울라 하콜라의 트라우마 포토 중에서)



사진 2. 내담자가 선택한 사진 - 칼이 꽂힌 피가 흐르는 사진(울라 하콜라의 트라우마 포토 중에서)


       

2. 과연 내가 짐작한 의미와 그가 말한 의미가 같을까?      

  

  그와의 상담이 몇 회기가 흘렀다. ‘자서전적 사진치료(은유적 자서전)’를 진행하였다.

  유아기, 아동기, 중학교, 고등학교 시기를 떠올려보고 각각의 시기를 상징할 수 있는 사진 4장을 가지고 올 것을 지시했다.

 각 사진에 제목을 지은 후, 사진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아동기에 대한 사진 설명을 듣던 중이었다.

  “00 씨, 이 아이들은 여기서 뭘 하고 있나요?”

  “여기가 대문 앞인 것 같은데, 문이 닫혀 들어가지 못하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남매 사진이었고 내담자의 성별을 고려해서 당연히 남아가 내담자일 것이라고 믿었다. 굳이 확인까지 할 필요 있을까 넘어가려다가 물어봤다.

  “여기 두 명의 아이가 있는데, 00 씨는 이 사진 안의 누구인 것 같나요?”

  “저는 얘요.”

  그가 가리킨 아이는 사진 뒤쪽에 있는 여아였다. 사진은 상징이지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차’ 싶었다.

  “그럼 이 남자아이는 누구예요?”

  “누나예요.”

  “이 아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여자아이는 뭘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고, 남자아이는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누나는 잘하는데, 왜 나는 못할까?”     

  내향적이고 섬세하고 여성적인 성향이 높은 내담자와 달리 누나는 외향적이고 적극적이고 씩씩한 문제 해결사였다. 어릴 때 같은 동네 형들에게 맞아서 멍이라도 들어오면 기어이 찾아가 내담자를 때린 아이의 얼굴에 동생 멍 크기의 두 배로 만들어 놓았다.

  씩씩하고 당찬 누나는 약한 내담자의 방패막이였고 자랑이었다. 매 년 반장선거마다 손들고 나가서 부반장이라도 되어 오고, 장르에 상관없이 교내외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서 참가상이라도 타 왔다.

  집 안의 자랑거리이고 부모님을 웃게 하는 누나가 자랑스러우면서도 내심 부럽고 그렇지 못한 자신이 작게 느껴졌을 것이다.   

  “00 씨, 이 사진을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다면, 어떻게 바꾸고 싶어요?”

  이 질문은 사진치료의 “임파워링 질문”이다. 내담자의 욕구와 바람을 탐색하고 적극성을 높이기 위한 효과적인 기법이다.

  “여자아이를 남자애 앞에 세워서 보호해 주고 싶고, 적어도 나란히 옆에 서고 싶어요.”

  이제는 둘 다 성인이 된 남매, 그 씩씩하고 당찼던 누나가 누군가의 아내, 어느 집안의 며느리, 조카들의 엄마가 되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자신이 챙김과 돌봄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내담자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사진 3. 내담자가 선택한 아동기 사진 - 어린 남매




3. 확신 말고 확인하기  


  양육 문제로 힘들어서 상담실을 찾아온 30대 주부였다. 나는 처음 내방한 내담자들에게 상담실 벽에 부착된 사진 중에 마음에 가는 사진 두 장을 골라오라고 자주 요청한다.

  자의로 찾아온 내담자이지만 심리상담이라는 낯설고 특수한 환경 속에서 긴장감을 낮추고 방어 없이 사진이라는 익숙한 매체를 통해  도움받고 싶은 내용을 명료화할 수 있기에 첫 회기 때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그녀는 ‘사이좋게 모자 코끼리가 동행하는 사진’과 ‘엄마 사자 품에서 편히 쉬고 있는 아기사자’ 사진을 선택했다.  두 장의 사진 모두 ‘부모와 자식’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좀 더 시선이 가는 사진으로는 ‘사자 모자 사진’을 선택했다.

  “이 사진이 어떻게 보이나요?”

  “아기 사자가 엄마 사자 품속에서 너무 따뜻하고 편안하게 쉬는 것 같아요. 따뜻하고 평온하고 안락해 보여요.”

  양육의 어려움으로 상담을 청한 그녀이기에 당연히 엄마 사자가 본인이려니 짐작했다. 당연한 것 같아 지나치려다 혹시나 싶어서 확인을 했다.

  “00 씨가 만약 이 사진 속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어떤 사자일 것 같아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내 예상을 빗나간 답변을 했다.

  “저는 이 사자요.”

  속으로 ‘아! 틀렸네.’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왜 이 분은 아기 사자를 골랐을까? 자신이 평안하게 보호받는 아기사자이길 바라는 것 같은데, 어쩌면 자신의 애착 문제와 현재의 자녀 양육이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가설을 세웠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상담자의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므로 제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는 기억에 없었고, 가장인 남편의 몫까지 담당해야 하는 고달픈 엄마의 외동딸로서 성장했다.

  내담자의 엄마는 아비 없는 자식이라 행실이 나쁘다는 욕을 듣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담자가 원하는 관심과 사랑 대신 매일 일용할 훈계를 주었다.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이렇게 해!’

  어떤 날은 그런 엄마가 너무 싫어서 옷장 안에 숨기도 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엄마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훈계하는 사람이었고 끝없이 요구만 하는 사람이었다.

  어린 그녀에게 엄마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더 중요한 냉정하고 메마른 사람이었다. 그렇게 소녀는 관심과 애정 없이 욕 얻어먹지 않는 반듯한 여자로 성장해야 했다. 그런 그녀가 엄마가 되어 두 아들을 키워야 하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그녀 입장에서 깊이 생각하고 공감을 건넸다.

  “00 씨를 보면 수분이 전혀 없이 억지로 쥐어짜는 착즙기가 연상되어요. 수분이 충분히 공급되어야 잘 돌아갈 텐데 수분 없이 억지로 돌려서 공회전만 하고 굉음만 들리는 착즙기요. 에너지는 너무 드는 데 나오는 것은 없는. 나는 제대로 된 사랑과 따뜻한 양육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데,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관심과 완벽한 사랑을 주려니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정말 지치고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오랜 시간 힘들고 외로웠던 자신을 애도하는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이 받지 못했기에 그 소중함을 절감했고 자신의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는 더욱 완벽하게 주고 싶었을 것이다.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채우기 위해 매일 부모교육 강연장을 찾았고 부모교육 영상을 공부하면서 애썼다. 그래도 부족한 듯 느껴지면 서점에 있는 모든 부모교육 서적을 사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책 내용을 현실에 적용하기가 녹록했을까. 열심히 노력할수록 점점 더 지쳐갔고 자신의 노력에 부흥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더 화났던 것이다.

  그녀는 안쓰럽고 불쌍한 자신을 충분히 애도하면서 성실하게 상담에 임했다. 때로는 하소연도 하며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함께 축하도 하며 조금씩 건강한 부모로 성장해갔다.

  지금도 녹록하지 않은 부모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을 것이고,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여러 번 드나들겠지만 상담실에 첫 방문했던 그때보다 한결 마음의 자유를 얻었을 것이라 기대한다.


사진 4. 내담자가 선택한 사진 - 사자 모자(울라 하콜라의 힐링 포토 중에서)


어딘가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해나가고 있을 내담자들을 생각하며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읽어 본다.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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