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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K Jul 30. 2021

사진으로 배우는 상담기법(2) "명료화"

"내 마음이 바로 이것이었군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은유’를 사용하면 새로운 틀을 통해 문제를 시각화할 수 있다. 시각적 이미지는 곁으로 빠지는 혼란을 감소시키고 하나로 모으도록 돕는다. 불안을 감소하고 창의성과 자기 효능감을 증진시키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구체적인 상담기법과 상담 방법에 대해 목말라하는 사랑하는 나의 수퍼바이지들과 그들이 만나는 소중한 내담자들을 위해 쓰는 글이며, 아래 내용은 내담자 보호를 위해 충분히 각색했음을 밝혀둔다.


1. 밧줄이 나 같아요. 


50대 초반의 주부였다. 첫 회기에서 상담자는 마음에 가는 사진 한 장을 고르게 했다. 그녀가 선택한 사진은 ‘파라솔이 있는 모래사장 사진’이었다.  


 “이 사진 중에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어디인가요?”

 “이 빨간 파라솔, 특히 이 파라솔에 묶인 밧줄이 눈에 들어와요.”


내담자가 어디에 투사를 하고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대한 감정을 확인해야 욕구를 알 수 있다.           

 “그렇군요. 이 밧줄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이 파라솔이 왜 모래사장에 있겠어요. 햇볕에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잖아요. 이 뜨거운 햇볕에서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와서 휴식도 취하고 햇볕에서 보호도 하기 위한. 그런데 보세요. 이렇게 꽁꽁 묶어놓았는데 제 구실을 할 수 있겠어요? 아무 역할도 못하지.”


흥분해서 상기된 그녀에게 임파워링 질문을 하였다.

 “이 사진을 00 씨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다면 어떻게 바꾸고 싶나요?”

 “당연히 이 밧줄을 풀어서 파라솔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그녀가 문제 해결을 어떻게 하고 있으며 자원을 어디에서 찾는지 확인하기 위한 질문을 했다.

 “그렇군요. 00 씨. 어떻게 하면 밧줄을 풀 수 있을까요?”

 “(고개를 내저으며) 방법이 없어요. 너무 세게 묶여있어서 도저히 풀 방법이 없어요.”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을 '밧줄'에 투사하고 있다. 현재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끼고 있기에 이 학습된 무기력이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자아실현 욕구가 높았던 그녀는 못다 한 공부를 하고 싶었다. 큰 아이를 낳고 진지하게 남편에게 대학원 진학의사를 밝혔고 남편은 아직 아이가 어리니 7살이 되면 대학원에 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렇게 간절한 꿈을 7년 후로 유보하였다.

드디어 7년의 시간이 흘러 고지가 바로 앞이었으나 생각지 않게  둘째가 생겨서 대학원 진학은 또 미루어졌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7년(실제로 14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드디어 꿈꾸었던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어서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컨디션이 안 좋아서 찾았던 그녀는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말을 들었다. “축하합니다. 임신하셨습니다.” 그녀의 배 속에서 이미 셋째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육아기간만 스무 해를 보낸 후 상담실에 찾아왔기에 왜 자신을 '꽁꽁 묶인 밧줄'에 투사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젊고 건강했던 그녀는 일곱 살 터울의 세 아들을 키우면서 육아에 지쳐 체력은 현저히 떨어졌고, 돋보기가 없으면 글 한 자 보기 힘든 노안의 중년이 되었다. 무엇 하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회의와 염세적인 시각을 가진.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 내적인 힘이 있었던 여성이었기에 진정성 있는 상담자의 노력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변화해갔다. 상담 회기가 지나갈수록 그녀의 눈빛은 소녀처럼 반짝였고 목소리에도 힘이 생겼다. 무기력에서 벗어난 것을 축하하며 합의하에 종결 회기를 맞이했다.


마지막 회기에 상담자는 시선이 가고 마음에 가는 사진 선택을 요청하였다. 상담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상담 시작과 끝 시점에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법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내담자 입장에서는 힘들게 했던 증상들이 많이 사라지고 한결 마음도 편해지고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지만 사진 이미지로 비교하면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똑같은 사진을 선택한 그녀는 자세히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이 사진, 처음 제가 고른 사진과는 다른 사진이지요?”

“똑같은 사진 맞아요.”

“아닌데, 분명히 다른 사진인데.”

“그래요? 어떤 부분이 달라진 것 같나요?”

“이 끈. 분명히 처음 제가 봤을 때는 너무 꽁꽁 묶여있어서 도저히 풀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그러시군요. 지금은 어떻게 보이세요?”

“정말 헐거운데요. 같은 사진 일리가 없는 데 이상하네.”


여기서 내담자가 사용하는 단어가 첫 회기 ‘밧줄’에서 좀 더 가벼운 표현인 ‘끈’으로 바뀐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꽁꽁 묶여있는  것에서 느슨하게 묶여있는 것으로 내담자의 지각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끈이 헐겁게 보이는군요. 그러면 00 씨. 혹시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변화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물론 이 끈을 풀고 싶어요.”

“그러시군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끈을 풀 수 있을까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까요?”

“아니요. 혼자 할 수 있어요. 그냥 힘 딱 주고 자동우산 펼치는 것처럼 좌우로 흔들면 저절로 풀어질 거예요.”

첫날에는 상상도 못 했던 힘찬 목소리로 환하게 웃었다. 자신과 자신의 삶을 사랑한 그녀가 상담자와의 동행을 통해 미래의 꿈을 향한 여행 채비를 마쳤기에 지금쯤 어디에 도착해 있을지 궁금하다.     


                                             

사진 1. 내담자가 선택한 파라솔 사진


    

2. 엄마는 삼팔선, 나는 기차  


소년은 30분 이상 엄마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자신에게 밥 먹듯이 하는 언어폭력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혼을 했으나 양육비를 받지 못해 생활비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한 부모 가장의 역할과 혼자 몸으로 질풍노도의 사춘기 아들을 키우는 팍팍한 엄마의 형편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소년의 속마음을 깊이 이해하고자 사진 이미지를 활용하였다.

“00 아. 여기 있는 사진 중에서 엄마와 너를 상징할 수 있는 이미지를 한 장씩 골라 볼래?”

소년이 가져온 두 장의 사진에 제목을 부쳐볼 것을 요청했다.

엄마를 상징하는 사진은 “구속”, 자신을 상징하는 사진은 “어딘가로 멀리 떠나고 싶다”라고 제목을 적었다.

사진 2. 엄마의 상징 - 삼팔선

“00 아. 사진과 제목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겠니?”

“우리 엄마는 저를 너무 심하게 구속해요. 정말 숨이 막힐 지경이에요. 그래서 이 사진을 골랐어요. 제목도 구속이고요. 저는 이 기차 사진을 골랐어요. (한숨을 쉬며) 그냥 이 기차를 타고 어딘지 모르겠지만 멀리 떠나고 싶어요.”


정말 딱 맞는 이미지를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의 고된 마음을 충분히 공감한 후 내담자의 마음과 욕구를 명료화하기 위해 추가 질문을 했다.

“00 아. 이 사진(38선 사진을 가리키며)을 네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바꾸고 싶니? 뭔가 추가해도 되고 없앨 수도 있어.”

흥분했던 분노 강도를 떠올리며 ‘분명히 절단기를 가지고 와서 38선을 잘라버린다고 하겠지’ 추측했다. 소년은 골똘히 생각한 후에 내 예상과는 완전히 벗어난 대답을 했다.


“이 선은 그대로 두고 지우개로 뾰족한 가시만 지우고 싶어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확인했다.

“선생님은 솔직히 이 선을 자르고 싶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이 선은 그대로 두고 가시만 지우고 싶다는 것이 의외네.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설명해줄래?”

“구속이 힘든 건 맞아요. 그런데 그게 또 엄마의 관심과 사랑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아요. 버겁기는 해도 그 자체가 그렇게 싫은 건 아니에요.”

“음.. 그럼 지우개로 이 뾰족한 가시를 지우고 싶다고 했는데 이 가시는 너에게 어떤 의미니?”

“이 가시는 엄마의 욕설이에요.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는 욕은 괜찮아요. 친구들도 그런 욕은 하니까요. 그런데 정말 날 찌르는 가시는 제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들이에요.”    

구체적으로 심장을 찌르는 아픈 가시들은 이런 말들이었다. “너 같은 게 왜 태어나서 내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었냐. 너 때문에 내 인생 발목 잡혔다. 너만 없었더라면 잘 살 텐데.” 등     


내담자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수용하기는 힘들지만 구속이 엄마 나름의 관심과 사랑의 표현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들로 인해 고통받고 있음을 명료화할 수 있었다.

사진 3. 자신의 상징 - 기차

자신을 상징하는 사진에 대해서도 명료화를 시도하였다.

“이 기차가 네가 원하는 대로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 어디를 가고 싶니?”

구속의 힘들어하는 강도를 생각했을 때 시베리아 혹은 적어도 북한까지는 간다고 할 것 같았다. 이 번에도 뜻밖의 답변을 들었다.

“경주까지 가고 싶어요.”

잘못 들은 건가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아직 어린 청소년이니 정확히 경주까지의 거리를 모를 수 있겠다 싶어서 재차 확인했다.

“엄마 차 타고 가면 40분 정도 걸리고, 버스로 가면 1시간 걸리잖아요. 가끔 친구들과 가봐서 알아요.”


그렇다면 이 시간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몇 가지 추가 질문을 통해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제가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을 매일 전화해서 10분만 늦어도 불같이 화를 내요. 저는 자유시간 많이 필요 없어요. 학교 마치고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삼각 김밥과 컵라면 먹을 시간 정도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주말에만 PC방 갈 수 있는데 엄마는 딱 1시간만 허용하는데 이동시간 빼면 한 판도 못하거든요. 1시간만 더  주면 좋겠어요.”

내담자는 수업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허기를 채우고 스트레스를 풀 간식 먹는 시간, RPG 게임 2판을 마음 편히 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담자는 숨 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대구에서 경주까지의 거리로 무의식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수시로 화가 났지만 왜 화가 나는지는 몰랐던 소년의 속마음의 실체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것이 은유 사용을 활용한 명료화의 장점이다.

  

이제는 어엿한 청년으로 멋지게 성장했을 소년의 모습을 상상하며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문의 한 문장을  되새겨 본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 전과 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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