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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K Aug 05. 2021

사진으로 배우는 상담기법(3) “해석”

"사실 그 사람은 잘못한 게 없었군요."


해석은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현재의 행동, 감정 및 사고의 이유를 설명하고 그 근원을 통찰하게 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내담자의 자기 이해와 문제 해결을 돕는 핵심적 상담기법이다.

※ 천성문 외(2016). 상담기법 연습. 서울: 학지사.



이 글은 구체적인 상담기법과 상담 방법에 대해 목말라하는 사랑하는 나의 수퍼바이지들과 그들이 만나는 소중한 내담자들을 위해 쓰는 글이며, 아래 내용은 내담자 보호를 위해 충분히 각색했음을 밝혀둔다.



20대 회사원(상담기법(1)의 주인공)을 열 번쯤 만났을 때다. 그날 따라 유독 많이 피곤하고 초췌해 보였다. 첫 질문을 건넸다.


  “많이 피곤해 보이네요.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깊은 한 숨을 쉬며) 잠도 못 잤고 밥도 잘 못 먹었어요.

  

아! 무슨 중요한 일이 있었구나. 구체적으로 확인 질문을 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오는데 직장 선배와 후배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유쾌하게 웃고 있었고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다는 내용이었다.


이해가 안 되었다. 혹시 중요한 단서를 놓친 것이 있나 싶어서 추가 질문을 했으나 특별한 정보는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내담자와 친하다는 것, 그들이 하던 이야기가 자신은 모르는 내용이었다는 것, 선배에게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고 후배에게만 화가 났다는 것이 의미 있는 내용이었다.   

  

몇 주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장소가 회사가 아닌 다른 단체였고, 대상이 자신과 친한 선배와 후배였고, 함께 식사 후 늦게 들어간 상황에서 두 사람이 자신이 모르는 주제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도 내담자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었다. 비슷한 상황이 또 반복되었으니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다룰 필요가 있다.


인식이 안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 목 위에 머리가 있지만 평소에는 인식 못하다가 목이 아플 때야 인식을 하게 된다. 어떤 부분이 유독 강하게 인식된다면 그 부분이 어떻게 아픈 건지 살펴보아야 한다. 두 가지 상황에서 공통 패턴을 찾아본다.  

   

1. 해석을 위한 첫 단계 - 공통 패턴 찾기


단서 1. 둘 다 내담자와 친하다.

단서 2. 한 사람은 나이가 많고 다른 한 사람은 나이가 적다.

단서 3. 연장자에게는 별다른 감정이 없고,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만 분노를 느낀다.

단서 4. 내담자가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친밀하게 자신이 모르는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 분노 감정이 올라온다.      

단서 5. 내담자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며, 이 상황에 대해 나이가 어린 사람의 탓으로 귀 인하고 있다.

단서 6. 내담자가 포함되면 삼각관계가 된다.

단서 7. 내담자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왜 화가 나는지 정확한 원인은 모르고 있다.     


사람들은 멍이 든 곳에 꼭 부딪힌다고 말한다. 그런데 멍이 들었기 때문에 자주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닿아도 아프지 않은 곳은 못 느끼는 것이고 상처 부위는 아프기 때문에 매 번 인식이 되는 것이다. 내담자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어느 부위가 자주 부딪히는 마음의 멍인지 찾아야 한다.

이제 내담자에 대한 정보들을 엮어서 전체 퍼즐을 맞추어 보기로 한다.


2. 해석을 위한 두 번째 단계 - 내담자 이해를 바탕으로 가설 세우기


가설 1. 내담자의 미해결 과제에 접촉된 상황일 것이다.

가설 2. 원가족 문제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가설 3. 부는 물리적, 심리적으로 부재했기에 연장자는 내담자의 모, 연소자는 내담자의 누나로 투사될 가능성이 크다.

가설 4. 외향적이고 성별이 같은 모녀 관계에서 내담자가 소외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가설 5. 성격이 내향적이고 관심사가 다르며 잘 모르는 대화 주제에 끼어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가설 6. 적극적이고 성취지향적인 누나에게 열등감을 느꼈을 것이고 누나가 엄마의 사랑을 빼앗아 간다고 질투했을 것이다.         


해석기법을 사용하기 전에 미리 점검을 해 본다.


3. 해석을 위한 세 번째 단계 - 사전 점검


1. 나와 내담자는 충분한 신뢰감이 형성되어 있는가?

2. 내담자는 현재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인가?     


내담자가 준비되어 있고 지금이 적절한 시기라는 확신이 선다면 이제 해석기법을 적용한다.     


4. 해석을 위한 마지막 단계 - 적용


1. 어디까지나 상담자의 가설이므로 의문형으로 말하자.

2. 어떤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일까?   

        

4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했지만 사실 여기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상담은 각본 없는 드라마이자 라이브 방송이므로 실시간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몇 주 전에 내담자와 함께 작업한 “은유적 자서전” 포토 폴리오 파일을 찾아왔다.      


사진 1. 엄마의 상징 - 따뜻하고 포근했던 어머니의 등

  

사진 2. 남매의 상징 - 누나 뒤에 숨은 나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제 생각이므로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어요. 이 사진 기억나시죠? (사진 1, 2를 보여주며) 호박잎은 엄마를 상징하고 남매는 누나와 본인을 상징한다고 하셨지요. (네.) 제가 사진을 다르게 배치해 볼게요.(사진 3 형태로 바꾸며) 예전에 00 씨가 한 말이 생각났어요. 학교,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면 누나와 엄마가 재미있게 대화를 하고 있었고 그 대화에 끼고 싶었는데 잘 모르는 주제라서 낄 수가 없었다고 하셨지요. 어쩌면 회사와 00에서 나와 친한 두 사람이 내가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봤을 때 혹시 예전의 엄마와 누나의 대화 장면이 연상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펜으로 삼각형을 그리며) 선배가 엄마로 후배가 누나로 인식되었던 것 아닐까요? 그래서 누나에게 느꼈던 질투와 화를 그 후배에게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10초 침묵 후)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진 3. 미해결 과제 해석을 위해 재배치한 사진


  내담자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상상한 적조차 없는 이야기를 했으니 당연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충분히 기다려줘야 한다.      


  “지금 좀 어지러워요. 헷갈리고요.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제가 00 씨라도 이게 무슨 소린가 황당할 것 같아요. 후배 때문에 열 받고 화나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잘 만큼 힘들었는데, 갑자기 엄마와 누나, 00 씨의 관계와 상관있는 것 아니냐고 하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싶을 거예요.”


  혼란스러워하는 마음을 공감한 후, 충분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 후 1주일 후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촬영 허락을 구한 후 사진(사진 3)을 찍었다.


  그다음 어떻게 되었을까?

  여전히 비슷한 관계 패턴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힘들어했다. 사람은 마술처럼 확 변하지 않는다. 또 그렇게 급속도로 변하는 것이 꼭 좋은 것도 아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자신의 속도에 맞게 변하면 된다.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점이 있었다.

  1주일 동안 못 자고 못 먹던 것에서 3일, 3일에서 하루, 하루에서 반나절로 고통의 순간이 줄었다. 특히 달라진 부분은 그런 일로 화가 치밀어 오르면 화장실로 달려가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본다. 그리고 깊게 심호흡을 하면서 자신을 토닥인다.

   ‘내가 또 예전 일 때문에 엄한 사람에게 화를 내고 있구나. 솔직히 저 후배가 내게 잘못한 것은 없잖아.’


  내담자가 상담 중에 보여주었던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해 진지하고 성숙하게 고찰하던 모습은 내게도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그와의 상담이 종결된 지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몇 사람 건너 그의 인품에 맞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멋진 지도자로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누구나 흔들리는 시기가 있고 아파하는 때가 있다. 그 힘겨운 시간에 누군가의 경청과 공감은 그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매거진의 이전글 사진으로 배우는 상담기법(2) "명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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