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갇힌 당신에게, 글쓰기를 통한 해방감

by 권상민

작가님들 영상을 몇 개 볼일이 있었는데, 우연하게 ‘해방글쓰기’라는 단어를 들 을 수 있었다.

더 자세히 그 작가님의 클래스 등을 찾아본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라고 일치된 감정을 느꼈다.

나는 지금 글쓰기를 통해서 해방감을 느끼는가?

불안하고 각박한 현실을 글쓰기를 통해서 어느정도 치유할 수 있는가?

글쓰기가 무엇이길래 해방감을 줄 수 있는 것일까?


간단하게 두 가지로 글쓰기를 통한 해방감이 가능한 이유를 생각해봤다.


첫째, 글쓰기를 통한 의식의 해방이다.

우리들은 바쁘다. 다들 나름의 이유로 바쁘다.

농촌의 한 농부도 매일 새벽부터 일 하시고, 도심 직장인들도 출근하랴, 회사생활하랴 전쟁을 치른다.

생존의 업을 위한 활동만 있을까?

살면서 만나는 무수한 관계, 이 관계가 주는 압박감, 스트레스.

그리고 그 외적으로 돈과 관련된 스트레스, 자녀 교육과 관련된 스트레스 등 우리 삶을 둘러싼 무수히 많은 요소들이 하루 종일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깐의 도피처로 유튜브 숏츠를 넘기고, 동영상 플랫폼으로 시간을 때우려고 하는 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과연 나일까?

내 의식은 지금 어디에 떠다닐까?

내가 지금 내 의식, 내 의지를 꽉 붙잡고 있는 것일까?


한 달 전까지,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하기 전의 내 모습이 위에서 표현한 바로 그 사람이었다.

하루 종일 회사 대표로서 바쁜 의사결정, 프로그램 코딩, 손님들과 미팅에 치이면 저녁 8~9시부터 졸음이 쏟아진다.

이대로 하루가 끝나고, 새벽이 되면 다시 일이 시작된다.

그렇게 쳇바퀴처럼 창업 후 6년을 보냈다.

그런 과정에서 우연하게 한 달 전에 그냥 글을 쓰고 싶다고 느끼고, 원고지를 편 것이다.

그 날 후다닥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의 제목이 ‘본질’이었다.

왜 그 제목의 글을 썼는지, 왜 그 날 그 시간에 썼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점심 먹으러 가기 전 잠시 원고지 형태의 워드 파일을 켜고 써 본 것이다.

그 짧은 글, 짧은 강렬한 경험이 너무 좋았다.

바로 이어서 다음 날 새벽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새벽에 이런 저런 회사업무 챙기는 것, 운동하러 나가는 것 등을 다 뒤로 하고 원고지 펴고 글 쓰는 것을 1순위로 했다.

그런데, 이 새벽의 글 쓰는 순간이 비로서 내가 누구인지? 나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 계속 생각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나의 의식을 또렷이 바라볼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서히 나를 지배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글쓰기를 통한 해방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의식의 해방감’이 가장 크게 느껴졌고, 실제로 그 효과를 체험하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글쓰기를 통한 감정의 해방이다.

내가 백지 원고지에 글을 쓰면서 누구의 눈치를 볼까?

이 순간만큼은 정말 자유롭다.

그리고 불안했던 내 마음이 스스로 많이 치유됨을 느낀다.

고독한 회사 대표의 삶에서, 치열한 경쟁의 삶에서, 이 순간만큼은 자유롭다.

그리고 잠시나마 글을 쓰는 순간은 작가가 되어서 글을 쓰고, 원하는 무대에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내 도움이 필요로 한 곳에서 도움을 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알라딘처럼 글을 쓰면서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억압, 구속, 속박, 현실 자각이라는 잠시 잊을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아직 초기여서 내 감정을 완전히 분출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그렇지만 서서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느껴진다.

글쓰기를 통해서 내 감정을 이해하고, 분출하고, 그것이 매개가 되어서 누군가와 솔직하고 자연스런 소통을 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글쓰는 것은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행복하다,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글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내가 글을 쓰고 올렸는데 조회수는 왜 이럴까?

정성스럽게 원고 투고를 했는데 왜 출판사는 답이 없을까?

글쓰는 순간의 자유로움, 해방감과 현실의 이익을 치환하려고 하면 안된다.

조회수 올라가고, 원고 투고가 성사되는 것은 내 손을 떠난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 우리는 매일 나만의 소중한 작품을 한 편씩 빚어 낸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여기에만 최선을 다해도 충분하다.

앞에서도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글쓰기를 하면서 내 의식이 해방되었고, 내 감정이 해방되었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어제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주말이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절반 정도 읽었다.

소설가라는 사람들, 그들의 삶, 소설가들의 생각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저자가 말하기를 소설가의 링으로 누구든지 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진정한 소설가란 한 편, 두 편 번뜩이는 재능으로 글을 쓰고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10년, 20년, 30년 꾸준히 저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길게 보고 싶다.

나도 매일 매일의 글쓰기를 길게 보고 싶다.

긴 호흡으로 글을 쓰고 싶다.

때가 되면 내가 어떤 장르의 글을 쓰게 될 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꼈다.


주말에 조금은 늦잠도 푹 자고,

오늘은 편안한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글쓰기의 해방감을 주제로 선택했다.


정말 책을 안 읽는다는 요즘 같은 시대에,책읽기보다 한 단계 난이도가 더 있다는 글쓰기를 이야기 하는 것이 맞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컴퓨터 워드 파일 하나 켜놓고 당장 무엇이라도 한 번 끄적끄적 적어보면 어떨까?

모든 컨텐츠는 글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써본 글이 컨텐츠가 되고 그것이 SNS로, 영상으로, 책으로 다양하게 파생되기 시작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글쓰기를 통한 해방감을 느끼시라고 강하게 권한다.


작가의 이전글설득의 본질은 파워포인트가 아니라 당신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