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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태욱 Dec 23. 2021

마지막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는 이론으로 완전무장을 했다. 어떤 개도 데려와서 훈련시킬 수 있고, 어떤 상황이 와도 다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실전은 다르다는 걸 말이다. 옆집 개는 말도 잘 듣는 것 같고 내가 훈련을 시키면 더 잘 될 것 같은데, 우리 집 개만 말썽꾸러기 같다. 사고를 치고 한없이 맑은 눈으로 쳐다본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또 속절없이 속는다. 단호하게 훈련을 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반려견의 애교에 항상 진다. 내가 아는 수의사분은 환견을 그렇게 잘 관리하시면서 본인의 반려견은 비만이었다. 이처럼 전문가도 자신의 반려견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며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 항복의 의미로 간식을 또 가져다 바친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하며 지내다보니 몇 년이 지난다. 갑자기 입가에 하얀 털이 생기고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지친 기색 없었는데, 요즘은 금세 지쳐서 헥헥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사랑스러운 반려견이 늙어가고 병에 걸리고 죽어간다. 갑자기 행복하게 잘 지냈던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고 후회로 가득 찬다. ‘그렇게 하지 말걸.’, ‘좀 더 해줄걸.’, ‘나랑 있었던 게 정말 행복했을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빠진다. 나만 이렇게 생각할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의무경찰로 군복무를 하면서 경찰견과 함께 일했다. 선임이 되면서 이미 노견이었지만 훌륭한 경찰견을 파트너로 배정받았다. 전역 후에도 파트너를 보러갔었고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19개월을 함께 한 개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10년 넘게 함께 한 반려견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아직 짐작하기도 어렵다. 지금 함께 일을 하고 있는 탐지견과 함께 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될 듯하다.

 오디의 이야기이자, 이 책의 저자인 생명윤리학자이자 작가인 제시카 피어스의 이야기다.

바로 <마지막 산책>(황소걸음)이다.


“나는 오디를 생생하고 자세히 기억할 수 있도록 오디의 이상하고 성가신 행동을 기록했다. 늙어가는 오디를 보면서 내가 보이는 반응도 기록했다. 언젠가 오디를 잃고 느낄 비통함과 어딘가 숨어서 우리를 기다리는 힘든 결정을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13


제시카 피어스의 14살짜리 노견 오디가 죽을 때까지 1년 남짓 동안 쓴 오디를 기록일기와 함께 동물의 노화와 통증, 호스피스와 죽음에 대한 내용을 생명윤리학자이자 반려인의 입장에서 쓰인 글이다.


 책과 주변 지인들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던 점이 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끝까지 책임진 사람들이 슬픔과 후회를 크게 느끼는 거다. 오히려 개가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문제들을 핑계 삼아 개를 버리는 사람들이 느껴야하는데도 말이다.


책에서 나오듯 행동 문제를 보이는 개들이 뼛속까지 나쁜 게 아니라, 우리가 개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들이 우리 기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못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산책>을 통해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노견이 되었을 때 생기는 문제를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 그래서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반려견을 떠나보낸 사람이라면 슬픔과 후회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쉼이 되길 바란다. 당신이 겪는 슬픔과 후회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후회와 다를 것 없다. 경험을 공유하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도 많다. 자연스레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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