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지의 인물묘사에 나타나는 "빛"의 이미지와 의미

겐지모노가타리 기리쓰보(桐壺)권 비평문 

源氏物語絵巻 桐壺三巻の内 (출처 : 徳川美術館)

 고전(古典) 소설에서 흔히 그렇듯이,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의 주인공 히카루겐지(光源氏)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외모와 재능이 뛰어난 인물로 조형된다. 특히 주인공 히카루겐지의 탄생과 인물됨, 성인이 되기까지의 경위를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기리쓰보(桐壺)권에서는, 히카루겐지의 비현실적일 정도로 뛰어난 외모와 기량, 이에 대한 사람들의 경탄이 여러 번,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다(<표 1>). 물론 히카루겐지의 어머니 등 작중에서 호의적으로 혹은 우수한 인물로 묘사되는 다른 인물들도 있지만, 히카루겐지에 대한 묘사나 수식어 중에는 대부분의(‘모든’이 아닌) 다른 인물들에게는 붙여지지 않는, 특별히 구별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빛”의 이미지다(예: 清らかな玉, 光る君, 光源氏).

<표 1> 기리쓰보마키(桐壺巻)의 히카루겐지(光源氏) 인물됨 묘사 표현

 만약 기리쓰보 권에서 “빛”의 수식어를 갖는 인물이 히카루겐지가 유일하다면, 단순히 겐지의 누구보다 뛰어난 발군의 아름다움과 재능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빛”의 이미지가 부여된 인물이 겐지 이외에 단 1명만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문제를 착안하게 되었다. 기리쓰보 권에서 겐지 이외에 “빛”의 이미지가 사용된 단 1명은 바로 겐지의 계모 후지쓰보(藤壺)로, “藤壺の宮はこの君とお並びになって、帝の寵愛もそれぞれに深いので、輝く日の宮とおたたえ申しております。(후지쓰보노미야는 겐지와 함께 황제의 총애도 저마다 깊으니, 빛나는 태양의 미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 와 같이, 무려 “輝く日(빛나는 태양)”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다. 어째서 작자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는, 히카루겐지와 후지쓰보 두 사람에게만 “빛” 혹은 “빛나는” 이미지를 부여한 것일까?

 후지쓰보는 히카루겐지의 생모 기리쓰보노코이(桐壺更衣)와 놀랄 만큼 닮은 여성으로 묘사되는데, 기리쓰보노코이에 대한 묘사는 수식어는 “つややかに美しくて(윤이 나게 아름답고)”, “人柄が優しく、情愛の深ったお心(인품이 뛰어나고, 애정이 깊은 마음)”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러한 반면에 후지쓰보에게는 “輝く日(빛나는 태양)”라는, 히카루겐지 이외의 유일한 “빛”의 이미지가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단순히 외모나 기량이 뛰어남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히카루겐지와 후지쓰보 두 사람에게 단순히 뛰어난 외모나 재능의 소유자라는 점 이외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생각해 봄으로써 해답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 의미는 두 사람의 혈통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히카루겐지는 신적강하를 통해 源氏라는 성을 하사받고 신하의 신분이 되지만, 명백한 천황의 아들로 황족이다. 또한 후지쓰보 역시 “先帝の四の宮(선제의 4번째 황녀)”라는 고귀한 혈통을 갖고 있다. 즉, 두 사람 모두 천황의 아들과 딸로서, 직계 황통에서 멀지 않은 혈통을 가진 황족인 것이다.

 일본과 일본 황실에서 “빛”과 “태양”의 이미지는 매우 중요한 상징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황실의 시조신으로 여겨지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는 태양의 여신이며, 그 이름자 안에 照(빛날 소, 照らす)라는 글자를 가지고 있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연원에서 현재까지도 일본은 국호에도 태양(日)이 포함돼 있을 뿐 아니라, 일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일컫는 표현으로 히노구니(日の国, 태양의 나라)라는 별칭, 국기인 일장기를 비롯해 많은 국가적 차원의 상징들이 “빛”과 “태양”의 이미지를 중요하게 활용하고 있다. 더구나 황실의 권위가 가장 높았던 헤이안 시대를 살다 간 무라사키시키부는 의도적으로 “빛”과 “태양”의 이미지를 황족의 혈통을 가진 인물에게만 선별적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기리쓰보 권에 한하여, 히카루겐지의 이름과 인물됨에 사용된 “빛”의 이미지가 황실 혈통을 의미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겐지 이외의 “빛나는” 수식어가 부여된 인물은 선제의 황녀인 후지쓰보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결론이 타당한 것으로 입증되려면 기리쓰보마키 뿐 아니라 겐지모노가타리 전반에서 황족 인물의 묘사에만 “빛” 혹은 “태양”의 이미지가 활용되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 점은 앞으로 겐지모노가타리의 남은 부분을 공부해 나가면서 지속적으로 염두에 두어 확인해 보고자 한다. 終

** 대학원 일본문학세미나 과제 - 기리쓰보마키에 대한 2000자 이내의 비평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