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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기 Sep 11. 2019

20대 대학생이 바라본 헬조선

그리고 반복되는 기성세대와의 마찰

2017년 2월 11일, 첫 가족의 죽음 

 명절에 가면 맨발로 현관문을 나와 아이구 내 새끼 하며 나를 맞이하던 친할머니가 한줌의 재가 되어 가족들의 가슴에 묻혔다. 뜨거운 아들의 손과 차가운 할머니의 손을 번갈아 잡으며, 한없이 가슴을 치고 통곡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어릴 적 어렴풋이 보았던 익숙한 얼굴의 아저씨들이 아버지를 위로하러 먼 길을 달려오셨다. 40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 사람들조차 소화해내지 못하는 알록달록하고 난해한 패션을 가진 준영 삼촌도 그 날은 검은 정장을 입고 오셨다.

24살의 나는 장례식장에서 밥을 목구멍으로 떠넘기며, 먼 길을 와준 내 친구들을 맞이하고, 아버지 친구들의 소주잔을 채워드렸다. 아버지는 대학교 시절 건신회(건대신문사)라는 서클에 들어, 기자생활을 지내셨다. 졸업 후에는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황무지였던 ‘건축사진’ 에 뛰어들었고, 성공하셨다. 뭐 사람마다 성공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부족함 없이 자랐고, 강남역의 햇볕 잘 들고 대리석 바닥의 집에 살았으며, 무엇보다 아버지의 이름을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왔다.

건축사진작가로서 화려한 인생을 살아왔던 만큼, 그리고 항상 베푸는 삶을 살았던 만큼, 장례식장에 찾아온 아버지의 친구들은 정말 다양하고 많았다. 신문사에서 같이 학생운동에 앞장섰던 친구. 명동에서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알게 된 소중한 인연들. 작은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젊은 사진작가. 유명한 언론사의 간부 아저씨. 아버지는 친구들이 오실 때마다 나를 불렀고, 나는 50대 중후반의 아버지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나에게 인생선배로서 얻은 경험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궁금해 했다. 신기하게도 기자아저씨, 사진작가아저씨, 건신회 아저씨, 그들 모두는 나에게 하나같이 공통된 질문을 던졌다.  

20대인 너에게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다가오니?

 말문이 막혔다. 왜냐하면 질문 후에 이어지는 그들의 일방적인 사고회로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던, 그들에게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배부른 젊은이들의 철없는 망언(妄言)쯤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런 기성세대 앞에서 나는 말을 아꼈고, 조심스레 되물었다. 


그럼 아저씨가 바라본 헬조선은 뭔가요?

 그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너무 나약해. 끝까지 죽어라 해보는 악바리 근성이 부족해. 우리 젊었을 때 비교하면 얼마나 먹고 살기 좋아졌는데, 저녁에 친구들 못 만난다는 이유로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 때려 치며 찾는 곳이라고는 저녁을 즐길 수 있는 회사. 취업준비 조금 하다가 안되면 사회 구조 비판. 죽어라 해보지도 않고 쉽게 내뱉어대는 단어. 그게 바로 ‘헬조선’ 아니야?’

 숨이 막혔다. 아니, 숨을 쉬기도 전에 원투 펀치가 들어왔다. 요즘 얼마나 먹고 살기 좋아졌어? IMF때는 말이야, 젊은 시절 밤 새워가며 자수성가로 맨바닥에서 일으켜 세운 회사들 한 순간에 다 무너졌고, 가족 굶기지 않으려 밤낮없이 일하던 가장들 다 떨어져나갔어. 그렇게 힘든 순간에도 우리 세대는 버텨냈다. 너희는 고작 저녁 없는 삶, 취미생활 없는 삶이 힘들다 말하는데 그건 배부른 자의 나태한 푸념이잖아?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의 반문을 멈추었다. 일방적인 사고회로를 가진 그들에게 우리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호소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모시고 집에 돌아오는 길, 할머니는 생전에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셨을까 수 없이 생각하던 중, 한 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다. 6.25 전쟁 부터의 세대를 3개의 세대로 분류해보자. 전쟁을 겪은 세대(할머니), IMF를 겪은 세대(아버지), 그리고 지금의 젊은이 세대(나). 이를 각각 전쟁세대, IMF세대, 그리고 헬조선세대라 칭해보자. IMF세대는 헬조선 세대에게 배부름에 취한 나약한 젊은이라 나무랐다. 

그렇다면, 전쟁세대가 바라본 IMF세대는 어땠을까? 

나는 문득 이 질문을 할머니께 여쭤 보고 싶었다. 할머니는 전쟁 피난길에서 죽을뻔한 얘기들을 종종 하시던 전쟁세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식탁 옆 장롱에 모신 할머니의 유골 앞에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우리 할머니는 그 당시 힘든 현실을 푸념하는 IMF세대를 어떻게 생각했어?

 "생명의 위협 없이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배부르지 못하다고 불평불만이 많은, 돈 때문에 자살하는 나약한 세대". 결과는 나의 예상과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이것이 전쟁세대가 바라본 IMF세대였다. 전쟁세대와 IMF세대를 거쳐 헬조선 세대까지. 세대 간의 마찰과 이해의 부재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IMF를 직접 겪으신 우리 아버지는 내게 종종 IMF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비관적인 경제생활에 무너진 아버지들은 목에 밧줄을 걸었다. 자신의 희생을 거름 삼아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열심히 일해온 가장들의 넋두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세대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면서도 폭탄이 떨어질까 두려워했고, 전쟁터에 나간 자식의 사진만을 수없이 만지작대며 ‘다리 하나 없어도 괜찮으니 살아서만 돌아오거라’며 중얼댔다. 할머니에게는 어린 나이에 올랐던 피난길이 생생했을 것이다.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왔던 그들의 눈에 IMF세대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시대에 살며 배부른 소리하는 세대였다.

 나는 이러한 세대간 소통의 실패 그리고 마찰의 이유를 변화되는 가치관을 통해 바라보고 싶었다. 전쟁세대에게는 안전한 삶만이 최고의 가치였다. 전쟁의 위협에서 자유로워지고, 턱 밑을 도사리던 총과 칼이 없는 안전한 삶을 열망했다. 그리고 IMF세대는 그런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고민으로부터 해방되었는가? 

전쟁의 종식은, 아니 ‘서로 합의하여 전쟁을 잠시 멈추었던 일’은 사람들이 조금 더 고차원적인 가치관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우리 모두 중학교 때 배웠던 ‘매슬로우’의 욕구분류 피라미드를 떠올려보자.

가장 밑에는 생리적 욕구가 위치하고 그 위에는 안전의 욕구가 위치한다. 전쟁세대는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를 갈구하던 세대였다. 반면에 IMF세대가 추구했던 것은 안전의 욕구 상위에 위치한 사회적 욕구 즉, 자신의 희생을 통해 가족을 구성하는 것과, 그들로부터 오는 사랑과 소속감이 그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가치였다. 두 세대간의 이해의 부재는 추구하는 가치의 변화를 인정하지 못한 세태에서 비롯했다. IMF 이후에 벌어진 대한민국 경제의 상전벽해는 헬조선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를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한 자아실현의 욕구로 변화시켰다. 글로벌기업 ‘삼성’을 떠올려보자. 삼성에 취직하는 것은 나의 부모세대에게 형용할 수 없는 큰 기쁨일 것이다. 다른 회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연봉을 받기 때문에 가족을 꾸려나갈 충분한 여건을 갖출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에 다니며 취미생활 없이 가족만을 바라보며 하루를 버티는 생활, 나의 희생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는 삶은 IMF세대의 일반적인 삶이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는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가정을 반드시 꾸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최고의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 삼성맨이 입사 몇 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9급 공무원 또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하는 현실의 이유이기도 하다. 월급이 반 토막, 1/4토막 나더라도 나의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고, 무엇이 진정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지 되돌아보고, 삶을 향유하며 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다.

전쟁세대는 IMF세대가 사회적 욕구를 채우지 못해 느끼는 삶의 비관을 이해하지 못했고, IMF 세대는 헬조선 세대가 추구하는 나를 위한 삶(자아실현의 욕구)를 이해하지 못했다. 저녁 일찍 퇴근해 고등학교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저녁있는 삶을 갈망하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가치들을 향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나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문화를 IMF세대는 사치라 말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가 결핍된 것은 아니다. 실제로 희생을 원치 않는 젊은이들도 가족을 구성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희생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위한 가치들을 포기해야만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나’의 행복, 그리고 그 행복을 포기하지 않고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모순적인 현실. 우리는 이 현실을 ‘헬조선’이라는 단어로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우리는 배부름에 취해 나약함에 찌든 세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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