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예찬
나는 맛있는 것을 좋아한다. 고로 술도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게 해 주니까. 삼겹살에는 쏘맥 (한라산과 삿포로 조합은 이 세상 후레시가 아니다), 팟타이에는 리슬링, 다크 초콜릿에는 싱글몰트 위스키... 음식과 술의 페어링 조합은 무궁무진하다.
많은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다. 하늘 아래 같은 색 립스틱은 없듯, 같은 종류의 술일지라도 (심지어 같은 브랜드의 같은 제품일지라도) 사소한 변수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점이 재밌다. 다양한 맛과 향의 새로운 궁합을 배우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섬세한 시트러스와 플로럴 향에 가미된 씁쓸함을 즐길 수 있는 IPA 맥주, 검붉게 익은 체리, 자두, 바닐라, 가죽, 토바코(!) 향이 뒤섞인 더운 지방의 레드와인, 짙은 알콜 향 뒤에 따라오는 스모키한 달콤함과 식도가 순식간에 덥혀지는 감각까지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위스키 등 -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이이게 좋은 취미가 될 법하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 칵테일이 있다. 흔히들 알다시피 일반적으로 도수 높은 술(브랜디, 럼, 보드카, 위스키 등)에 다른 종류의 술이나 다른 재료를 섞은 음료를 말한다. 어린 시절, 칵테일은 술 중에서도 가장 쌔끈한 술이었다. 금빛 휘장으로 장식된 홀에서, 검은 턱시도와 매끈한 소재의 드레스를 입은 어른들에게만 허용된 특권 같았다. 칵테일의 첫 기억은 아마도 유치원생일 때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어른은 아버지라고 믿던 시절, 대가족 모임 차 방문한 가라오케에서 아버지는 화이트 러시안을 주문했다. 어린이는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는 섬세한 크리스털 잔에 큼직한 얼음과 함께 담겨 나온 이 칵테일은 커피우유 맛이 난다고 했다. 금기된 음료인데 내가 아는 맛이라니. 기억은 안 난다만 마치 환상 속 유니콘이 열심히 노력하면 손에 넣을 수 있는 적토마 정도로 여겨지게 된 것과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런가 하면 칵테일은 술맛을 모르는 청소년들이 어른 흉내를 내며 마실 수 있는 싸구려 유흥용 음료이기도 했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처음 하우스 파티를 하던 날, 어디선가 주워들은 대로 보드카, 말리부 피치 같은 흔한 칵테일 베이스에 섞어 마실 수 있는 모든 음료를 진탕 섞어 마시고는 다음 날 생전 처음 겪는 숙취에 찌들어 고생했더랬다. 그리고 칵테일은 내 취향이 아니라고 떠들곤 했지.
칵테일에 대한 생각이 또다시 바뀐 것은 스무 살 여름 방문했던 쿠바에서였다. 정신을 날려버릴 것 같이 덥고 습한 8월 말,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 나왔다는 바에서 마신 모히또는 저세상 청량감 그 자체. 설탕, 라임, 민트, 소다와 럼 그 어느 한 재료의 맛이 두드러지지 않도록 “잘 말아진" 모히또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생명수 같았다 (그래서 물처럼 3초 만에 원샷한 건 안비밀). 그때 칵테일의 진가를 알게 됐다. 칵테일의 존재의 이유는 맛있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있어 보이는 것, 더 편히 취하는 것은 칵테일의 부수적인 장점이고.
그래서 술술 들어가는 술, 칵테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맛있는 건 나눠먹어야 제맛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