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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거북 Jan 25. 2024

8년차 사무직의 숙소 노가다 경험기 - 2

내 생애 가장 추웠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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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에 짐을 싸서 대구로 올라갔다. 우리가 머물게 될 숙소에 집을 풀었다. 우리 팀은 총 4명이었는데 2인 1실을 쓰게 되었다. 설마 침대 하나에서 같이 자나? 정말 너무 궁금했지만 차마 입 밖에 내기조차 민망해서 물어볼 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런건 아니고, 한 사람은 침대에서 자고 한 사람은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잔다고 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묵었던 모텔. 신입이라 배려를 받아 내가 침대에서 생활하고 사수가 바닥에서 생활했다. 대구에 올라가서 짐을 풀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술을 마시러 가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놀랐다. 당장 내일부터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늦은 시간에 술을 마시러 간다는게 놀라웠고, 심지어 1군 건설 현장이라 아침에 혈압을 재야 하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마시는 그 패기가 놀라웠다.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먹은 우동과 소주. 우리팀 4명과 처음보는 부장님 한분이 참여하여 총 5명이 술을 마셨다. 이 술자리에서 내가 느낀점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궁금한게 없나?" 였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나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누구냐, 새로왔냐, 어디사냐 등등 물어볼 법도 한데 그냥 투명인간 취급이었다.


사실 좋긴 했다. 피곤하기도 했고 부산에서 아내와 딸과 눈물의 이별을 하고 올라온터라 우울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물어대며 귀찮게 했으면 오히려 짜증이 났을 것 같다. 노가다를 하며 누군가와 싸운 이야기, 돈을 떼인 이야기, 추락해서 누가 죽은 이야기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나는 눈과 귀를 닫고, 술집 TV에서 방영되고 있던 고려거란전쟁을 열심히 보았다. 딱히 잘보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방에 돌아와서 잠을 청했다. 잠이 올리가 있나... 지금이야 무덤덤하게 글로 써내려 가지만 저날 진짜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우울했다. 집에 있는 아내와 딸이 자꾸 아른거렸다. 잠 투정은 안부렸는지, 목욕은 혼자서 잘 시켰을지... 물론 시작 전 면접 아닌 면접을 볼 때도 타 지방 출장이 40% 정도는 된다고 미리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고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부딪히는 것은 다르다. 평생 잊지 못할 대구에서의 첫날 밤이 그렇게 흘러갔다.


05시 30분에 기상했다. 대충 이를 닦고, 작업복을 챙겨 입고 나섰다. 11월이었지만 날씨는 정말 추웠다. 대구는 여름에 덥기로 유명하다. 그럼 겨울에는 따뜻해야 되는거 아닌가? 아니다. 분지 지형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또 엄청 춥다고 한다.

첫 출근 날 아침 식사는 편의점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떼웠다. 보통 근처에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데 근처에 딱히 갈만한 곳이 없다고 해서 편의점으로 갔다. 나는 첫날을 비롯하여 처음 몇일은 아침밥을 챙겨 먹었으나, 그 이후에는 밥맛이 없어서 아침밥을 먹지 않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숙소에서 밍기적대며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있고 싶었다.


식사 후 현장 입구 쪽에서 한참을 떨면서 기다렸다.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우리를 고용(?)한 업체의 부장이 와서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내가 있던 1군 현장은 현대건설이었는데, 현대건설 밑에 1차 하청, 그 밑에 2차 하청, 그리고 그 밑에 우리 팀이 있었다. 우리는 2차 하청 소속 부장에게 업무 지시를 주로 받고 잔소리를 들었다.


2층의 안전교육장으로 가서 기본적인 안전교육을 받고, 혈압을 쟀다. 우리팀 4명 중에서 혈압 시험(?)에 통과한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나머지 3명은 말도 안되게 높은 혈압이 나왔다. 딱히 뚱뚱한 사람은 없었으나, 술 담배를 입에 달고 살기에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원래는 혈압 기준치를 통과하지 못하면 짐을 싸서 집에 가야 하나, 그렇게 하면 대한민국 건설 현장은 단 한곳도 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근처 내과에 가서 의사 소견서를 받으면 일을 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도보 10분 정도 거리의 내과로 가서 또 30분 정도를 기다린 후 의사 소견서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업무에 투입되나? 싶었는데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바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키와 몸무게를 재고, 혈압을 재고 소변검사, 피검사를 하는 그 건강검진 맞다. 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되어 1군 현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같은 팀 형님은 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된게 아니라 본인들 현장에서 사람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대기업의 염원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혈압 기준치를 통과했으니 건강검진에 특별한 이슈가 있겠나 싶었는데, 있었다. 노가다를 계속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하는 건강 이슈가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내는 당장 그만두고 내려오라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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