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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미기miggie Apr 02. 2019

가려진 <더 그레이트 뷰티>

죽음과 삶을 이분법적으로 회의하지 말라

 영화의 러닝타임은 두 시간이 조금 넘지만 나는 그보다 한 시간 정도가 더 필요했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삶과 그의 고찰들을 조급한 마음 없이, 아주 천천히 따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젭은 상류사회의 화려한 겉모습과 그 허상 속에서 살고 있다. 영화의 시작부터 눈에 띄는 영상의 색감과 구도를 보자. 엄격하게 대칭적이고 절제된 모습과 세련되고 깔끔한 색감으로 관광지의, 다시말해 겉모습의 로마를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인 이탈리아 로마는 겉으로 보기에는 유명한 관광지이자 많은 이들의 로망이다. 로마의 예술과 예술가들 역시 교양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실제 로마의 상류층과 예술 사회의 모습은 껍데기 그 뿐이다. 의미를 잃은 채 박수 받는 행위예술, 보여주기 위한 번지르르한 말과 허세, 거짓말, 속임수……젭은 이러한 삶에 회의감과 지루함을 느끼고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지만 상류사회에서도 1%의 삶을 누리는 셀러브리티, 소위 말해 ‘파워인싸’이다. 그가 상류층의 양면성에 부정적이든 아니든 그것이 그의 삶인 것이다. 젭은 단 한 권의 책으로 유명인사가 된 뛰어난 작가이지만 40년 간 신간을 하지 못한다. ‘더 그레이트 뷰티’, 위대한 아름다움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젭은 첫사랑의 부고 소식을 들은 후 그의 삶에 대해서, 또 위대한 아름다움에 대해 깊게 고찰하기 시작한다. 그의 고찰과 더불어 나는 젭의 심리와 변화를 보여주는 미장셴이 인상깊었다. 그가 첫사랑의 죽음을 안 후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 그의 마음 속 잔잔하던 바다에서 요트가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이는 젭과 첫사랑과의 추억의 장면이기도 하지만 지루하고 평화롭던 그의 일상에 변화가 옴을 뜻하기도 한다. 죽음과 인생에 대한 고찰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는 계속되는 예술과 교양인들의 껍데기 뿐인 허상과 격식들에 염증을 느끼고 첫사랑과의 짧은 순간들을 계속해서 회상하며 위대한 아름다움에 대해 갈망한다. 그러나 그가 느끼는 것은 덧없음과 허무함 뿐이다. 이제 젭은 파티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그에게 남은 것은 회의와 고독, 갈망과 공허함 뿐이다.

 “수십 년간 사람들이 왜 내게 소설을 쓰지 않냐고 물었지. 저 것들을 봐. 무(無)야. 이게 내 삶인 걸”

위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소설을 쓰려는 그는 이러한 부질없는 삶 속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저 이렇게 죽음에 가까워질 뿐이다. 이 때 성녀 마리아가 등장한다. 사람들의 관심은 성녀 마리아의 지덕이 아니다. ‘성녀 마리아’라는 교양적, 종교적 상품과 허레허식에 집중할 뿐이다. 상류층의 위선과 허레허식에서 빠져나온 성녀 마리아는 위대한 아름다움을 찾지 못했다는 젭의 말에 ‘뿌리’라는 힌트를 준다.

 젭은 생명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삶에서의 ‘더 그레이트 뷰티’를 찾으려했다. 그렇게 해서 그가 내린 결론은 ‘덧없음’과 ‘회의감’이었다. 그러나 삶은 생명과 죽음 사이의 덮개이다. 수다와 소음, 고요와 감상, 감정과 공포, 아름다움의 초췌함과 변덕스런 섬광, 비참한 추악함과 가련한 인간성. 그 모든 것이 생명이고 삶이고 생명과 죽음 사이이다. 젭이 찾던 그레이트 뷰티는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아름다움은 ‘삶 그 자체’로 위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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