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중인 사안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했다.
나는 굉장히 충동적이면서도 계획적인 인간이라(함께 일을 했던 언니는 '넌 계획을 너무 빨리 세워서 그래'라는 할 정도로) 이번 브런치 작성과 그 주제 또한 충동적이고 계획적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근무 루틴이 1년 주기로 달라진다.
(현재 이직한 회사에 대한 썰은 추후 풀도록 하겠다.)
대략 4월부터 6월까지 한가하다가, 7월부터 몹시 바빠지며 8월부터 11월정도까지는 매일 야근을 했던 기억이 많았었다. 그래서 여름휴가 또한 타 회사에 비해 비교적 일찍(4~6월) 가라고 권장하는 편이다.(사실 권장이 아니라 반 강압적인)
작년에도(놀랍게도 이 회사에 2년넘게 재직중) 휴가를 5, 6월경에 갔던 터라 올해도 휴가를 그때쯤 계획하고 있었다. 사실 눈치를 슬슬 보면서 언제쯤 휴가를 쓸 수 있으련지 눈치싸움을 엄청나게 하고 있었는데, 마침 휴가 계획을 물어보기도 했었고, 건강검진을 미리 받아놔야 나중에 쫄리지 않기 때문에(닥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몹시 싫어함)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미리 예약한 날짜로 휴가를 신청했다.
그 날짜가 바로 5/31부터 6/7였는데, 이건 다른 그 무엇 때문도 아닌 오롯이 건강검진을 위한 일정이었다. 특별히 할 일도 없었을 뿐더러 일정을 잡아봐야 흐트러지는게 우리 집안 사정이었기 때문에+돈도 없어서 큰 고민 없이 '마음 편히 쉴' 생각으로 휴가 일정을 잡았다.(앞으로 못 쉴 가능성이 몹시 매우 많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5/31 건강검진을 위해 5/30부터 대장내시경, 위내시경 준비를 하고, 5/31 건강검진을 진행했다.
건강검진은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으며, 내가 진행한 검사가 기본 건강관리협회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닌 회사에서 복지로 내려온 정밀 검진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항상 하던 건강검진을 스무스하게 마치고, 그 외 의사 소견으로는 평범하게 항상 듣던 말(술을 줄이고, 탄수화물 줄이고, 너무 늦게 먹지말고, 너무 빨리 먹지말고...등등)을 듣고 나서 드디어 대장내시경을 받으러 갔다.
대장내시경은 처음이었기에 너무 떨려서 위내시경 처음 받았을 때만큼이나 몹시 긴장되었다. 그럴만도 한게, 수면으로 진행하지만 이게 자칫 잘못하면 중간에 깨버리고, 그럴 경우에는 그냥 깬 상태로(!) 진행한다고 하지 않는가? 용종이나 기타등등이 발견되면 뗀다고는 하지만, 그건 2차적인 문제인 것 같고, 나는 당장 이 대장내시경을 통해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 유무가 가장 중요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살아남았으며, 대장내시경이 끝나자마자 의사가 나를 부르는 것이 들렸다. 이전에 위내시경만 했을 때 당시에는 이런식으로 바로 호출을 한 적이 없기에 의아해하며 의사에게 가는데, 의사가 내 대장내시경 사진을 보여주며
"지금 치질이 너무 심하신데, 여기 보시면 엄청 심하죠? 바로 병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하는게 아니겠는가? 심지어 나는 사진을 봐도 모르겠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전혀 이해를 못했지만, 우선 '치질이 심하니 병원에 가라'라는 말만 이해를 하고 오케이, 그럼 아는 병원(추천 병원)이 있냐고 여쭤보니 그냥 가장 유명한 메디컬 센터 이런데 이름을 대면서 거기가 유명하지 않겠냐고 하는거;; 뭐 이런 멍텅구리를 보았나 증말
치질 수술의 원인을 말을 하였으니, 발단을 얘기할 차례인데
나는 최근에는 변을 아주 잘 보는 쪽에 속한다. 그냥 잘 보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마다 꼬박꼬박 적으면 1번, 많으면 3번까지 볼일을 보는 편이다. 피를 본 적도 없고, 통증을 느껴본 적도 없던 터라 안심하고 갔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를 고심을 해 보았다.
돌이켜보니, 과거 술을 디지게 먹고 다닐 시절 변비라는 악재가 겹쳐(술을 심하게 안먹으면 변을 보기 힘들 정도였음) 변을 볼 때 몹시 고통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는 그렇게 잘 지나가고, 최근에는 아무 아픔이 없었건만 과거의 고통이 흔적이 되어 치질이라는 형태로 남아버리다니. 심지어 남들이 보기에 바로 제거해야만하는 흉측한 형태로 말이다.
사실 엄빠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큰 충격을 받았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정상적인 세계가 사실은 정상적인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 받는 배신감과 기분나쁨이랄까? 순전히 내가 최근에 화장실을 잘 가게 된 것은 그저 최근의 식습관이 좋았기 때문일 뿐,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음을 꼬집는 것만 같았다. 어디를 간다고 하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으며, 그것에 대해 내가 고찰하고, 소위 말해 끝장을 봐야만 해결이 된다는 것. 문제는 내가 그 끝장을 너무 미뤄왔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끝날 수 있었던 문제를 더 크게 키운 것만 같다는 것이었다. 아마 내가 화장실 때문에 끙끙 앓던 그 시절에 병원에 왔더라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었을 문제였다.
아무쪼록 약간의 충격을 가다듬고, 주변에 아는 사람 중에 해당 이슈에 대해 이야기 한 사람을 생각했고, 가장 최근 치질 수술을 했던 거래처 사장님이 떠올라서 냉큼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사장님은 친절하게 병원과 치료를 받은 원장님의 성함을 알려주셨고, 나는 곧장 그길로 해당 병원에 방문했다. 대장내시경 끝나자마자!
방문한 병원은 낯설었고, 굉장히 오래된 것 같은 병원의 분위기를 풍겼다.
처음 가는 병원이라 등록을 하고, 대기를 하는 중에 간호사가 이야기를 해줬다.
'원장님께서 수술에 들어가셨으니 조금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라고 말이다.
내가 병원에 찾아간 날은 평일이었는데, 평일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대기를 하고, 또 수술이 바로 잡힌 병원이라니? 라고 생각하며 정보의 신빙성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의사를 만나 촉진과 초음파를 진행하였는데, 의사는 보자마자 '어유, 심하네요.'라고 하였고,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할 수만 있다면 수술을 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얕은 희망을 단번에 날려버리고야 말았다.
의사는 나에게 대략 '너는 어떻게 이따위로 살아왔으며, 아프지 않았냐' 등의 말을 좋게좋게 얘기하였고,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수술을 하자고 권유하였다. 그래서 이미 '어유, 심하네요.'부터 마음이 잡힌 나는 가장 빠른 일정으로 안내해달라고 요청하였고, 그 날짜는 다음날 오전 9시였다.
반쯤 포기한 상태로 나온 나를 엄마는 또 "왜 나에게 말도 없이 이렇게 일정을 잡았냐"라고 타박하셨고, 당장 다음주에 회사를 출근해야하는 나는(내 아까운 여름휴가 ㅅㅂ) 당장 수술을 해야만 한다면,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진행하여 멀쩡한 상태로 출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길 내내 엄마에게 "너는 왜 또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등의 잔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귀환했고, 집에 오자마자 입원 및 수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수술 준비에 적힌 내용은 간단했다. 나는 여기에 개인 물품을 좀 잔뜩 챙겨서 가져갔다.
- 세면도구와 수건, 슬리퍼, 휴지, 물컵, 삼각팬티(기저귀 착용용), 개인 휴대품, 약국에서 구매한 기저귀 1통 + 베개, 등을 기댈 수 있는 쿠션, 태블릿과 닌텐도와 충전기 3개 및 ★멀티탭★, 야채와 반찬으로 삼을 간단한 음식, 책과 다이어리 등
- 보호자는 가급적 면회를 삼갈 것
- 아침식사를 간단히(죽/미음 등) 하고올 것
- 당일 점심은 먹으면 안 됨, 저녁은 별도로 챙겨올 것(부드러운 음식으로) ==> 카스테라와 야채를 먹음
위 준비물품 중에서 단연 추천하는 것은 저 "등을 기댈 수 있는 쿠션"이다.
이것은 대략 다음과 같이 생긴 것인데
사실 나는 위 제품을 쓰지도 않을 뿐더러, 저 쿠션이 어떤 모양이라도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하체를 땅에 닿지 않도록 작용하게끔 하는 쿠션'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증말 수술하고 나면 드럽게 똥꼬가 아프고, 화끈거리고, 아주 지랄 난리 부르스를 치기 때문에 엉덩이를 바닥(침대든 그 어디든)에 놔둘 수가 없는 지경이 있다. 무통주사 소용없고, 따로 진통제 요청해야 가라앉는 수준이라 가능하면 그냥 엉덩이를 바닥에 안붙이는게 신상이 편하다. 그리고 실제로 엉덩이를 바닥에 안 붙이고 있으면 조금 가라앉기도 하고, 그러다가 무통 들어오면 훠어얼씬 나아서 저 쿠션을 강추한다.
저 쿠션은 대략 삼각형모양을 가로로 눕혀서 몸을 쿠션 위에 올린 채 하체(엉덩이쪽)를 약간 들리도록 한다는 것이 포인트인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부가 다른 곳에 닿지 않게끔 한다는 의지! 이 때를 위해 운동을 해 왔다!라는 느낌으로다가 하체에 힘을 빡 주고 처음에만 약간 버티다가 대략 하체 느낌이 고정이 된다 싶으면 그 상태 그대로 쿠션에 몸을 맡기면 된다. 대략 다음과 같은 느낌으로
https://m.ggumim.co.kr/furniture/view/138068
한쪽으로 기댄 저 몸과 살짝 들린 엉덩이까지!
대략 저런 자세로 있으면 훨 덜아프다!
아무튼 이렇게 수술 준비를 마치고, 다음날 병원으로 향했다.
내심 암시랑 안한 척 했지만 무척 긴장되고, 처음 수술 했을 때의 악몽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이건 내가 첨 수술했을 때의 이야기
나는 약 5년 정도 전 즈음 자궁내막증을 얻게되어 수술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자궁내막증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해당 수술은 복강경으로 복부 쪽에 아주 작은 구멍을 내서 자궁에 있는 혹을 떼어내는 방식이었다. 그 작은 혹이 뭐라고 배에 구멍까지 뚫어서 그걸 꺼내야 되나 싶지만, 그놈 때문에 진심 생리가 1도 안나오고, 배 안에서 난리가 났다는데 듣기만 해도 증말 뭐 그런 혹 새끼가 다 있나 싶었다.
아무튼 수술이 끝나고 나서 회복실에 누워있는데, 그 때는 코로나 터지기 전이었어서 회복실에 보호자도 같이 들어왔단 말이지? 그래서 내 보호자로 엄마가 와 있었는데, 전신마취 후에 깨고 나니까 온몸은 덜덜 떨리고 어찌나 춥고, 어찌나 목이 마르던지. 심지어 배 쪽에 수술한 곳 같은데는 너무 아파!! 그냥 아픈것도 아니고 너무 아파!!! 진짜 아파서 열이 받아 죽겠는데(그 상황이 복합적으로 열받는 상황이었음, 몸은 추운데 물은 한 모금도 못 마시고, 내가 누워있는 회복실 의자는 협소해서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떨어질 것 같고 등등..) 우리 엄마는 내가 힘든 걸 알지만, 내 아픔을 같이 나눠주고자? 좀 아픔에 대해 잊게 해주고자? 자꾸 말 걸어주고, 이상한 소리 하시고 그랬는데... 진심 내가 그 정도로 아팠는데, 아니 심지어 그 날 어떤 결심을 했냐면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애를 낳거나 애를 낳는 것과 유사한 행위(배를 째는 것)는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결심을 했다. 진짜 너~~~무 너무 아파서 힘들어 죽겠는데, 엄마한테도 '엄마 나 절대 애 안낳아.. 존x 아파..' 이러고 있는데, 우리 엄마는 와중에 회복실 바로 옆이 분만실이었는데, 분만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 너무 재미있으셨나봄.. 자꾸 나한테 와서 분만실 산모가 애를 낳을 것 같네, 근데 아직도 남편이 안 오네.. 등등의 이야기를 전달해주시고... 간호사랑도 별 쓸데없는 얘기 다 하시고... 이후에 회복하는 기간도 물론 아프고 힘들긴 했지만, 역대급은 이 수술한 직후의 아픔과 엄마의 오지랖+친화력에 대해 내가 이미 열을 받아 약올랐다는 점이었다.
진짜 나의 첫 수술 경험기는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아픔 중에 가장 큰 아픔이었으며, 고통도 고통이고(누군가는 사랑 어쩌고 지랄할텐데 그딴거 필요없고 배때기에 칼 쑤셔넣으면서 러브 그딴소리 해봐라 그러면 끝인거다) 그 모든 상황에 대해 기억이 생생히 날 정도로 강렬했던 기억이었다.
그런데 또 내가 수술을 하게 되다니...! 그래도 가장 최근 수술을 했던 거래처 사장님이 '생각보다 별로 안 아프다'라는 말을 믿으며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간호사를 만나니 1인실을 쓸건지 다인실을 쓸건지 확인하고, 1인실을 선택한 나는 1인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서 항생제 알러지 검사를 진행했다. 한쪽 팔에 항생제 여러 대를 미리 약간씩 맞아보고, 알러지 반응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검사였는데, 다행히도 모든 항생제에 별 무리 없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드디어 한쪽 팔에 링겔과 항생제를 맞는 항상 꽂아놓는 주사바늘이 들어갔다.
그래도 내가 갔던 병원이 참 좋았던 점은, 다른 병원에 비해 정말 비교적 주사가 크게 아프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크게'이며, 아프긴 아프지만, 그래도 내 팔을 2번 3번 찔러가며 아작냈던 다른 병원에 비해 한 방에 혈관을 찾아 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해주셨다..
그리고 관장을 시도하였는데, 내가 전날 대장내시경을 하며 속을 다 비워낸 탓인지 변의가 없어 그냥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에서는 수술을 하기 전 나를 동그랗게 둘러싸고 기도를 하는 신기한 의식(?)이 벌어졌으며, 거기에 대고 아멘을 해야하는지 뭐라고 해야하는지 고민에 빠졌으나 괜히 나댔다가 전도당할까봐 그냥 닥치고 있었다. 그리고 꼬리뼈에 마취제를 놓기 시작했으며, 사실 이 때가 수술 시간을 통틀어 가장 아팠다. 엄청 묵직하고 기분나쁜 감각이 꼬리뼈에서 다리 전체로 퍼져나갔고, 다리가 엄청나게 저리기 시작했다. 마치 다리에 누가 머리를 베고 잤는데, 나도 잠들어서 한참 후에 그 머리를 떨쳐내고 저린 다리를 부여잡듯이 저렸다.. 근데 그게 정상이라니까 그냥 가만히 있었고, 그 상태로 한 20분 정도 기다리면서 예수님 스토리를 듣다가 20분 후에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은 내가 볼 수도, 느껴지지도 않는 수술이었으며, 그저 소리만 들렸다. 바로 가위질 소리. 뭔가를 열심히 잘라내는 소리가 차각, 차각, 들렸는데 그게 내 덩거에서 살점을 뜯어내는 소리라고 생각하니 약간 소름돋았고, 마취에서 풀리면 또 존x 아프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랬다.
그렇게 나는 치핵 6개를 뜯어냈다고 들었다. 그리고 의사는 나에게 '생각보다 치핵을 많이 잘라내서 입원을 하루 더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해서 그러겠다고 했고, 수술이 다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다리를 가누지 못했다. 마치 기린이 된 것 마냥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도 서 있지도 못했고, 자꾸만 넘어지려고 했었다. 그래서 병실로 이동할 때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만 했으며, 휠체어에서 침대로 이동할 때에도 심지어 떨어질 뻔 했다! 나의 상체 단련이 없었다면 무자비하게 떨어졌을 것이다.
아무튼 6개의 살점을 잘라낸 나의 덩거는 매우 심각한 상태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취가 된 상태에서는 크게 아픔을 느끼지 못했고, 저린 다리의 상태를 그저 신기하다 생각하고 있었다가 서서히 마취가 풀리면서 아픔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실 그 고통은 막 배떼기를 칼로 쑤시는 것 같은 고통 정도의 수준은 아니고, 아스팔트에 다리를 긁혔을 때 그 상처가 홧홧거리고 아픔이 오는 정도의 수준의 아픔이었다. 나름 심한 4기 치핵 6개 떼어낸 사람으로서(?) 나의 경우엔 그러했다.
그런데 그 홧홧거림이 너무 오래가니 힘들긴 했다. 그 아픔도 좀 가라앉혀야 하는데, 그 뜨거운 상태로 계속 욱신거리다보니 TV를 보고 있어도, 폰을 보고 있어도 온통 그쪽으로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연락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걍 자'라는 것이었다. 아프면 자라는 선조의 말이 떠오르며 억지로 잠을 청했고, 또 어떻게 잠이 왔다! 그래서 자고 나면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자다 일어나면 아픈 상황이 지속되었다.
그렇게 그날 저녁은 집에서 챙겨온 카스테라와 야채를 먹고, 잠을 자려고 했는데 잠이 안왔다.. 낮에 너무 자서.... 잠이 안와.... 증말 승질이 아니 날 수 없는 상황.... 심지어 밤에 아프니까 더 서러움... 어디 연락할데도 없고.... asmr 같은거 틀어놓고 억지로 자려고 하는데 잠이 안와....망알
우여곡절 끝에 어찌됐든 잠을 청하고, 다음날 아침 6시 정도에 간호사가 와서 링겔과 항생제, 진통제를 놔주고 떠나갔고, 아침밥이 도착했다. 아침밥은 조기와 된장국, 흑미밥, 반찬들이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아서 다 먹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음날 반찬을 제외하고 구성이 똑같이 나왔다.. 또옥..같이.... 그리고 바로 밥 취소했다 ㅋㅋㅋㅋㅋ
아무튼 밥을 먹고 똥을 싸는 것이 나의 루틴이므로, 변을 보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막 사람들이 '첫 변은 칼을 싸는 것 같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분명 아프긴 하지만, 아스팔트 그 언저리 즈음을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수월하게 첫 변을 보고, 첫 좌욕을 하러 갔다.
좌욕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심지어 집에 하나 사 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엉덩이가 따뜻하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었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확실히 좌욕을 하고 나니 환부가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변을 보면서 한껏 예민해진 아스팔트가 흙..은 아니고 뭔가 더 물렁해진 아스팔트로 변화하는 기분이었달까...
그래서 나는 생각보다 좌욕을 많이 했었다. 내가 변을 많이 보기도 했지만(심할 경우 하루 3번 본 적도 있음) 그냥 좌욕 자체가 나쁘지 않아서 혼자서 그냥 좌욕을 한 경우도 있었다. 1인실을 쓴 덕분인지 사람들도 2번인가밖에 안 부딪혀서 얼굴 붉힐 일 없이 안심하고 혼자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집에 갈 때 가정용 좌욕기를 구매했다. 이걸로! 집에서 벌써 3번 이상 해본 것 같은데 나쁘지 않다!
아무튼 입원하면서 하는 일상은 딱 그거였다.
아침에 간호사님 링겔 채워주시고 + 아침밥 먹고 + 변 보고 좌욕 + 엄마 오고 + 점심밥 먹고 좌욕 + 한숨 자다가 + 의사 회진 때 잠깐 일어났다가 + 저녁밥 먹고 좌욕 + 도로 자기
문제는 내가 이 루틴으로 생활을 하다가 지금 밤낮이 바뀌어버렸다.
낮에 너무 많이 자서... 이제 당장 목욜부터 출근해야하는데 걱정이 많다..
그리고 퇴원할 때(6/4, 일)에는 후련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좀 감이 안잡히는 부분도 있었다. 완치가 되지 않았다고 여겨져서, 조금 더 주사를 맞거나 하는 등의 처치를 받아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의사의 판단을 믿고 집으로 갔다.
이후 하루간은 큰 문제가 없이 굴러갔다. 문제는 퇴원일 다음날(6/5, 월) 변을 본 후 진심 너무 갑자기 아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새로 산 좌욕기로 좌욕을 하는데 약간씩이긴 하지만 피가 계속 새어나오고 있어서 몹시 당황을 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빠르게 병원으로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또 수술중이셨다.
한참이 지난 이후에(그 한참동안 진짜 좀 아파서 병원 의자에 어정쩡하게 누워있었다, 다들 그 병원 다니시면 이해하시겠지?) 의사를 만나러 갔는데, 별 일 아니라면서 잘 아물고 있다고 걍 가라는거다!! 나는 아픈데!! 뭔가 처치를 해주십쇼!! 라고 소리를 지르려다가 진통제 맞고 가라는 소리에 조용히 따라 들어갔다.
지금도 사실 진통제 기운으로 좀 덜 아픈 것 같기도 하다가도, 약간 아픈 걸 보니 약기운은 이미 날라갔나보다 싶기도 하다.
그리고 식이섬유?라는 이상한 가루 같은걸 줘서(내가 엄마 덕분에 가루 공포증이 있어서 한참 성분을 확인했다) 10시, 16시마다 먹으라고 하고, 3끼 밥 먹은 후에 또 약 먹고.. 아무튼 약 부자가 다 되었다. 하루에 몇 번을 약을 먹는건지 환장할 노릇
내가 갔던 병원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환자를 자주 불러내서 환부를 살피는 것 같다. 나야 그때마다 아프면 진통제 놔달라고 하면 될 것 같고, 궁금한 부분 있으면 물어보겠지만, 의사의 얼굴에 심한 다크서클과 나에게 무성의해보이는 귀찮은 말투는 걍 귀찮은 것이 아니라 피곤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아무쪼록 앞으로는 더 친절하게 대답하고 응대해야겠다.
그리고 오후에 수술 및 입원에 대한 부분에 대해 보험 청구를 진행하였다.
나는 우체국 보험이며, 타 보험과는 다를 수 있지만 나는 다음과 같이 청구를 진행하였다.
서류: 진단서 1부, 진료비 계산서 1부, 진료비 상세 내역서 1부, 카드 영수증 1장
질병분류코드: 대분류를 9999? 인가 일반 질병으로 하였고, 아래로 한~~참 내리면 k64라고 나와서 해당 분류로 신청을 했다.
아직 청구한 부분이 승인되거나 금액이 나오거나 하는 부분은 아니지만, 우선 위 상태로 신청을 넣었으니 지켜봐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 요 며칠간 겪었든 치질 수술에 대해 느낀점을 말해보자면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로 존x 아프진 않았다. 다만 똥꼬를 아스팔트에 쓸린 수준의 아픔이 지속되긴 한다."
정도?
내가 너무 많은 아픔을 상상해서 그런걸수도 있긴 하겠지만, 치질로 고통받고 있다면 수술 후 2~3주 정도만 빡세게 관리해서 쾌적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앞으로도 치질 일기는 계속된다. 완쾌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