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작가 형의 소개로(그도 나를 친하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그를 좋아한다) 한 출판사의 홍보팀 포지션으로 면접을 보게 됐다. 당시에는 오랜 시간 쉬고 있었고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도 전혀 없었으며, 무엇보다 연인에게 차인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정상적인 멘탈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생활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큰 기대감이나 각오도 없이 이력서를 보냈고 면접을 보게 됐다.
면접은 물 흐르듯이 진행됐다. 사수가 될 직원과 부사장과 1차 면접을 보았고 곧바로 사장과 2차 면접을 보았다. 워낙에나 긴장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 '될 대로 되라지'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유튜브를 통해 어떻게 책을 홍보할지 아이디어를 쏟아냈던 거 같다. 그러자 이런 내 모습을 좋게 봤는지 바로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하냐며 물어왔다.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부사장은
"혹시 지원자께서 저희 회사를 면접 보신 건가요?"
라며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심장이 당최 쿠크다스 수준으로 잘 부서지는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연봉이었다. 직전 직장에서 받은 연봉이 당시 출판계에서는 신입사원 치고 꽤 큰 액수였던 것이다. 다음 날 부사장은 직접 연락을 줘, 연봉을 맞춰주겠다고 했고 난 단번에 오케이를 했다.
하지만 출판업계는 생각보다 굉장히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조직이었다. 적어도 내가 다닌 그곳은 그랬다. 아침마다 방을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에 인사를 해야 했는데, 커피를 들고 인사를 하면 안 됐다. 업무 분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서로가 서로의 업무를 전부 참견했고, 전문성 있는 조언이 아닌 그저 트집 잡기 식의 소통이 주를 이루었다. 책이 주는 무형의 감성을 사랑했던 나는,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그런 감성을 향유하고 있을 거라 착각했다. 하지만 출판사는 그저 책을 '팔기' 위해 모인 사람들일 뿐, 그 이상이나 이하도 아니었다.
특히나 합리적이지 않은 의사결정이 가장 큰 문제였다. 과도하게 작은 점에 집착해 담당자들을 괴롭혔고, 연차가 높다는 이유로 실무자의 의견은 묵살했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가 아님에도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고집했고 그것에 대한 이견은 본인에 대한 공격으로 인지했다.
결국 책이 팔리지 않는 이유를 영업과 홍보의 탓으로 돌린 경영진은, 해당 파트의 직원들을 더욱 압박하기 시작했다. 돈이 들지는 않지만 새롭게 도전해볼 만한 것들을 가져오라고 요구했고 해당 파트의 직원들의 스트레스는 커져만 갔다. 그들이 자주 야근을 하며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남의 업무에 트집 잡기 좋아하던 연차가 높은 직원들은 '숙제하듯이 일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는 칼같이 퇴근을 하기 일쑤였다. 그러면서 회식은 왜 그렇게 많은지, 감당하기 힘든 경영진 옆에는 연차가 낮은 직원들이 앉아 종일 수발을 들어야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트렌드에 대한 인지가 전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어떤 것이 대세를 이루는지, 어떤 독자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파악하려는 노력이 전무했다. 책의 기획단계부터 마케팅 방안까지 과하게 낡은 방식과 독단적 의사결정으로 이뤄졌는데, 타겟팅이 확실하지 않고 주먹구구 식으로 일이 진행되다 보니 자연스레 독자들의 반응도 미미했다. 이렇게 조직문화 관리가 엉망이니 좋은 책이 나올 리 만무했다.
무엇보다 홍보와 마케팅을 담당했던 나는, 가장 대중적인 독자들의 입장에서 원고를 읽었는데, 책까지 구매해서 읽을 만한 내용이 전혀 아님을 단번에 느꼈다. 인터넷과 SNS에 흔히 널린 정보들이었고 그마저도 올드한 카피와 디자인으로 더욱 눈길과 손길이 가지 않는 원고들이 즐비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출간을 해도 하루에 채 5권도 팔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고 출판사의 재무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엉망인 조직문화 관리와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는 나태함, 극도의 보수적 의사결정은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도 계속 반복되던 일이었다. 결국 스트레스를 받던 나와 직원들은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렇게 회사는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더니, 결국 출판사의 폐업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더 이상 책 뒷면 홍보 담당자 섹션에 나의 이름을 올릴 일도 없어졌다.
나는 내가 퇴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내가 엉망이어서 그런 줄 알았다. 무능력한 나를, 좀 더 살갑게 상사들을 대하지 못하는 나의 비사회적인 성격을 탓했다. 불합리함에도 꾹 참고 견디지 못하는 나 자신을 싫어했다. 사회생활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니까. 낮아지는 자존감과 자괴감, 스트레스 같은 건 모두가 다 견디면서 어떻게든 돈 벌기 위해 살아가는 거니까. 좌절감이나 스트레스 같은 건, 이 세상 모든 직장인들이 느끼는 것이고 모두가 어떻게든 참고 버티는 거니까. 그런데 난 그걸 못 해낸 거니까, 내가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같은 출판계에서 일했던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그도 나와 비슷한 문제들을 직면했고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를 했다고 한다. 과한 노동량과 보수적이고 불합리한 일들을 버티다가 결국 스트레스성 탈모까지 오고 나서야, 자신이 부서지고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느겼다. 세상 모두가 책을 읽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고 혀를 차지만 어쩌면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책을 사랑할 이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인 게 아닐까.
그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서야 나는 조금 내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 내가 엉망이거나 나약한 게 아니라고, 가끔은 환경이나 주변의 탓을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책을 사랑한다. 그리고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행복하게 책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다양하고 멋진 책을 만들 수 있도록 그들이 안정적이고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조금씩 모두가 책을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